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전 '감자 먹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호모 쿠란스'가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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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왕이나 귀족의 궁전·저택에서의 화려한 만찬이 아니라 농부의 부엌에 차려진 조촐한 저녁 식사 장면이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하는 이유는 뭘까? 가족이나 이웃처럼 보이는 성인 여성 2명, 성인 남성 2명, 여자아이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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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려 자연·인류 지키는 농부, 돌봄 노동자들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합니다.

한여름으로 가는 7월 중순이다. 오래전 이즈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 들른 적이 있다. 여러 작품 중에서도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감자 먹는 사람들'이었다. 1885년에 그려진 그림 앞에서 꽤 긴 시간 동안 발길을 멈췄다. 그림에서 어두운 실내를 비추는 유일한 빛은 천장에 달려 있는 작은 호롱불의 불빛이었는데, 그 불꽃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마치 눈 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 농부의 신성한 노동에 대한 존경과 애정
왕이나 귀족의 궁전·저택에서의 화려한 만찬이 아니라 농부의 부엌에 차려진 조촐한 저녁 식사 장면이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하는 이유는 뭘까? 가족이나 이웃처럼 보이는 성인 여성 2명, 성인 남성 2명, 여자아이 1명. 고작 5명이 자그마한 정사각형의 나무 식탁에 둘러앉아 맨손으로 감자를 먹으며 차를 마시는 이 소박한 모습이 이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유는 뭘까?

이윤희 미술평론가는 '꿈꾸는 방: 여성과 공간의 미술사'(2023)에서 "가족의 허름한 식탁 그림에서 마치 예수의 마지막 성만찬 같은 경건하고도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은, 화가가 이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물결이 가속화되고 있던 시기, 들판에서 땀 흘려 일해 자기 손으로 먹을 것을 직접 생산했던 농부의 신성한 노동에 대한 반 고흐의 깊은 존경과 애정이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주된 요인일 것이다.
농사·공예... 땀 흘리는 정직한 노동이 인류와 지구를 구한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인류는 많은 걸 잃었다. 특히 농부의 농사 노동, 장인의 공예 노동, 여성의 돌봄 노동을 비롯해 돈 버는 것을 본래 목적으로 하지 않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빠르게 퇴락했다. '임금'이라는 돈을 버는 활동이 아닌 한, 시간당 생산성을 정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닌 한 그것은 '노동이 아닌 것'으로 간주됐다. '쓸모없는 일'이나 '가능한 한 피하면 좋은 일' 정도로만 여겨졌다. 특히나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한 오늘날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사회는 '하찮은 일'이나 '궂은일'로만 간주되는 이런 활동들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농부로서, 장인으로서, 돌봄 제공자로서 인간을 돌볼 뿐만 아니라 비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와 자연 또한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 활동들이 전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즉 생명학연구회가 '호모 쿠란스, 돌보는 인간이 온다'(2025)에서 강조했듯, 우리 모두 '호모 쿠란스'(Homo Curans·돌보는 인간)의 의미와 중요성에 새롭게 천착할 때 비로소 인류의 대안적 미래 제시가 가능해진다.
연구실 벽에 걸린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인쇄본을 보면서, 오늘도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가 소외된 채 일하는 것이 아닌 한 노동은 오직 부담이기만 한 게 아니라 즐거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무리 로봇·AI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손으로 직접 가꾸고 돌보는 감각 그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땀 흘려 일하는 정직한 노동만이 앞으로의 인류와 지구를 구하리라는 것을.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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