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뭐가 되지 못해도 괜찮아’… 인생의 구멍 채워지는 느낌[어린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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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단추 출판사가 마련한 에바 린드스트룀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회에서 '동물 친구들' 3부작을 보았다.
그중 인상적인 작품은 '내 친구 라게'였다.
그 시절 내가 느낀 당혹감과 좌절감이 라게의 구멍 난 세상과 겹쳐 보였다.
그러나 실패처럼 보이는 사건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담히 나아가는 라게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내 안에 깊이 난 구멍이 하나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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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라게
에바 린드스트룀 글·그림│이유진 옮김│단추


지난 6일 단추 출판사가 마련한 에바 린드스트룀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회에서 ‘동물 친구들’ 3부작을 보았다. 그중 인상적인 작품은 ‘내 친구 라게’였다. 상영이 끝나자마자 원작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올빼미 라게가 수줍은 듯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향 스몰란드를 떠나 도시에 사는 라게는 한때 자연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일을 했다. 가게 벽에 구멍 뚫는 일도 했다. 구멍을 너무 깊게 뚫는 바람에 선반이 무너져 해고된 후에는 연구 끝에 비행 학교를 연다. 하늘을 나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 주었지만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곧 학교 문을 닫게 된다. 새로 사귄 얀네라는 부엉이와 중고품 가게를 열 계획도 세우지만 의견이 갈려 무산된다. 눈에 남은 장면은 라게가 꾸는 악몽이다. 온 세상이 구멍으로 가득한 꿈이다. 벽과 바닥, 집과 자동차, 가로수와 달까지 구멍이 숭숭 뚫린다. 나는 병원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일정표를 잘못 입력해 진료가 뒤엉키고, 아무리 고쳐도 통계가 맞지 않는 악몽을 날마다 꿨다. 그 시절 내가 느낀 당혹감과 좌절감이 라게의 구멍 난 세상과 겹쳐 보였다.
차이는 있다. 그때의 나는 꿈의 안과 밖에서 허둥댔지만, 라게는 일터에서 쫓겨나고도 오히려 행운이라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구멍 뚫는 일을 그만두기 딱 좋은 때”라면서 말이다. 나는 얼마간 버티듯이 지내다가 결국 병원 일을 그만두었고 오래도록 그 시절을 패배로 여겨 왔다. 그러나 실패처럼 보이는 사건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담히 나아가는 라게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내 안에 깊이 난 구멍이 하나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친구 라게’에는 대단한 성취도 완벽한 실패도 없다. 애써 날지 않아도 괜찮고 무엇이 되지 못해도 괜찮다. 관계가 어긋나면 잠시 멀어지고 다시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면 그뿐이다. 다음 걸음을 위해 숨 고르기가 필요한 독자에게라면 이 책은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귤을 천천히 까먹는 라게 곁에서 순순한 위로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32쪽, 1만5000원.
남지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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