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 이 대통령 '불참'이 정답인 이유 [4강의 시선]
편집자주
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전승절 초청 속 중국의 노림수
'호의'에 '무시'로 응답했던 중국
단호하고 유연한 대응이 국익

중국이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이재명 대통령 참석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승절은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중국의 정치 행사이자, 국제사회에 중국 중심의 '역사적 정의'를 강조하는 외교 무대다. 이번 초청은 의례적 제안이 아니다. 중국은 이를 통해 새 정부의 외교 방향성과 한중 간 전략적 거리의 재설정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외교·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참석 여부를 고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미국 중심의 동맹 구조에 얼마나 긴밀히 연대하는지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새 정부 초기, 이 대통령의 외교적 자율성과 전략적 독립성을 가늠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중국은 전승절을 '반파시스트 역사 연대'의 상징으로 활용하며, 한국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이를 자신들의 서사에 포함시켜 한중 전략적 유대의 복원을 과시하려 한다. 동시에 한국이 한미일 안보 공조 체제에서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려는 전략도 엿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참석은 우리 외교에 치명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일 등 주요 우방국과의 조율 없이 참석할 경우, 한미일 3국 공조에 균열이 생긴다는 신호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이들과 같은 무대에 선 모습은, 미국과 일본 내 의회 및 여론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트럼프 대통령 중심의 공화당 정치세력과 워싱턴 정가에서는 한국의 전략적 방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파장도 만만치 않다. 사드 보복 이후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반중 정서는 여전히 강하다. 최근에는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내 중국의 일방적 구조물 설치, 군사시설 불법 촬영 등으로 대중 여론이 더욱 악화된 상황이다. 이런 정서 속에서 대통령이 중국군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보수 야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중국 편들기', '북중러 축 편승'이라는 거센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대내외 리더십에 중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간과해서 안 될 점은, 중국의 초청이 반드시 '우호적 행보'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필요에 따라 '호의'를 '무시'로 바꾼 전례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했음에도,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즉각 경제 보복에 나섰다. 최근에도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지만, 시진핑 주석은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등 외교적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더라도, 시 주석이 경주 APEC에만 참석하고 서울 방문 요청에는 응답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뭘까.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대응은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않되, 전직 고위 인사나 국회의장 등 적절한 상징성과 무게를 갖춘 인사를 특사로 파견하는 방식이다. 중국에 대한 외교적 예우는 유지하되, 대통령의 행보는 한미일 공조라는 전략적 틀 안에서 조율될 수 있다. 불참 사유는 '국내 일정'이나 '경제 현안 집중' 등 외교적 언어로 정리하고, 중국에는 별도 채널을 통해 한중관계 복원 의지를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교는 제스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상징과 메시지의 예술이다. 전승절 초청에 대한 대응은 단순한 행사 참석 여부를 넘어, 한국 외교의 전략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시험대다. 이 대통령이 보여줄 첫 대중 외교는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전략적 판단 위에 서야 한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 전승절 참석보다는 '신중한 불참'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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