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7주년 특집] 1988에서 2025로, K컬처 기적을 37년 전 누가 상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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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1988년 우먼센스가 창간했던 37년 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를 사로잡으며 새로운 '한국 문화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K팝에서 시작된 한류는 이제 K무비, K드라마, K푸드까지 확장되며 글로벌 문화 지형을 바꾸고 있다.

'한류는 이제 세계 주류문화'
가상이 현실을 넘어선 K팝의 진화
"요즘 한국 드라마는 나올 때마다 거의 항상 세계 넷플릭스 '톱 10' 안에 들어간다. 모두가 '방탄소년단(BTS)'을 알고 있고, '오징어 게임'은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다. 한류가 세계 대중문화의 주류라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그는 한류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주류 문화로 접어든 게 명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K콘텐츠의 성공 비결로 '한국적 배경으로 보편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능력'을 꼽았다.
2025년, K팝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속 가상의 아이돌 그룹이 현실 그룹인 방탄소년단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애니메이션 속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 노래 '유어 아이돌'이 스포티파이 미국 일간 차트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K팝 그룹으로는 최초의 쾌거다.

더욱 놀라운 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케데헌 속 OST가 무려 7곡이나 동시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골든'(23위), '유어 아이돌'(31위)을 비롯해 '하우 이츠 던'(42위), '소다 팝'(49위) 등이 차트를 석권했다. 1988년 당시 한국 가요가 해외에서 주목받기는커녕 국내에서도 트로트와 발라드가 주류였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케데헌의 성공 비결은 전략적 기획과 플랫폼 활용에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작곡가 이재(EJAE, 김은재), 블랙핑크를 만든 프로듀서 테디와 더블랙레이블 소속 작곡가들이 참여해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였다. 여기에 트와이스 멤버들과 멜로망스가 OST에 참여하며 K-POP 진정성을 더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국 문화의 정교한 재현
드라마 OST '골든', 아카데미 오리지널 주제가상 후보 출품
5살 때 캐나다로 이민간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한 케데헌은 세밀한 한국 문화 디테일로 주목받았다. 악령을 퇴치하는 주인공 걸그룹은 조선시대 무당의 후예라는 설정으로, 공연 전 컵라면을 먹고 목이 아플 때는 '그레이프 쥬스'라고 쓰인 한약을 마신다. 제작진들은 한국에 직접 방문해 한옥부터 한식까지 체험하며 한국 정서를 작품에 담았다.
넷플릭스는 케데헌 속 '골든'을 아카데미 오리지널 주제가상 후보로 출품했다. 이 곡이 수상한다면 작곡가 이재가 수상하게 되는 것으로 K팝 아티스트 최초 아카데미상 수상이라는 역사적 순간이 될 것이다.

K푸드 인기도 놀라운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년 글로벌 한류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놀랍게도 북미에서는 K푸드가 K팝을 제쳤다. 북미 지역 한류 관련 기사 중 K푸드가 26.7%로 K팝(23.5%)을 앞선 것이다.
'불닭볶음면' 돌풍이 특히 인상적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불닭볶음면 유행에 힘입어 한식 관련 검색량과 소셜미디어(SNS) 언급이 급증했다. 김치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월등히 높았고, '소주', '치킨' 등도 주요 화제어로 떠올랐다.

'먹방(mukbang)'이라는 한국어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로 자리잡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한식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가 글로벌 트렌드로 확산된 것이다.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에서는 주로 한식 레스토랑 개점 소식이 집중 보도되며, K푸드가 물리적 공간을 통해서도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37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한식당을 찾기 어려웠던 것과 비교하면, 이제는 전 세계 주요 도시마다 한식당이 성업 중이다.
북미에서는 K팝보다 K푸드에 더 관심 많아
주식시장까지 들썩인 K푸드 열풍
K푸드의 글로벌 인기는 이제 주식시장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오리온과 삼양식품이 각각 장중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며 음식료주 전반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오리온은 4개국(한국, 중국, 베트남, 러시아) 합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한 결과에 힘입어 주가가 4.88% 상승했다. 키움증권은 목표 주가를 15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춘절 기간 중국 법인 성장세가 회복됐다'고 평가했다.
삼양식품 성과는 더욱 놀랍다. 불닭볶음면 시리즈 글로벌 선전 덕분에 지난해 해외 매출이 전년 대비 65% 증가한 1조 3359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삼양식품이 사상 처음으로 해외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성과다. 하나증권은 목표 주가를 90만 원에서 11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불닭의 구글 트렌드가 여전히 견조하다"고 분석했다.
삼양식품은 불과 3년 전 10만 원 미만에서도 거래됐지만 현재 150만 원에 근접하고 있다. 농심, 롯데칠성, 오뚜기 등 주요 음식료 종목들도 동반 상승하며 K푸드 열풍이 식품 산업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K드라마의 새로운 진화: 글로벌 공동제작
일본판 '내 남편과 결혼해줘'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1위
K드라마 영역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에서 방영된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은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일본에서 드라마 순위 1위를 지키며 새로운 한류 모델을 제시했다.

