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일로 걷는 뉴진스의 ‘혁명’

지난해 수개월간 이 일은 ‘민희진 사건’이라고 불렸다. 135분간 이어진 그의 충격적 기자회견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어도어 및 모회사 하이브가 ‘경영권 탈취’ 주장을 놓고 긴 시간 법정에서 진실 공방을 벌이리라고 예상됐다. 민 전 대표가 기획한 어도어 소속 아이돌 뉴진스는 이 분쟁에서 제3자처럼 보였다. 지금 양상은 완전히 다르다. 미성년 아이돌 멤버들이 전면에서 싸우고 있다. 전망은 어둡다.
뉴진스 멤버들이 처음 공식 행동에 나선 건 지난해 5월17일이다. 민희진 전 대표의 하이브 상대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두고 재판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멤버 전원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더 구체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멤버 전원이 민희진 전 대표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말하고, 어도어·하이브의 대우에 비판을 가했다. 이른바 ‘무시해’ 증언도 이때 나왔다. 멤버 하니가 하이브 건물에서 다른 아이돌 그룹과 마주쳤는데 그들의 매니저가 ‘하니를 무시하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하니는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난해 11월 뉴진스 멤버들은 어도어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소속사가 범한 ‘중대한 계약 위반 사항’을 14일 내에 시정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무시해 사건’ 당사자에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 연습생 때 영상과 사진 공개를 방치한 것 등을 비판하고 민희진 전 대표 복귀를 요구했다. 이어 11월28일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29일 자정부터 전속계약을 해지한다”라고 말했다. 계약 위반 책임은 어도어와 하이브에 있으며 소송 없이 자동으로 계약은 해지된다고 주장했다.
현시점까지 법원은 뉴진스보다 어도어 쪽 손을 연이어 들어주고 있다. 어도어는 지난해 12월 전속계약 유효확인의 소를 제기하고, 지난 1월에는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어도어와 뉴진스가 여전히 계약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내용이다.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어도어의 가처분신청을 전부 인용했다. 뉴진스는 이의신청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6월17일 항고 역시 기각되었고 뉴진스가 재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확정되었다. 5월에는 간접강제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뉴진스가 새로운 그룹명으로, 어도어와 무관한 독자 활동을 할 경우 1인당 10억원을 소속사에 물어내야 한다는 결정이다. 본안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NJZ’ 명의 활동은 금지된다.

가처분신청이 인용된 다음 날인 3월22일 미국 주간지 〈타임〉이 뉴진스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멤버들은 여기서 “법원의 판결에 실망했으나 케이팝 산업의 문제가 하룻밤 사이에 바뀔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라고 발언했다. “이게 한국의 현실일지 모른다. (중략) 한국이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라는 말도 나왔다. 〈타임〉은 “오랫동안 케이팝 기획사는 아티스트를 세심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이돌 자살률이 높고, 열악한 노동환경이 성공에 필수적이다”라고 썼다. 법정 안팎의 공방이 케이팝 업계의 모순 탓에 벌어진 일이라는 논조였다. 지난해 민희진 전 대표의 기자회견에도 비슷한 주장이 담겨 있었다.
중단된 활동, 시간 흐를수록 치명적
그런데 법원 결정문은 반노동적 산업 논리나 낡은 법률의 결과물이 아니다. 재판부는 다만 민희진 전 대표나 뉴진스 멤버들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관계와 다르거나 일부 과장되어 있다고 봤다. 우선 민희진씨의 대표 선임 여부는 계약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가 음악 활동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꼭 대표 위치가 아니라도 음악 프로듀싱 업무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감사까지 간 ‘무시해’ 사건은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봤다. 지난해 6월 민희진 전 대표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하니는 ‘정확히 그 단어들(“무시해”)이었는지 기억은 없고 그냥 대충 그런 말’이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CCTV 영상에서는 문제의 타 그룹 멤버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 밖에 콘셉트 복제 의혹, ‘음악산업 리포트’의 “뉴(진스) 버리고 새로 판 짜면 될 일” 문구 등 그간 나왔던 문제 제기 모두가 어도어의 ‘채무불이행’이라고 볼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전속계약 확인 본안소송이 진행 중이기에 법적 결론이 바뀔 여지도 있다. 그런데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변하는 케이팝 유행의 흐름에 비춰보면 시간은 뉴진스 편이 아니다. 이 업계에서 유행이란, 뉴진스가 언제가 됐든 (가능하면 민희진 전 대표와 뭉쳐) 좋은 음악을 발표하면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창조성의 대결’과는 거리가 멀다. 케이팝의 핵심 동력은 꾸준한 콘텐츠 생산이다. 뉴진스가 활동하지 않는 동안 다른 이들은 쉬지 않는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케이팝의 가장 큰 특성이자 케이팝을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게 한 비결은 엄청난 양의 콘텐츠 공급이다. 케이팝은 대체로 짧은 주기로 앨범을 발매하고 다양한 자체 제작 영상을 공유한다. 라이브 방송이나 SNS를 통해 팬들과의 소통도 끊임없이 한다. 다른 곳으로 눈과 애정을 돌릴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뉴진스처럼) 활동 3~4년 차는 그 흐름이 가장 격렬할 때이다. 어쩔 수 없이 뉴진스는 매우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있다.”

무엇보다 큰 손실은 ‘호감’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막연한 선망과 긍정의 대상인 아이돌 그룹이 이제 논쟁거리가 되었다. 게다가 법원 결정문을 보면 그들이 확실한 피해자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한 대중음악계 종사자는 지난해 〈타임〉 인터뷰에서 한 뉴진스의 ‘혁명가’ 발언을 이렇게 평했다. “인터뷰를 기점으로 국내 여론이 완전히 돌아서는 느낌이었다. 추측이지만 지난해 민희진 전 대표의 기자회견이 좋은 반응을 얻자 그 길을 따라서 승부수를 던진 듯하다. 그런데, 그건 민희진이라서 가능했던 거다.” 아이돌 팬은 아티스트의 주체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즐겨 소비하지만 ‘실제 혁명가’까지 사랑하지는 않는다. 법정 다툼이나 국정감사, 신문 사회 지면 인터뷰는 사람들이 아이돌 산업에서 찾는 환상을 판판이 부순다. 긴 생머리와 무대의상 대신 법정 앞 검은 정장으로 기억되는 건 어떤 면에서도 이롭지 않다.
뉴진스의 지난 1년은 왜 이렇게 흘렀을까. 불분명한 의혹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걷어내면 “민희진 대표님은 대체할 수 없다(지난해 9월11일 뉴진스 라이브 방송)”라는 말이 남는다.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거친 말을 내뱉은 이후 민 전 대표의 위상은 드높아졌다. 구름 위에 있어야 할 아이돌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진흙탕에서 구르고 있다. 이 산업의 진정한 모순은 이런 장면에서 불쑥 드러나곤 한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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