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언어로 펼치는 무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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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상 수상 작가인 이수지에 대해서는 늘 쓰고 싶은 게 많다.
여러개의 공간을 토끼 굴을 드나드는 것처럼 설정하고 토끼가 전시의 안내자가 된 것도 흥미롭지만, 미술관 공간을 그림책의 무대로 확장하려 했다는 작가의 의도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책에서 무대라는 장치는 이것을 실험하는 장치이자, 평면의 그림책을 입체 이상으로 확장하는 매개다.
공연 무대를 납작하게 눌러 그림책에 담아놓은 것처럼 극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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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상 수상 작가인 이수지에 대해서는 늘 쓰고 싶은 게 많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페이지를 건너다’(6월29일까지)를 번거로움에도 찾은 것은 전시 공간이 궁금해서였다. 여러개의 공간을 토끼 굴을 드나드는 것처럼 설정하고 토끼가 전시의 안내자가 된 것도 흥미롭지만, 미술관 공간을 그림책의 무대로 확장하려 했다는 작가의 의도를 체험할 수 있었다. 평소 그림책은 입체적인 무대를 눌러 놓은 종이 묶음이라는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었다.
그는 아예 그림책에 무대를 직접 들여오기도 한다. 데뷔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2)에서는 벽난로가 무대가 되어, 관객이 지켜보는 것을 의식하면서 전개된다. ‘그림자놀이’(2010) 역시 전등이 켜지면서 놀이가 일어나고 “딸깍” 꺼지면서 모든 대상이 사라진다. 전등 스위치가 무대가 바뀌는 암전 장치인 것이다.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의 음악 ‘사계’ 중 ‘여름’이 모티브가 되어 연주자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또 다른 서사 무대가 펼쳐지는데 여름날에 뛰노는 다섯 아이로 꽉 채워진다. 쨍하고 생생한 색종이의 색이 그 자체로 반짝이는 아이들 같아서 콜라주로 작업했다는 작가의 말이 다가온다. 환하고 강렬한 여름 햇빛, 우르르 쾅, 천둥번개 소리와 거센 소나기가 비발디의 음악과 함께 쏟아진다. 연주가 끝나면 서사의 무대도 끝나게 된다. 작가인 듯한 홀로 남아있는 관객을 마지막으로 하면서.
‘여름이 온다’는 음악은 시각적인 묘사나 설명이 어렵고, 그림은 시간을 표현하기 어려운데, 이 둘을 연속된 그림들이 묶인 그림책으로 결합하면 서사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작품이다. 이수지의 그림책과 무대와의 깊은 연관성은, 그가 늘 천착하고 있다고 밝힌 ‘현실과 환상의 경계’ ‘책이 가진 물성의 종착지로서 그림책’ ‘책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법과 그 속에서 독자의 역할’에 기인한다. 그의 그림책에서 무대라는 장치는 이것을 실험하는 장치이자, 평면의 그림책을 입체 이상으로 확장하는 매개다.
사실, 그림책의 다른 매체로의 확장과 구현은 오랫동안 그림책의 중요한 과제였다. 현대 그림책을 열었다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1963)의 작가 모리스 샌닥도 마찬가지였다. 샌닥은 1980년 오페라 ‘마술피리’의 무대 및 의상을 디자인했다. 그때의 스케치를 보면, 그의 그림책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1981)에서 원경과 중경, 근경이 헐겁게 결합된 다소 기괴한 느낌의 배경이 바로 이해된다. 공연 무대를 납작하게 눌러 그림책에 담아놓은 것처럼 극적으로 다가온다. 샌닥에게 오페라 무대는 그림책의 확장된 무대인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림책은 소스로서 존재하고, 그것이 어떤 특정한 곳에 갔을 때 변화하는 것에 흥미로움을 느낀다. 기존 그림책을 풀어헤친 그림을 보여주는 원화 전시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이수지의 말처럼 전시에도 많은 시사를 준다. 이로 인해 작가의 의도가 선명해지고 잘 보여지는 전시일수록 관람객들은 더 즐거운 것이다. (같은 콘셉트의 다음 전시는 경북 의성 조문국박물관 9월5일부터)
조은숙 그림책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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