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지켜낸… 소상공인이 곧 ‘지역경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8. 거리서 피어난 ‘소상공인’
소상공인은 ‘소기업’ 가운데에서도 규모가 특히 작은 자영업자들을 뜻한다. 제조업, 건설업, 운수업 등은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도소매업과 서비스업 등은 5인 미만의 사업자를 말한다. 겉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전국 곳곳에서 가장 넓고 촘촘한 생활 경제의 그물망을 이뤄낸 주역들이다.
광복 직후, 절대적인 식량 부족과 사회 혼란 속에서 생존을 건 장사를 시작한 수많은 가게가 아직 남아 있다. 1945년 문을 연 동두천 떡갈비집 ‘송월관’, 평택의 중식당 ‘영빈루’, 의정부의 국숫집 ‘부흥국수’, 인천의 ‘남창문구사’, 그리고 이듬해 문을 연 인천의 설렁탕집 ‘삼강옥’까지. 이들은 대규모 공장이나 수출 기업처럼 거창한 타이틀은 없었지만, 척박한 땅에서 끈질기게 생존하며 지역의 기억과 상권을 온몸으로 지켜낸 진정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이다.
19일 중소벤처기업부 ‘2022년 중소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전국 소상공인 종사자 수는 약 1천74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경기도는 약 284만3천명, 인천은 약 57만2천명으로, 두 지역을 합치면 전국 소상공인 종사자의 약 32%를 차지한다. 생활밀착형 자영업이 밀집한 경인지역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지역의 일상과 문화를 지탱하는 생활경제의 현장이었다.

특히 오래된 간판을 지켜낸 노포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으로 지역 정체성과 경제 생태계의 중심축을 형성해 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가게를 넘어 한 세대의 생존과 다음 세대의 생업을 동시에 품어냈다는 데 있다. 단골손님과 정을 쌓고, 자녀에게 기술과 철학을 물려주며, 지역의 시간과 문화를 고스란히 이어온 것이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킨다는 건 치열한 경쟁과 변화의 파고를 견뎌낸 결과이자 지역 사회에 변치 않는 신뢰를 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소상공인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낸 작은 기록자이자, 새로운 시대에도 뿌리 깊은 정체성을 지닌 채 기반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경제 주체’다. 이들의 생존이 곧 지역 경제의 회복과 직결되는 이유다.
이상백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장은 “오늘의 경제가 대기업 중심의 고속도로라면 소상공인은 여전히 가장 많은 국민이 지나는 생활도로”라며 “80년간 우리 경제의 밑바탕이 되어준 소상공인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조명받고, 더 튼튼히 지원받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면발 위에 새긴 ‘부흥’… 의정부 국수, 80년 삶을 삶다
시대의 고통이 스민 자리를 채운 온기 어린 한 그릇의 국수. 그 쫄깃한 면발 속에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희망을 좇아 끈질기게 삶을 일궈온 한 남자의 인생이 담겨 있다.
1945년 ‘다시 일어선다’는 염원을 안고 태동한 ‘부흥국수’. 그 이름처럼 혼돈의 시대를 지나 80년의 세월을 굳건히 버텨온 이곳은 63세의 권완구 사장이 묵묵히 스승의 정신을 잇고 있는 삶의 터전이자, 작지만 깊은 지역의 역사다.
부흥국수의 뿌리는 1945년, 고(故) 이길훈 스승이 국수 공장을 설립하며 시작된다. 당시 밀가루는 귀한 쌀을 대신해 허기진 배를 채우던 서민의 주식이었고, 부흥(復興)이란 이름에는 피폐해진 조국이 다시 일어서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1988년, 권완구 사장은 27세의 나이에 이 스승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으며 국수와 인연을 맺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전국 오일장을 돌며 가방, 과일, 생선 등을 팔던 ‘장돌뱅이’였다. 장사 수완은 좋았지만 “나이 들어서도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어느 날, 장터 식당에서 들은 한마디가 계기가 됐다. “요즘 국수는 옛날 맛이 안 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국수와의 질긴 동행이 시작됐다.
권 사장은 “내 인생은 인복 덕분에 풀렸다”고 말한다. 부모의 손을 일찍 놓쳤지만 사회에서 만난 인연들이 삶의 방향을 잡아줬고, 무엇보다 스승 이길훈에게 배운 기술과 철학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특히 스승이 개조한 브이벨트 방식의 국수 기계를 그대로 이어받아 기술을 발전시키며 자신만의 감각을 쌓아왔다.
파주에서 시작한 공장을 스승 권유로 의정부로 옮긴 뒤, 권 사장은 음식점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는 의정부와 양주에 각 한 곳씩 매장을 운영 중이다. 쫄깃한 면발에 담긴 장인의 손맛은 “눈으로 보면 퍼진 것 같지만 먹으면 쫄깃하다”는 손님들의 평처럼 오랜 내공에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의정부 재개발로 옮겨간 양주 매장에도 “그 옛날 맛이 난다”며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어 큰 힘이 된다.

