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 비상구는 ‘통곡의 계단’… ‘강선우 사태’에 입 연 보좌진 [이슈전파사]

“처음에 강선우 후보자 사건이 터졌을 때 솔직히 낙마 사유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돌이켜 보니 스스로 자괴감이 드네요.”
보좌진 A씨의 말이다. 보좌진끼리의 말로 ‘국회 밥’이 좀 쌓이니 그 정도의 ‘갑질’은 예사로 받아들이게 되더란 얘기다. 그는 “이 일을 한 지 오래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뭐가 문제야”라는 의원들, ‘엄호’하는 여당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사건’이 국회 보좌진이 처한 현실, 그간 묵인돼왔던 부당한 처우 문제를 깨웠다. 보좌진 B씨는 “명절에 의원 집에 가서 전 부친다거나, 이삿날 동원되는 일 정도는 너무 흔하다”며 “국회라는 공간의 문화 자체가 그렇게 굳어졌다”고 말했다. 의원이 차에서 내리기 전에 문을 열고 가방을 들어주는 것부터,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 도시락이 오면 뚜껑을 열어 수저 놓아주는 것 정도는 일상이란 얘기다.
무엇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좌진이 분노하는 이유는 갑질 사건이 보도된 그 이후 때문이다. ‘2차 가해’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이어져서다. 보좌진 C씨는 “후보자가 발달장애 아이를 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고, 엄마로서의 후보자는 훌륭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그것이 타인에게 저지른 나쁜 행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보좌진 D씨도 “이 사건 이후 보좌진끼리 ‘너희 의원님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얘기를 많이 나눈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야’라는 의원들이 많다”며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과 사무처 직원들의 익명 페이스북 페이지인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도 “보좌진이 당한 갑질까지 (질의서로) ‘커버’ 쳐주려니 보좌진으로서 너무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심하다” “쓰레기와 변기 사건으로 국회의 갑질 기준이 한층 높아졌다” “여당 의원님들 덕분에 이제 부조리한 상황에도 침묵을 강요당할 것” “의원의 갑질은 피해자 중심이 아닌 의원 중심으로 처리된다”는 냉소와 비판이 잇따른다.
명절에 전 부치고, 이삿짐 나르고… 성폭력까지

의원들의 갑질은 여의도의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보좌진의 뺨을 때린 의원, 휴가 중에도 언제든 호출하면 복귀할 수 있도록 해외여행을 금지시킨 의원, 매일 아침 집에 와서 밥을 하게 한 의원, 화가 나서 강변북로에서 보좌진을 내리게 한 의원 등 숱한 풍문이 떠돌았다.
보좌진 성폭력 의혹도 마찬가지다. 보좌진 D씨는 “보고 때 의원이 문을 닫고 들어오라고 해 몸을 만지거나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는 등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하는 동료를 여럿 봤다”며 “그래도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의원회관 비상계단에서 서로 겪은 일을 털어놓고 우는 것뿐”이라고 토로했다. 가장 낮은 직급의 여성 비서관들이 당하는 경우엔 공론화하기도 어렵다.
특정 정당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지난 3일 성명을 내어 “진보당의 정치인이 자신의 일상생활을 돕는 일명 ‘생활비서’라는 해괴망측한 역할을 만들어 여성 당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성폭력을 서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진보당의 진상 조사와 사과를 요구했다. 진보당은 ‘생활비서’라는 직책의 존재나 성폭력 사건 묵인 등을 부인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이 이런데도 보좌진이 나서서 문제 삼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보좌진을 임면할 수 있는 권한이 전적으로 의원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늘이라도 그만 나오라고 하면 당장 짐을 싸서 나가야 하는 사람들”, “이런 인터뷰조차 ‘익명’이라는 보호막 뒤에서 할 수밖에 없는 처지”, “우린 의원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기사에서 보좌진의 직급이나 소속 정당, 의원실, 연차조차 밝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혹시나 인터뷰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일부 의원들이 마치 보좌진을 자신의 ‘사노비’처럼 부리고 대하지만, 이들은 엄연히 세비를 받는 공무원이다.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보조하고, 정책을 만들며, 정무를 보좌하는 별정직 공무원이다. 의원 1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선임 비서관 2명을 포함해 9명의 보좌진을 두도록 한 이유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고, 입법으로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싶어 보좌진을 하는 사람들이다.
