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지지자서 희생자로, 영웅없는 빈 '영웅 광장'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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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반전의 세계사’] 기만적 역사의 기억
‘영웅 광장’은 빈 방문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13세기에 오스트리아 대공의 궁전으로 지어 15세기부터는 합스부르크의 왕궁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궁이었던 호프부르크의 전면에 펼쳐진 이 유서 깊은 광장에는 영웅이 없다. 나폴레옹조차 어려워했던 오스트리아 대공 칼 루드비히의 기마상과 사보이 출신으로 오토만 튀르키예의 위협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을 구한 오이겐 프란츠 원수의 기마상이 옛 영웅의 아련한 추억을 전해 주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기마상을 지나쳐 각자 길을 서두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황궁의 한쪽 측면을 차지한 오스트리아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을 거쳐 영웅 광장의 끄트머리로 가면 ‘발하우스 광장’이라는 작은 공간 옆에 수수한 수상 관저와 내각 회의 건물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에곤 실레의 후기 작품들을 소장한 레오폴트 미술관, 예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을 거쳐 수줍은 듯한 작은 규모의 수상 관저까지 오면 관광객의 동선은 평온하기 짝이 없다.
![히틀러가 1938년 3월 15일 오스트리아 빈 ‘영웅 광장’에서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을 축하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설이 있은 지 한 달도 안된 4월 10일 오스트리아 국민투표 결과 99.75%의 찬성표로 나치 독일로의 합병을 승인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joongangsunday/20250818155241490vytq.jpg)
군사 법정의 박해자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일군에서 탈영했다가 붙잡혀 나치 군사 법정에서 처벌받은 오스트리아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임을 알 수 있다. 탈영병들의 목소리를 발췌해서 기념비 옆에 따로 적어 놓은 덕분이다. “오스트리아인으로 나치 군대에 있는 게 외인부대에 복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싸우기보다 살아남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를 저항 투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 무의미한 싸움에 희생되기 싫었다” 등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노라면, 21세기 민주적 기억 문화의 영웅은 기마상의 장군들이 아니라 무명의 탈영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탈영병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는 한 탈영병의 단호한 한마디가 인상적이지만, 조국과 민족, 가족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들 대신 탈영병의 용기를 기억한다는 발상은 사실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탈영병 기념비를 세우기 전까지, 나치 군대에 복무하다가 전사한 오스트리아인들은 대개 책임감이 강한 시민으로 기억되었다. 오스트리아 재향군인회의 완고한 회원들은 전우를 버리고 도망간 탈영병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탈영병을 기리는 문화가 한국 사회에서도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을 탈영해 광복군에 합류한 장준하와 김준엽은 한국 사회가 영웅으로 기억하는 대표적인 탈영병들이다. 또 탈영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12월 3일의 쿠데타를 기억할 때, 바람직한 군인상은 명령에 불복하고 소극적인 저항을 보이거나 시민들을 보호하려고 애쓰며 양심적 명령 거부권을 실천한 군인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 기념으로 1995년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기획한 귄터 그라스와 오에 겐자부로의 편지 대담에서 나온 탈영병 이야기도 자못 흥미롭다. 전쟁 막바지에 즉결 처형되어 서부전선의 전봇대에 걸려 있던 독일군 탈영병들의 참혹한 기억을 지울 수 없었던 그라스는 오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들은 비겁자가 아니라 전쟁범죄를 거부한 제2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썼다. 오에는 탈영병으로 처형된 아들을 부끄럽게 여긴 부모의 이야기를 전하며, 전체주의 천황제 윤리가 가족 안에까지 깊이 침투했다고 개탄했다.
