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은 지속 가능한 정의·화해, 노벨평화상 추천 자격 충분”

한 지역의 공동체가 몰살당할 위기에 놓였지만, 폐허 위에서 공동체를 복원한 제주도민들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받기 충분하다는 평가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정치학자들에게 공유됐다.
국제정치학회(IPSA) 2025서울 세계대회의 후속 행사인 제주 워크숍이 17일 제주한라대학교 컨벤셔홀에서 열렸다. 국제정치학회는 세계 최대의 정치학 학술행사로 평가받는데, 올해 서울 세계대회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특별연설에 나선 바 있다.
제주 워크숍은 한국정치학회(KPSA), 제주4.3평화재단, IPSA 서울총회 지역조직위원회(LOC)가 공동 주최하고, 국제정치학회(IPSA) 및 노무현재단이 후원했다. 제주 워크숍 주제는 '민주주의 후퇴 시대의 평화와 민주주의의 재창조'이다.
행사는 두 개 세션으로 진행됐다. 1부는 '평화와 민주주의', 2부는 '제주4.3과 평화-노무현의 이야기'이다. 특별 세션으로 마련된 2부는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발표를 맡았고, 김종민 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양성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상임부회장, 김동만 제주한라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사회는 강창일 전 국회의원이 맡았다.
이날 워크숍의 4.3 세션은 4.3의 화해-상생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저항-항쟁은 크게 부각하지는 않았다.
양조훈 전 이사장은 4.3 전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부터 3.1절 경찰 발포, 도민 총파업, 초토화 작전과 이후 기나긴 진상규명의 과정까지 4.3의 긴 역사를 요약해 들려줬다. 그러면서 "한국 대통령은 4.3의 책임에 대해 네 번이나 사과했지만 아직도 미국은 침묵 중"이라며 "4.3은 이행기 정의 구현의 대표 사례로 꼽을 만하다. 항쟁·수난의 역사도 모자라 반세기 동안 은폐의 역사를 감내하면서 진실 찾기 운동, 정부의 조사와 사과, 보상·사법 정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제주4.3은 진실·평화·인권·화해·정의의 측면에서 세계 과거사 해결의 롤모델로 부르기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발표를 맡은 박명림 교수 역시 의견을 같이 하면서 4.3 진상규명 과정은 마치 '안티고네'적 상황이었다고 빗대 설명했다. 그리스 신화 속 등장인물인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위한 장례를 치렀다가, 반역자의 장례를 금지한 크레온을 격분하게 만들어 주변 가족 모두 비극을 맞이한다.
박명림 교수는 "자살을 하도록 내몰렸던 숱한 안티고네적 상황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자신과 공동체를 살리는 제주인들은 실로 얼마나 대단한가. 학살의 현장을 답사할 때마다 4.3적 상황이 안티고네적 상황이라고 상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장 비극적인 전쟁을 경험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이 눈부시게 성장했듯이, 제주 역시 부상을 입었지만 극복했다"며 "지속가능한 평화, 지속가능한 정의, 지속가능한 화해의 측면에서 4.3을 극복한 제주도민들은 노벨평화상으로 마땅히 추천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들은 발표자들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저마다 생각하는 4.3의 과제를 덧붙였다.
김동만 교수는 "4.3은 과거 청산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추가 진상규명의 과제가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4.3을 세계에 알릴 때는 정의로운 해결 과정 속 비극적 역사로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억압과 학살을 이겨낸 회복의 역사를 넘어서, 인류와 어떤 가치를 공유해야 할 것인지가 4.3의 남은 과제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성주 상임부회장은 "더 큰 화해와 상생을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진정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책임과 사과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4.3을 훼손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제도적 여건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종민 이사장은 "4.3 기록물이 올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유네스코 관계자가 특별히 강조한 부분이 있다. 4.3 기록물 등재는 당시 자료 뿐만 아니라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탄압을 무릅쓰고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 덕분이라는 것"이라며 "오늘 날 여러분이 앉아있는 이 자리는 4.3 당시 깡그리 불타고 잿더미였던 곳이다. 아버지, 어머니 등 가족을 잃고 10살도 안된 어린 소년소녀들이 끝내 살아남아 가정을 이루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제주 공동체를 복원했다. 이것은 정말 기적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4.3은 반복되서는 안될 비극이지만, 그것을 극복한 도민들의 역사는 위대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