전통에만 기대지 않는 것도 권 사장의 강점이다. 그는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퇴보”라는 신념을 고수한다. 식당 2층에 ‘부흥국수 역사관’을 만들었다. 오래된 메뉴판과 포장지, 스승의 칼, 표창장 등 그간의 발자취를 모아 작은 전시 공간을 꾸몄다. 이곳은 단골뿐 아니라 처음 찾은 손님들에게도 국수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권 사장의 다음 꿈은 ‘국수 박물관’이다. 그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남는 게 아니라, 자신이 걸어온 국수 인생과 그 안에 담긴 한국인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끝으로 그는 “국수처럼 쫄깃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가고싶다”며 “전통을 지키되 늘 새롭게 발전해야 진짜 ‘부흥’이 아니겠냐”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 “4대의 손맛을 잇다”... 인천의 시간을 끓여온 ‘삼강옥’

삼강옥의 공식적인 사업자 등록은 1963년이지만, 인천시민과 함께한 시간은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개성에서 설렁탕집을 하던 1대 박재황 사장은 해방 직후인 1946년 인천 중구 경동에 내려와 삼강옥의 문을 열었다. 루핑(기름종이 지붕)의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이곳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1946년은 인천고(당시 인천상업고) 야구부가 재창단된 해이기도 하다. 국물이 진하고 고기가 푸짐한 설렁탕은 선수들에게 보양식으로 제격이었다. 야구부원들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꼭 삼강옥을 찾았고, 인천으로 원정을 온 다른 지역 팀들도 들러 설렁탕을 먹고 돌아갔다. 하지만 호황을 누리던 삼강옥도 한국전쟁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박재황 사장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폐허가 된 거리를 보며 절망했지만, 다시 가게를 세우고 장작을 때며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박 사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1970년대 며느리 김주숙 씨가 2대 사장으로 삼강옥을 물려받았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교직을 그만두고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1980~90년대 이곳은 인천에서 가장 큰 상업지구였다. 가게 인근에 경기은행, 국민은행, 상업은행, 한일은행 등 은행만 10곳이 넘었고, 하루에 쌀 한 가마니가 팔릴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삼강옥이 있는 동인천역에서 배다리 철교로 이어지는 거리는 예전에 ‘채미전거리’라고 불렸다. ‘채미’는 참외의 사투리로, 이곳은 과일과 각종 채소들을 도매하는 시장이 몰려 있던 자리다. 새벽부터 바삐 움직이던 도매상들은 이른 아침 삼강옥에 들러 허기를 달래곤 했다. 이제 도매시장은 사라지고 북적거리던 거리는 추억이 됐지만 삼강옥은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며 4대째 온기를 전하고 있다.

도매시장이 구월동으로 이전하고, 2000년대 미국산 소고기 파동이 일어나며 발길은 줄었지만 김 사장의 다짐은 여전했다. 가게를 물려받으며 “삼강옥을 100년 가게로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그 다짐은 현재 3대 박영기 사장과 그의 딸 박민경 씨에게 이어지고 있다.
삼강옥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맛만큼은 79년 전 그대로다. 박영기 사장은 옛맛을 지키기 위해 매일 고기를 손질하고 사골을 직접 끓인다. 그는 “손님들이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 손잡고 목욕탕 다녀온 길에 꼭 여기서 설렁탕을 먹었다고 하실 때마다 가게를 물려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딸에게 가게를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며 “100년, 그리고 그 이상 손님들이 찾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경인지역 소상공인 80년: 통계로 본 ‘동네 경제’의 힘
이 같은 소상공인은 농업부터 제조업, 유통, 서비스업까지 전 산업을 아우르며 생활경제의 핵심 축 역할을 해왔다. 광복 이후 2000년대 이전까지는 현대적 개념의 ‘소상공인’과 통계 시스템이 없었지만, 1952년 통계청 통계연감에 종업원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체가 3천492개로 가장 많았다는 기록은 당시 영세 자영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짐작하게 한다.
자영업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며 오늘날 소상공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1963년부터 연간 자료가 확인되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로 본 전국 자영업자 수는 1963년 281만7천명에서 지난해 565만7천명으로 늘었다. 행정구역별 집계가 시작된 1989년에는 전국 505만1천명 중 경기도 59만1천명, 인천 13만4천명이 자영업에 종사하며 지역 기반을 다졌다.
■ 생활 경제의 핵심 축, 경인지역 ‘소상공인’
‘소상공인’은 2000년대 들어 명실상부한 지역 경제의 핵심 축으로 부각됐다.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2000년 경기도 소상공인 종사자는 약 79만명, 사업체는 약 38만개였으며, 인천은 종사자 약 22만명, 사업체 약 11만개 규모를 기록했다.