![오스트리아 빈 ‘영웅 광장’의 ‘나치 군사 법정의 박해자’를 기리는 기념비. 독일군에서 탈영했다가 붙잡혀 처벌받은 오스트리아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다. [사진 임지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joongangsunday/20250818155242933pxvd.jpg)
탈영병의 역사적 복권은 독일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한참 후에나 이뤄졌다. 서독에서 탈영병은 히틀러에 대한 저항이라는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해 배상법에서 제외됐다. 나치 친위대 부상병들은 배상받았지만, 탈영병과 그 가족들은 국가의 배상 혜택을 받지 못했다. 동독에서도 탈영병은 공산주의의 사상적 동기를 입증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배상받았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무명 탈영병’ 조각상이 세워진 것은 1988년의 일이지만, 여전히 많은 반대에 직면해 있다. 조국을 위해 전사한 ‘무명용사’ 대신 평화를 위해 탈영한 ‘무명 탈영병’을 기리는 기억 문화는 아직 일각의 급진적 대안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빈의 ‘나치 군사 법정 박해자 기념비’도 속내는 훨씬 복잡하다. 기념비 상단에 올라가면 호프부르크 궁의 전면부가 잘 들어오는데, 그 한 가운데 노이에부르크의 큰 발코니는 1938년 3월 15일 히틀러가 영웅 광장에 빽빽하게 군집한 25만의 빈 시민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을 축하하는 연설을 한 장소로 유명하다. 연설이 있은 지 한 달도 채 못된 4월 10일 99.75%의 찬성으로 나치 독일로의 합병을 승인한 오스트리아 국민투표 결과를 보면, 이들은 마지못해 동원된 청중이기보다는 열렬한 나치 지지자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1938년 3월 15일 광장에 모인 빈 시민들이 히틀러와 합병에 열광한 기억은 영웅 광장 어디에도 없다. 감추고 싶은 기억인 것이다. ‘나치 군사 법정 박해자 기념비’의 영어 번역도 수상하다. 박해받은 자라는 뜻의 ‘Verfolgte’가 슬그머니 희생자를 뜻하는 ‘victim’으로 바뀌었다. 이 기념비에 남은 나치 시대의 기억은 나치의 희생자라는 것이었다. 3월 13일 빈 소년 합창단이 길거리에서 부른 히틀러 송가도 히틀러의 연설에 환호하고 합병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기억도 전문 문서고 안에서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영웅 광장’은 15세기부터 합스부르크의 왕궁으로 쓰인 호프부르크 왕궁의 전면에 위치해있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joongangsunday/20250818155244271dvwr.jpg)
현실은 기억보다 더 복잡하다. 오스트리아인은 제3제국 주민의 8%였지만, 나치 친위대의 오스트리아인 비율은 14%에 이른다. 심신장애자에 대한 ‘안락사’ 프로그램부터 아우슈비츠에 이르기까지 집단학살에 어떤 형식으로든 가담한 학살자 중 오스트리아인의 비율은 무려 40%에 달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110명 단원 중 여덟 명이 나치 당원이었는데, 빈 필하모닉의 117명 단원 중 나치는 45명에 이르렀다.
전쟁이 끝난 후 빈의 유대인 인구는 20만 명에서 6500명으로 급감했다. 빈의 오스트리아인이 숨겨준 유대인은 200명뿐이었다. 강제수용소로 쫓겨난 유대인의 빈집을 점거한 오스트리아 이웃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유대인에게 “너 아직도 살아 있었냐”고 매몰차게 물었다. 홀로코스트는 빈 주택난 해소의 비결이었다.
문제는 나치 시대에 대한 기만적 기억이 전후 오스트리아의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나치 전범 논란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유엔 사무총장을 중임하고 1986년에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쿠르트 발트하임의 흔적도 예사롭지 않다. 소련이 발트하임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지지한 것은 그의 약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외교가의 공공연한 비밀은 이미 시사해주는 바가 많았다. 1987년 미 국무부는 발트하임이 나치의 전범 행위에 관여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국가 원수라도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했다. ‘나치의 희생자’ 오스트리아인들은 자기기만적 기억에 희생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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