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로 변해버린 마을…잠기고 쓸려 삶의 터전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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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겨 막힌 길, 숨도 턱 막혔다.
차 내비게이션은 충남 예산군 삽교읍 하포1리마을회관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호수였다.
"자고 있는데 대피하라는 마을 방송이 계속 울렸어요. 정신없이 나오는데 물이 금세 허리춤까지 차오르더라고요. 화물차라도 건져야겠다 싶어 끌고 나오는데, 중간에 엔진이 꺼져버려서 그냥 나왔습니다. 생각해보니 감전되지 않은 게 다행이죠."
마을 전체가 통째로 삽시간에 잠긴 게 그 증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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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넘는 폭우로 마을 잠겨
삽교천 제방 유실로 ‘물바다’
90대 노인 “이런 물난리 처음”
농기계·가축 등 재산 피해 커

물에 잠겨 막힌 길, 숨도 턱 막혔다. 차 내비게이션은 충남 예산군 삽교읍 하포1리마을회관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호수였다.
16일부터 내린 기록적 폭우와 삽교천 제방 유실로 하포리 마을 전체가 통째로 잠긴 지 하루가 지난 18일 오전. 고지대부터 서서히 물이 빠지기 시작했지만 불과 이틀 동안 380㎜가 넘는 비가 쏟아진 데다 삽교천까지 넘쳐 마을 대부분은 여전히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통행 제한 표지판이 있었지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삶의 터전이 걱정된 주민들은 잠옷 바람으로 물이 망쳐놓은 현장을 찾았다. 주민 강정규씨(58)는 오전 6시부터 2시간 넘게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녹조, 진흙과 나뭇가지, 집 안에서 떠밀려 나온 각종 쓰레기로 뒤덮인 도로를 슬리퍼를 신은 채 배회했다. 임시 대피소로 가던 17일 오전 6시, 신발 한짝도 못 챙기고 한푼 두푼 모아 어렵게 마련한 화물차, 트랙터부터 옮기기 바빴기 때문이다. 강씨의 집은 여전히 지붕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잠겨 있었다.

“자고 있는데 대피하라는 마을 방송이 계속 울렸어요. 정신없이 나오는데 물이 금세 허리춤까지 차오르더라고요. 화물차라도 건져야겠다 싶어 끌고 나오는데, 중간에 엔진이 꺼져버려서 그냥 나왔습니다. 생각해보니 감전되지 않은 게 다행이죠.”
스무살 때부터 삽교읍에서 산 이홍용씨(90)도 이런 물난리는 처음 본다며 할 말을 잃었다. 이 일대에서 2㏊(6000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고 있어 상황을 살펴보러 온 그는 “오늘 내로 물이 안 빠지면 벼가 다 썩을 것”이라며 “제방만 안 무너졌어도 이렇게까진 안됐을 텐데”라며 혀를 끌끌 찼다.

주민들은 폭우와 함께 삽교천 제방이 유실된 것이 침수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을 전체가 통째로 삽시간에 잠긴 게 그 증거라는 것이다.
갈 곳을 잃은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물이 빠진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의 농로 옆 가드레일에는 얇은 노끈에 묶인 소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인근 축사를 가보니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2m 넘게 물이 차올랐고, 창고는 주저앉았다. 조사료와 찢긴 비닐이 진흙탕에 뒤엉켜 있었다. 전날 밤 물이 가슴팍까지 오는데도 소들이 걱정돼 축사에 왔었다는 엄승섭씨(70)는 트럭에서 소주 한병을 꺼냈다.
“저기 송아지 죽은 거 보이시죠? 맨 정신으로 저걸 어떻게 봐요. 빗속에서 부랴부랴 근처 축사로 소를 옮기다가 계속 물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급한 대로 고지대 갓길에 묶어놨는데도 족히 46마리는 죽었어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펄밭에서 술을 들이켰지만, 그에게 닥친 현실은 술보다 쓰다. 도움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호우 피해를 본 주민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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