이후 20여 년간 이들의 규모는 한층 더 비약적으로 커졌다. 2022년 기준 경기도 소상공인 종사자는 약 284만명으로 2000년 대비 약 3.5배 증가했으며, 사업체 수는 약 200만개로 약 5.2배 늘었다. 인천 또한 종사자 수가 약 57만명으로 약 2.5배 증가했고, 사업체 수는 약 41만개로 약 3.5배 늘어났다.
같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소상공인 매출액은 약 1천273조원 규모였으며, 경인지역은 약 431조2천억원을 기록, 전국 소상공인 매출액의 약 33.9%를 형성하며 지역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생존의 길 넘어… 지속 성장을 위한 노력
그러나 이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 지난달 4일 발간한 ‘경기도 소상공인 경제이슈 브리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경기도 전체 개업 점포의 3년 생존율은 50.9%에 불과하며, 1년 생존율도 76.3%로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음식점업은 대부분의 시·군에서 3년 생존율이 50% 미만으로 나타나며 취약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역을 굳건히 지켜온 소상공인들은 빛나는 가치를 지닌다. 특히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들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한다.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을 지키고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현재 경기지역 ‘백 년 가게’(30년 이상 업력)는 192곳, ‘백 년 소공인’(15년 이상 숙련 제조업)은 231곳에 달하며, 인천 또한 백 년 가게 45곳, 백 년 소공인 39곳이 지정돼 있다. 이러한 노포들은 단지 오래된 가게를 넘어, 지역의 귀한 자산이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생존을 넘어 지속 성장을 도모하는 소상공인들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상공인이 ‘생존의 역사 ’를 넘어 ‘지속가능한 경제 주체’로 길게 자리매김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강화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1월 소상공인 경영 안정을 위해 중소기업 육성 자금 2조원을 운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영 안정에는 4천500억원을 지원한다. 허승범 경기도 경제실장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금융 부담을 낮추고 성장 기반을 갖추는 데 중점을 두고 자금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노포 현황을 기반으로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소상공인’ 지정 제도와 연계해 실질적 지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백년소상공인으로 지정되면 판로 지원, 홍보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인천시는 신청부터 심사까지 행정적으로 협력할 예정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달 24일 노포 초청 간담회에서 “노포는 시민의 추억이 깃든 삶의 기록이자 소중한 지역의 문화 자산”이라며 “노포가 자긍심을 갖고 이어질 수 있도록 시가 앞장서 진정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광복 80년’ 불굴의 도전… ‘기적의 경제’ 일구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43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인재와 산업 몰려든 ‘경기·인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3
정통 산업의 뿌리 ‘제조업’…경인지역 제조업 선구자 발자취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kyeonggi.com/article/20250330580237
지역발전 동반자 ‘건설업’… 대한민국 역사를 짓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www.kyeonggi.com/article/20250429580267
사통팔달 ‘자동차 산업’… 경기·인천 꿈 싣고 달리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kyeonggi.com/article/20250527580257
불모지서 싹틔운 전자산업… ‘기술강국’ 꽃피우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kyeonggi.com/article/20250618580432
국민경제 주역 식품업, ‘K-푸드’ 맛있는 기적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kyeonggi.com/article/20250624580047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김샛별 기자 imfine@kyeonggi.com
금유진 기자 newjeans@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준표 "당대표는 단식하는데 시장하려고 날뛰는 영남 중진들"
- "파주시 65세 이상 어르신 주목"…2026년 기초연금 선정 기준 상향
- [사설] 거리 멀어 ‘서울 이전’이라니...공무원 편의주의 아닌가
- 대리운전 승객 사망 전날...대리기사, 지구대 찾았다
- 안성 도심지에 멧돼지 5마리 떼지어 출몰
- ‘미니 신도시’ 인천 구월2지구 본격화…업무·문화·주거 입체적 복합도시 [로컬이슈]
- 하루 쓰레기차 200대 또 오가나...‘초대형 소각장’ 발언에 인천 ‘발칵’
- 포천 한탄강 주상절리, 이제 ‘물 위’에서 걷는다…250m 가람길 시범 운영
- 안산시, 시 승격 40주년 맞아 ‘겨울 빛의 나라’ 특별공연 개최
- 추미애 “윤석열 5년? 표창장 4년 선고하던 배짱 어디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