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에너지 수도…제주에 주는 시사점은?
[KBS 제주]

푸른 바다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자랑하는 곳. 그리고 인구는 적지만 미래 에너지 산업의 중심을 꿈꾸는 곳.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제주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주와 마찬가지로 이런 수식어가 들어맞는 곳이 한 곳 더 있습니다. 바로 핀란드 서해안의 작은 지역 '바사(Vaasa)'입니다.
■ 작지만 강한 북유럽 에너지 수도…‘에너지 바사’
바사는 발트해와 맞닿아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군도를 품고 있습니다. 그 덕에 바사의 해안선은 핀란드 유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바사 지역의 인구는 11만여 명으로, 핀란드 전체 인구의 2%에 해당하는 작은 지역입니다.
이렇게 작은 도시지만 바사는 스스로를 '북유럽 에너지 수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호칭이 허풍일까요?
■ 에너지 산업을 계기로 성장…“막대한 R&D 투자”
바사 지역은 1906년 빅스트롬 형제가 미국에서 배운 엔진 제조 기술을 가져오면서 에너지 산업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핀란드 동해안의 생산 시설들이 서해안 바사로 이전하면서 바르질라와 스트롬버그 같은 큰 기업들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스트롬버그가 ABB에 인수된 뒤에는, 스트롬버그에서 일하던 인재들이 새로운 회사를 차례로 세웠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클러스터인 '에너지 바사'는 2000년대 들어 에너지 효율과 청정 에너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10년 만에 고용 인력이 두 배로 늘어나는 성장을 거뒀습니다.

물론 연구개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에너지 바사'는 가격 경쟁을 포기하고,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솔루션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실제 바사의 기업들은 지난 15년 동안 R&D 예산을 3배 이상 늘렸는데, 그 결과 핀란드 전체의 전기 및 자동화 R&D 예산의 90% 이상이 바사에서 투자됐습니다. 전 세계 모든 전력망에 바사에서 개발한 기술이 적용된 배경입니다.
'에너지 바사'는 현재 친환경 배터리 산업단지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기가바사'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의 비결…‘삼중 나선’ 구조
그렇다면 '에너지 바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삼중 나선' 구조를 통한 인재 양성 시스템입니다. '삼중 나선' 구조는 기업과 대학, 지방정부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시너지를 내는 구조를 말합니다.

'에너지 바사'에서 교육은 에너지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 과정에 에너지 관련 주제를 통합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에너지 분야에 대한 흥미와 전문성을 키우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실제 바사에서는 어릴 때부터 에너지 절약이나 재활용, 기후변화 같은 현상들을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에너지 산업의 기초가 되는 물리와 화학, 수학 공부에 중점을 두죠. 또 에너지 분야의 자격증 취득 등 직업 교육에도 에너지가 중심입니다.

에너지에 초점을 맞춘 교육은 대학에서도 이어집니다.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에너지 아카데미'인데, 바사 지역 대학 6곳과 주요 기업들, 그리고 지방정부가 함께 만든 협력 모델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실제 회사의 문제를 해결해 보면서 전문 기술과 역량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졸업한 뒤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는 겁니다.
또 다른 예로는 바사대학교의 바사 에너지 비즈니스 혁신센터(VEBIC)도 있습니다. 대학은 기업 수요에 맞는 맞춤형 연구를 수행하고,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기존 기술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지방정부는 이러한 협력을 정책적, 재정적으로 지원합니다. 다시 말해, 대학교의 연구 능력을 바탕으로, 기업의 실제적인 필요를 해결하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아 에너지 분야의 혁신을 이끌어내는 '삼중 나선' 모델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겁니다.
■ 경쟁을 넘어 협력하는 기업 생태계…‘에너지 삼포’
또 눈에 띄는 점은 기업들이 경쟁을 넘어 협력하는 생태계입니다.
'에너지 바사'에서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생태계가 바로 '에너지 삼포(Energy Sampo)'입니다. '삼포'는 핀란드 신화에 나오는 마법의 맷돌로, 풍요와 번영을 상징합니다.
에너지 삼포는 탄소 중립 에너지 솔루션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협력 플랫폼입니다. ABB, 댄포스, 바르질라, 히타치 에너지 등 주요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생태계에 참여한 기업들은 '기후 변화 같은 거대한 과제는 어느 한 기업이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합니다.

이들은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했던 대규모 파일럿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실행합니다. 실제 협력 사례로는 아우로라 보트니아(Aurora Botnia) 선박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바르질라와 댄포스 같은 '에너지 바사' 기업들이 참여해, 최첨단 LNG-배터리 하이브리드 선박에 필요한 친환경 솔루션을 공동 개발했습니다.
또 풍력발전으로 그린 수소를 만든 뒤 생물유래 CO2와 결합해 무탄소 합성 메탄올을 만들고, 폐열은 지역난방에 사용하는 'BotH2nia' 같은 프로젝트에도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댄포스의 쉐카르 쿠발 부사장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일들이 파트너들과 함께할 때 실현 가능해진다"며 "협력을 통해 탈탄소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지역…제주가 지향해야 할 점은?
제주와 여러 면에서 닮았지만, 에너지 수도로 거듭난 바사. 제주는 바사와 달리 제조업 기반이 약하지만,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 분야에서 강력한 성장 동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제주는 전국 최고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과 전기차 보급률을 자랑하면서 우리나라 에너지 전환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으로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기회도 열렸습니다. 제주도 역시 에너지 대전환을 지역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을 이끌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바사의 성공 비결에서 제주가 주목해야 할 점은 명확합니다. '에너지 수도'라는 비전 아래 기업-대학-지방정부의 유기적 협력, 장기적 인재 양성 시스템, 그리고 기업 간 협력 플랫폼 구축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할 때 제주 역시 에너지 대전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년 KPF 디플로마 기후테크(전기화)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김가람 기자 (gara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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