“처우나 복지를 생각하면 민간 기업으로 가는 게 맞는데도 이렇게 버티는 이유는 국회가 실질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그 역할을 의원님 이름으로 해내고 있고요. 그러니 보좌진으로서 큰 보람은 모시는 의원님이 의정활동 잘했다고 국민에게 칭찬받는 것 하나예요.”
“보좌진이라는 존재는 그 누구보다 의원님, 우리가 모시는 보스가 잘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칭찬받게 하려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좌진은 각 전문 분야에서 의원을 도와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프로페셔널이에요. 그런데 이번 갑질 사건으로 보좌진이 의원의 쓰레기를 버리고 비데를 고치는 사람들로 비쳐지는 게 자존심 상하고 불쾌해요.”
“국민 실생활에 도움 되는 입법을 제안해서 실질적으로 통과되고 현장에서 변화되는 모습, 국민께 도움이 되는 과정을 봤을 때 굉장히 뿌듯해요. 이 일의 가장 큰 보람이에요.”
‘강선우 사건’, 보좌진 자긍심에 상처를 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에도 가장 먼저 국회로 달려가 의원들이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도록 시민과 함께 몸으로 막고 지킨 이들도 보좌진이었다. 강 후보자 사건은 그 보좌진의 자긍심과 자존심에 심각한 생채기를 냈다.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커뮤니티 기반 전략 컨설팅 그룹 ‘섀도우캐비닛’ 대표 김경미 전 청와대 행정관은 “지금 필요한 건 수습이 아닌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당부한다. 그는 “이 사건은 정책 리더십, 평판, 시스템, 조직문화 등에서 위험 신호를 보여줬다”며 “보좌진 보호 원칙을 구체화해 위력에 의한 갑질을 방지하고 젠더 감수성과 리더십 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또한 임명을 철회하고 인사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일각에선 정당들이 의원들의 ‘갑질’이나 성폭력 사건 등을 공천 심사에 반영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결국 의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공천이기 때문이다.
보좌진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그분들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열정과 건강과 능력을 바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에요. 동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원팀’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우선 의원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해요. 교육을 시키든 어떻게든 해서 문제라는 걸 머릿속에 심어주는 장치가 필요해요.”
“보좌진은 마치 자식을 위하는 부모 같은 마음으로 의원님을 모시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의원님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거든요. 그저 사람으로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원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하는 게 급선무다.
‘이슈전파사’… 18일 ‘보좌관 특집’ 긴급 라이브
한국일보 시사유튜브 ‘이슈전파사’는 강선우 후보자 갑질 사건으로 보는 보좌진의 현실을 전ㆍ현직 보좌진과 함께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방송에는 이동윤 전 더불어민주당 보좌관(전 민주당보좌진협의회 회장), 황규환 국민의힘 보좌관(국민의힘보좌진협의회 회장), 문상철 전 안희정 충남지사 비서관이 출연한다.
방송은 18일 오전 11시부터 유튜브로 실시간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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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든 사람들
진행ㆍ취재ㆍ 구성 : 김지은 기자
패널 : 이동윤 전 민주당보좌진협의회 회장(전 민주당 보좌관), 황규환 국민의힘보좌진협의회 회장(국민의힘 보좌관), 문상철 전 안희정 충남지사 비서관(전 정세균 국회의장 보좌관), 그리고 익명의 현직 보좌진
PD : 안재용 · 김광영 PD
AD : 김서영 · 송수경 인턴PD
디자인 : 전세희 모션그래퍼
김지은 콘텐츠스튜디오팀장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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