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더기는 주방에서 안 왔나? 편식짬뽕에 연재 첫 위기 [웃기는 짬뽕]

황성규 2025. 7. 1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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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야수각

채소와 해산물 없이 면과 국물만 서빙
갸웃하며 한입, 필자에겐 흡사 평양냉면
대기만 1시간… 기발한 아이디어 통한듯
1만원대 요리류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짬뽕의 면만 먹고 건더기를 남기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짬뽕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편식짬뽕.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짬뽕의 역사에서 짬뽕밥의 등장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굳건한 입지를 자랑했던 면 대신 밥이 메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역사적 사건. 면은 밥에게 자리를 내어주고는 가느다란 당면 형태로 바짝 쪼그라들어 명맥만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살아남긴 했으나 면이 서지 않게 됐다.

면이 밥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 이후 짬뽕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파스타를 연상케 하는 크림짬뽕도 모자라 이제는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별의별 짬뽕이 다 생겨났다. 이 와중에 최근 말 그대로 웃기는 짬뽕이 불쑥 등장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채소와 해산물 등 일반적인 짬뽕에 들어가는 각종 부산물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국물에 면만 담아낸, 이름하여 편식짬뽕.

편식짬뽕은 SNS를 통해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각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특히 얼마 전 한 유명 유튜버가 편식짬뽕 먹방을 콘텐츠로 다룬 이후 전국 각지의 수많은 짬뽕인들이 편식짬뽕에 열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물에 면만 들어 있는 게 무슨 짬뽕이냐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귀를 닫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웃기는 짬뽕이오.”


편식짬뽕을 맛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이들이 수원 ‘야수각’을 찾고 있다. 엄청난 웨이팅은 감수해야 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야수각에 다녀가면 호랑이의 기운이 솟아날까.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100분의 기다림…덕분에 동네 한 바퀴

편식짬뽕을 맛볼 수 있는 ‘야수각’은 수원시 매탄동에 위치해 있다. 이름부터 야성이 넘친다. 대기가 엄청나다는 사전 정보를 입수, 이른 점심시간인 오전 11시쯤 방문했으나 대기만 16팀이었다.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식당 앞 수많은 대기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배고픔이 밀려오면서 감정 기복이 심해질 법도 한데, 이들은 인내의 미덕을 발휘하며 좀처럼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역시 짬뽕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30분을 기다렸으나 대기가 한 팀도 줄지 않자 평정심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음식 삼매경에 빠져 있는 이들을 보니 얄미움을 넘어 괜한 악감정까지 차올랐다. 다시금 이성의 끈을 붙잡고 마음을 가다듬을 겸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학창시절 분식집을 드나들던 추억의 골목이 야수각 인근에 있다. 하지만 분식집도 그 시절 정취도 모두 사라졌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야수각으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모교가 있다. 고교 시절 떡볶이를 사 먹으러 자주 드나들던 그 골목. 25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많이 변해 있었다. 과거 오락실이 있던 자리엔 음식점이 들어섰고 그때의 분식집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이름도 모르는 분식집 아주머니는 지금 잘 계시는지, 요즘 학생들은 어디서 떡볶이를 사 먹는지 궁금한 게 많아진다. 예전에 비해 골목은 멀끔하게 정돈돼 있었지만 그 시절 정취가 사라진 건 못내 아쉽다.

30분 간 천천히 동네 산책을 하고 왔는데도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다. 이로부터 40분이 더 지나 무려 1시간 40분의 대기 끝에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토론을 하고 와도 됐을 시간이다.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다녀간 곳은 늘 이런 현상이 뒤따른다. 손님이 급격히 많아지는 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대기가 길어질수록 맛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평가는 더 엄격해진다. 지나친 관심과 기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법. 세상만사 과유불급이다.

대기는 기본, 서두르지 않으면 대기조차 할 수 없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짬뽕밥의 정반대 버전.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Simple is the best? ‘글쎄’

면만 건져 먹고 건더기를 남기는 편식자들을 위해 주인장이 개발했다는 맞춤형 신메뉴 편식짬뽕. 필자처럼 바닥에 가라앉은 마지막 양념 잔여물까지 해치우는 ‘완뽕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실 꽤 있다. 남은 건더기가 그대로 버려지는 것보다는 애초부터 덜어내는 편이 물론 낫다. 가격도 6천원으로 일반 짬뽕보다 저렴해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면과 국물이 전부다. 단출하다. 볶음밥에 딸려 나오는 국물에도 최소 양파는 기본이고 운이 좋으면 홍합 한 점 정도는 들어있기 마련인데, 건더기가 하나도 없다. 아무리 ‘Simple is the best’라지만 심플해도 너무 심플하다. 음식의 시각적 효과도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데 비주얼이 지나치게 허전하다.

면 반 국물 반.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국물을 한 숟갈 떠먹어 보니 짬뽕이 맞다. 면에서도 짬뽕 맛이 난다. 다만 시종일관 굴곡 없는 일정한 맛과 단조로운 식감은 아쉽다. 어디엔가 숨어 있는 맛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계속 생각을 하게 한다. 먹는 내내 혀가 아닌 뇌를 작동해야 했다.

평양냉면이 아직 어렵다. 심심함 속 은근히 전해진다는 그 포인트를 찾지 못해 지금도 조미료 맛이 나는 냉면이 더 친숙하다. 편식짬뽕도 아직은 분명 낯설다. 썰렁해 보이는 설렁탕에도 고기가 들어가고, 라면에도 후레이크를 뿌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야수각에서는 탕수육(9천원)부터 동파육(1만5천원)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요리류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맛도 좋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편식짬뽕만으로 이 집을 설명할 순 없다. 이곳 주인장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어지간한 중국집 음식들은 다 다룬다. 손님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비단 편식짬뽕의 화제성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요리류를 소량으로도 구성해 1만원 안팎의 가격에 제공하는 점이 눈에 띈다. 탕수육과 깐풍기를 두고 고민할 필요 없이 하나씩 시켜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맛도 좋다.

/황성규 기자 homer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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