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GO! 사표 쓰고 미국 종단] ⑸ 한국인이라는 정으로

신시내 기자 2025. 7. 1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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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T(Pacific Crest Trail·미국 서부 종단 트레킹). 태평양 연안을 따라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무려 4300㎞나 이어진 장대한 길이다. 1년에 8000명 정도가 도전하지만 약 20%만이 성공하고, 일부 도전자는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완보의 영광’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이 고행의 길을 <농민신문> 자매지 월간 <전원생활>에 몸담았던 신시내 기자가 도전에 나섰다. 신기자의 PCT 무사 완보를 응원하며, <농민신문>이 그의 종단기를 독점 연재한다.
PCT를 걷기 시작한 지 어느새 70일. 세계 각지에서 온 하이커 사이에서 올해 유일한 한국인으로 지내자니 외로움이 시시때때로 찾아왔다(만약 우리 말고 다른 한국인 하이커가 있다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오죽하면 프랑스나 독일에서 온 이들끼리 모국어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몇 번이나 부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시에라(Sierra) 지역에서 인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한국인과의 신기한 경험을 두 차례나 하게 되어 즐겁게 소개한다.
V자로 파인 곳(사진 중앙)이 포레스터 패스.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산의 북사면에는 아직 눈이 잔뜩 쌓여서 아이젠을 차고 길을 만들며 내려와야 했다.

사이먼 리(Simon Lee) 씨와 만난 것은 PCT에서 가장 높은 고도 4000m 포레스터 패스(Forester pass)를 넘고, 비숍(Bishop)이라는 마을로 향하는 날이었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PCT 코스를 벗어나 12㎞ 길이의 사이드 트레일을 거쳐야 했다. 더욱이 전날 15시간에 걸쳐 총 고도 2300m를 오르내려서인지 걸음에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결국 트레일 입구의 캠핑장에서 1박 후 마을에 가야만 하는 일정이 됐는데, 여기서 사건이 생겼다. 이곳 캠핑장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유료 공간으로 이날은 하필 금요일이라 모든 자리가 만석이었다. 또한 PCT 하이커가 쓸만한 공터를 찾을 수 없었고, 이 주변에는 텐트를 치지 말라는 경고까지 있었다. 산속 외진 도로라 늦은 시간에는 히치하이킹도 불가능했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불안한 심정으로 한 번 더 빈자리를 찾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를 터덜터덜 걷고 있자니 한 동양계 미국인이 말을 걸었다. “텐트 칠 자리 없으면 우리 공간 나눠서 쓸래요? 여기는 자리가 2개 있거든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너무 고맙다며 언덕 위에 비어있는 작은 공간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가 가방을 던지고 텐트 사이트를 찾기 위해 다시 산에 올라간 남편을 데려왔다.

텐트 사이트 전경. 사이먼의 텐트(사진 오른쪽)의 뒤로 작게 우리 것이 보인다.

서로 통성명을 하자 중국인이겠지 생각했던 그는 놀랍게도 한국인 2세였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어도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라서 그가 더욱 반가웠다. 그는 자신의 저녁 식사도 나눠주고, 다음 날 아침엔 마을까지 차로 데려다줄 정도로 큰 친절을 베풀었다. 신기한 일은 다음 날도 이어졌다. 비숍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산으로 돌아가는 입구에서 또다시 사이먼을 만난 것이다. 전날 함께 왔던 두 아이는 집에 데려다주고 다른 도시에서 온 친구와 함께 다시 등산을 가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길에서 또 한 번 조우하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됐다.

사이먼씨(가운데)와 그의 가족. 전직 해군이자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인 그는 현재 미국 재향군인회에서 근무한다. 자녀들과 함께 PCT를 걷는 것이 그의 꿈이다.

다음 한국인과의 만남은 사이먼과 헤어진 1주일 후 일어났다. 그동안 마을이나 캠핑장에서 한국인을 만나긴 했지만 하이킹 중 한국인을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원정 산행을 온 한인 산악회를 만나 인사도 나누고 육포와 쿠키 등 간식을 받고 헤어졌다. 그리고 1시간이나 지났을까. 한국식 승복을 입은 비구니 두 분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내가 더위에 헛것을 보나 눈을 의심했다. 그들은 앞서 만난 산악회와 같이 이곳을 찾았다가 발목 부상으로 먼저 하산하는 ‘진짜’ 한국 스님이었다. 뉴욕 금강선원에 계시는 ‘정묵 스님’, ‘효원 스님’과는 30분 가까이 길에서 이야기를 나눌 만큼 이야기가 잘 통했다. 마지막에는 일정이 달라 아쉬운 마음만 남기고 먼저 길을 떠나야 했다.

효원 스님(왼쪽 두 번째)과 정묵 스님(왼쪽 세 번째). 두 스님은 이번 산행을 위해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5박 6일간 4800km를 직접 운전해 왔다.

그렇게 인연을 매듭 짓나 했더니 그 후 점심을 먹는 도중 다른 하이커들과 함께 스님이 오시더니 마약 중독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큰 칼을 옷 안에 숨긴 채 두 분을 계속 따라오고 있으니 함께 마을까지 가줄 수 있겠냐며 도움을 요청했다. 스님이 지칭한 그는 한 눈에 봐도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긴 코트차림에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수상한 모습이었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스님과 하이킹을 재개했다. 앞서 함께 걷던 한국계 미국인인 진아, 필리핀인 진, 미국인 월터와 데이비드까지 더하니 8명의 큰 그룹이 됐다. 다행히도 그 수상한 사람은 중간에 헤어진 뒤 다시는 스님을 쫓아오지 않았고, 우리도 무사히 마을로 향하는 사이드 트레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8명이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덕분에 우리도 예정보다 빨리 마을에 갈 수 있게 됐고, 스님이 갖고 계신 차량 덕분에 히치하이킹의 어려움도 덜 수 있었다.

그 후 스님과 함께하는 3박 4일의 휴일이 이어졌다. 함께 식사도 하고, 근처에 위치한 노천온천도 방문했다. 산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 안쪽까지 차도 태워주셔서 뜻하지 않은 드라이브도 할 수 있었다. 헤어지는 순간에는 ‘꼭 뉴욕에 방문하겠다’며 깊은 포옹도 나누고 나중을 기약했다.

한 주 사이에 한국인과 예상치 못한 정을 두 번이나 나누니 그동안 외로웠던 마음 한 편이 조금은 채워졌다. 이 먼 나라에서도 여전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나의 여행을 더 따뜻하고, 화사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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