돌고 돌아 도로 “정보는 국력이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5. 7. 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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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정부 시절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다.

1998년 DJ 취임 직후 기존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했다.

DJ는 이종찬 국정원장에게 직접 쓴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휘호를 건넸다.

DJ 정부 때 만들어졌다가 MB 정부 시절 치워진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석이 재등장한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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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정부 시절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다. 1998년 DJ 취임 직후 기존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했다. 그러면서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문구를 새 원훈(院訓)으로 정했다. DJ는 이종찬 국정원장에게 직접 쓴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휘호를 건넸다. 나중에 DJ가 국정원 청사를 방문했을 때 보니 원훈이 새겨진 바위 뒤에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DJ는 이 원장을 불러 “나중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와서 내 이름을 보고 이 돌멩이를 치우라고 하면 어떡할 거냐”며 크게 화를 냈다. 혼비백산한 이 원장은 “당장 지우겠다”고 답했다.

국가정보원 원훈석. 김대중정부 시절 만들어진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이 이재명정부 들어 부활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정원의 시초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창설된 중앙정보부(중정)다. 영문 명칭 이니셜인 KCIA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군사정권 지도자인 박정희 장군(훗날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김종필이 초대 부장을 맡은 점만 봐도 중정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1979년 중정 부장이던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으로 잠시 위상이 떨어졌으나, 이후 들어선 5공화국에서 간판만 안기부로 바뀌고 유지되어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으로 행세했다. 중정의 부훈(部訓)은 그 유명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문구다. 이것이 안기부 시절까지 포함해 30년가량 쓰이다가 1998년에야 ‘정보는 국력이다’로 대체됐다.

이명박(MB) 대통령은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이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기관이란 정체성을 뚜렷히 해야 한다고 여긴 듯하다. 그래서 MB 정부가 탄생시킨 새 원훈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다. DJ 정부 때 설치된 원훈석은 안 보이는 장소로 치워졌으니 “나중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와서…” 했던 DJ의 예측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그 뒤로도 국정원 원훈은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박근혜정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문재인정부) 등 정권마다 바뀌었다. 윤석열정부 때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옛 원훈이 부활하기도 했다.

옛 중앙정보부 및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쓰인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부훈이 새겨진 바위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재명정부 들어 국정원 원훈이 또 교체됐다. 국정원은 17일 이종석 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원훈석 제막식을 개최했다. DJ 정부 때 만들어졌다가 MB 정부 시절 치워진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석이 재등장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원장은 “이 원훈을 다시 세우는 이유는 자명하다”며 “정보 지원으로 안보와 국익을 뒷받침하는 국정원의 책무와 역할이 이 원훈 속에 다 담겨 있다”고 말했다. 무덤 속의 DJ가 이 사실을 알면 기뻐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간 원훈석이 5년 주기로 바뀌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먼 훗날 DJ나 이재명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이 와서 다시 “이 돌멩이를 치우라”고 명령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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