이 작품의 특별함은 한국 스튜디오드래곤과 일본 쇼치쿠가 기획 단계부터 함께 참여한 진정한 공동제작이라는 점이다. 안길호 감독과 오시마 사토미 작가가 협업하며 사토 타케루, 고시바 후우카 등 일본 톱스타들이 캐스팅되어 현지 어필력을 높였다.
현재 미국, 일본 등에서 K드라마 제작 방식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국제 공동제작이 K드라마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K문화 확산에 관광산업도 회복
관광 한류: 2000만 관광객 시대 개막
K문화 확산은 관광산업 회복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11만 7243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6.8% 증가했다. 이는 2019년 동기 대비 101% 수준으로 회복된 수치다.
특히 대만(44.7% 증가), 홍콩(71.9% 증가)의 급성장이 두드러졌다. 중국도 36.4만 명으로 30.1% 증가했으며, 미국과 일본도 각각 20% 이상 증가했다.
한국은 동아시아 관광 대국으로 꼽히는 일본과 무비자 입국으로 관광 문호를 개방한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경쟁 환경에서도 한국 관광객은 증가 추세에 있다. 아시아 관광객들이 일본 대신 한국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관광업계에서는 2019년 수준을 넘어 사상 최초로 2000만 관광객 시대를 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995년 한국 문화계에 중요한 전환점
30년 전 뿌린 씨앗이 만든 오늘의 기적
현재 이토록 뜨거워진 K-WAVE(한류) 현상을 이해하려면 30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5년은 한국 문화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였다. CJ ENM의 전신인 제일제당 멀티미디어사업부 신설, 홍대 클럽 '드럭'에서 시작된 인디 음악 씬, 창작뮤지컬 '명성황후' 초연 등도 모두 1995년에 일어났다.
또한 1995년 케이블TV가 출범하며 시청자의 선택지가 대폭 늘었다. 24개 채널이 만들어지면서 '프렌즈', 'CSI', 'X-파일' 등 미드 열풍이 일었고, 이는 국내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이끌었다. 이때 만들어진 케이블 채널들이 성장하면서 드라마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약 10년 뒤 드라마 tvN '막돼먹은 영애씨'(2007)부터 시작된 시즌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성공은 모두 이때 뿌린 씨앗의 결실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된 것도 1995년이다. 이듬해 H.O.T.를 시작으로 S.E.S., 신화 등을 성공시키며 '아이돌' 시대를 열었다. 2025년 1월 'SM타운 라이브 2025'에서 1세대부터 5세대까지 아이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30년 K팝 역사의 압축이었는 평가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했지만, 한국 관광 브랜드 인지도는 하락
도전과 과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놀자리서치 조사 결과,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수는 48.4% 증가했지만 한국 관광 브랜드 인지도는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저가 관광 상품이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관광 품질이 하락하고, 이것이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수청 야놀자리서치 원장은 "2024년 관광객 증가는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은 우리가 관광 품질과 경험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신호"라며 "K-콘텐츠는 한국 관광의 가장 강력한 무기지만, 일회성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체계적인 브랜드 관리와 수준 높은 경험 제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이상 '알려지려 노력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 콘텐츠 기다리는 시대, 한국 문화 르네상스의 원년
우먼센스가 창간한 1988년, 한국은 올림픽으로 세계에 처음 얼굴을 알렸다. 37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더 이상 '알려지려 노력하는' 나라가 아니다. 전 세계가 한국 문화에 주목하고, 한국 콘텐츠를 기다리는 시대가 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빌보드 차트 석권, 불닭볶음면 북미 돌풍, 일본과의 드라마 공동제작 성공, 2000만 관광객 시대 개막은 모두 이러한 변화를 상징한다. 2025년은 '한국 문화 르네상스'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먼센스가 37년 전 한국 여성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했듯이, 이제는 전 세계가 한국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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