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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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출판한 이후에 하루키의 주변 사람들은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작품으로 인해 하루키가 어째서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인지 확실히 알았다.
나는 여전히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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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어떤 작가는 작가의 이름 그 자체를 읽는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하루키를 읽는다는 문장이 성립하는 작가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 하루키를 읽은 건 중학생 때였다. 어린 시절의 독서란 대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을 뒤늦게 따라 읽게 되는 경우가 많고, 나 또한 그랬다. 당시엔 하루키 소설 외에도 일본 문학이 유행이었고, 나도 일본 문학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류. 부드럽고 쓸쓸한, 그러나 어딘가 건조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
그리고 하루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음. 그러니까 건조하다 못해 쿨한 인물들의 원조 격이라는 거지?' 정도였다. 사실 그마저도 '상실의 시대' 한 권만 읽을 뿐이었다. 다시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건 대학원 수업에서였다. '태엽 감는 새'를 과제로 읽었고, 사실 그때도 큰 감흥은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하루키의 세계가 이런 거구먼?' 하고 심상하게 넘겨짚었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게 된 건 조금 달랐다. 등단 직후, 누군가 인터넷에 내 소설에 대해 "분명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좋아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리뷰를 남긴 것이다. 나는 하루키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반발심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주문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나의 글은 언제나 나보다 솔직하다는 것을. 일면식도 없던 그 사람은 나의 취향을 정확히 짚어냈다.

누군가 내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줄거리를 설명하라고 요청한다면 참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물들은 그저 단골 바에서 맥주를 마셔댈 뿐이니까. 그런데도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이유는,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아마,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하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것만 같은 불안, 소통 없이도 이해받고 싶은 마음, 나와 어울리지 않는 나,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일. 나 역시도 이야기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소설을 택한 사람이었으니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출판한 이후에 하루키의 주변 사람들은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일화를 언급하며 하루키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쓴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말을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아마 써야 할 필연성이 없었던 것이리라. 필연성이 없으면-가령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아무도 소설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썼다. 그것은 역시 내 안에 그럴 만한 필연성이 존재했다는 뜻이리라."
나는 이 작품으로 인해 하루키가 어째서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인지 확실히 알았다. 작가와 작품 사이의 필연성을 발견하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독서의 경험은 없다는 것도. 나는 여전히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만큼은 확실히 좋아한다. 어떤 작가의 이름을 읽는 일이 그 작가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면,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하루키라는 이름을 '읽게' 된 셈이다.
송지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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