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한·일 수교 60주년과 동아시아 헌장

국익의 정의도 마찬가지다. 패권을 장악한 집단이나 개인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에 따라 국익을 정의하고, 이것을 목표로 설득이나 혹은 강압을 통해 국민을 이끌어 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국민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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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등 겪었던
아시아에 다시 전쟁 분위기 감돌아
전쟁 문제 정치인에만 맡길순 없어
지역의 번영 위해 평화 장치 필요
」

이런 주제 관련 토론에 참여하는 분들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특정 시기에 특정 정권 혹은 집단의 관심과 이해관계 그리고 정책에 관해 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 다른 흔한 문제도 있다. 주로 지식인들로 구성된 회의의 장에서도 참여자들이 본인 나라의 정책 노선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당면한 현실에서 자신이 속한 나라의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만이 옳고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토론이 정부 간 외교 협상의 수준에서 더 진척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역사에서 흔히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나라나 국민의 진정한 이해관계는 당시에 집권하고 있는 집단이나 인물들이 추구하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은 특히 오늘날과 같이 국적과 국경을 불문하고 사람들의 일상이나 이해관계 혹은 생각이 밀접하게 연결되는 상황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나라 어떤 정부도 한때의 잘못된 판단이나 정권의 특별한 이해관계로 주변 여러 나라 사람에게 큰 재앙이 되는 정책을 추구할 수도 있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 명색이 모두 공화국이고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나라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당장 유럽이나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화들도 멀리서 일어나는,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현실이 아니다.
한때 이 지역, 동아시아의 안전보장을 자전거 바퀴에 비유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 바퀴의 중심에 워싱턴이 있고 바퀴의 여러 살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미국과 맺고 있는 개별적인 관계를 상징한다. 결국은 각 나라가 나름 미국과 맺은 관계를 기반으로 이 지역의 안전보장 체제가 유지 된다는 얘기였다.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런 비유는 이제 적실하지 않다. 대신 동아시아에서도 전쟁이나 전쟁과 관련된 끔찍한 이야기들이 마치 눈앞에 닥친 현실의 일부처럼 나오고 있다.
동아시아는 워낙 오랜 기간 한자의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 공동체였다. 여러 나라가 공유하는 공적 윤리의 기본 교과서들이 있었고 왕성한 상호 교류를 통해 문화적인 풍요화(interfertilization)를 이룩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 이래 그리고 특히 지난 세기의 참담한 경험들,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 태평양 전쟁 그리고 이어진 한국 전쟁과 월남 전쟁 등 전쟁의 참화를 뒤로하고 이제 막 새로운 부흥의 희망이 싹트려는 시기에 또다시 전쟁의 이야기가 일상의 일부처럼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은 여전히 안정에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이 지역 나름의 창의적인 노력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전쟁은 너무 중요한 문제여서 군인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사람의 생존에 직접 관련이 되는 전쟁 문제를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인식이 중요해졌다. 전쟁은 흔히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고통을 대가로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황의 추이도 전망하기 어려운 1941년에 미국과 영국은 대서양 헌장을 통해 전후 세계질서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이 헌장을 소련을 포함 33개국이 승인했고 그 구상은 전후 성립한 UN의 원칙이 되었다. 이 헌장에 관한 비판과 반론도 있었지만, 앞날이 불확실한 시기였음에도 대전 후 새로운 세계 질서의 대강을 정의해 큰 틀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평가할만하다.
한국과 일본은 올해 수교 60주년을 맞아 새삼 교류와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의 협력이 두 나라 사이 관계를 넘어 이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함께하는 창의적인 기획으로 확대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순 없을까. 예를 들어 ‘동아시아 헌장’ 같은 것이다. 이 지역의 여러 나라가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크게는 모두가 민주와 공화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지역 차원의 안정과 평화 없이는 한·일 두 나라만의 안전과 번영도 어차피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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