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말했다…“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 [.txt]
‘생성-현존-소멸’ 타나토스 담론의 변천사
죽음 실체 고민보다 어떻게 맞을지가 중요

‘타나토스, 죽음의 서구 지성사’는 묵직한 책이다. 타나토스는 타나토스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서구 지성사는 서구 지성사대로 어느 하나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독일 유학파 출신 서양사학자인 최성철 홍익대 교양과 교수가 다년간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전문학술서다. 그만큼 주제와 양이 묵직하다. 선뜻 달려들어 책을 펼치기가 망설여지지만 표제 ‘타나토스’가 끌어당기는 매력은 뿌리칠 수 없다. 제목인지 아니면 개념인지가 아직 생소한 ‘죽음의 서구 지성사’라는 문자 역시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책 표지의 제목 아래 그림은 잠시 조용히 서서 감상하게 만든다. 도서관이 아닌 유럽의 한 예술 박물관에서처럼. 이 그림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을 것이다. 문자는 세상의 소리지만 그림은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세계다. 꽃장식에 둘러싸여 옹그려 보듬고 세상 평화로이 뒤엉켜 있는 인간 생명들을 비웃듯이 째려보며 곤봉을 들고 금방 달려들 듯한 죽음의 형상이 강렬하다. 암흑세계와 빛의 세상이 대비된다. 죽은 자와 산 자, 죽음과 생명, 죽음과 삶이 그림 속에 있다.

죽음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까, 아니면 움직일까? 인간들은 그저 평화로울까, 아니면 죽음을 의식하기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것일까? 죽음이 움직인다고 보는 것과 그저 그림일 뿐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고,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죽음은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예술과 학문사 그리고 사상사를 뒤돌아보면 이러한 예는 허다하다.
죽음이 산 자에게 다가와 춤을 추자고 하면 ‘토텐탄츠’(Totentanz), 즉 ‘죽음의 춤’이 된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인간의 영혼에 발을 내디디면, 그것은 공포와 전율이 되어 무의식으로 각인된다. 죽음이 전부였던 시대도 있었고, 죽음을 잠시 잊고 지내는 시대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인간이 죽음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죽음은 쉬지 않고 춤을 춘다.
현대인들에게 타나토스(Thanatos)와 에로스(Eros)로 익숙한 ‘타나토스’(θάνατος)는 고대 그리스어로 ‘죽음’이란 뜻이다. 그리스 신화 죽음의 신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책의 주제가 죽음 혹은 죽음의 신에 관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면 저자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음을 다루고 있는가? 저자는 죽음을 크게 세개로 쪼개 설명한다.
책은 3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죽음 이전’, 제2부는 ‘죽음 자체’, 제3부는 ‘죽음 이후’다. 저자는 이 3개 항목을 세 범주라고 명명한다. 죽음을 생성, 현존, 소멸하는 3단계 변천 형식으로 설명하는 특징을 보인다. 저자가 각각을 특별히 범주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각 항목이 체계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서도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죽음이 주제로 확정되었다. 그러면 누가 죽음을 어떻게 연구하는가? 저자는 예로부터 죽음이 인문학적 성찰과 사유의 주요 주제였음에도 역사학은 죽음을 연구한 사실이 거의 전무했던 사실을 개탄한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과거 서양의 지식인들이 사회와 역사 환경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주목해야 하는데, 이 작업을 저자는 ‘죽음의 지성사적 연구’라고 명명한다. 전통적인 연대기적 구성 방식을 지양하고 주제별 접근 방법을 취했다. 타나토스가 3부로 확정된 후 이에 속한 총 12개의 개별 주제를 과거 서양 지식인들의 죽음관을 토대로 연구하는데, 이 방식이 저자가 제시한 죽음의 서구 지성사적 연구 방법론이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제1부 ‘죽음 이전’의 범주는 죽음의 원인을 제공하는 각종 요소 및 요인에 관한 문제와, 죽기 전에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태도, 죽기 전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마음가짐 등을 다루고 있다. 삶과 죽음, 질병, 노화, 죽음 수용 등이 이에 속한다.
제2부는 ‘죽음 자체’를 다룬다. 고대부터 전근대까지 전통시대에는 죽음을 ‘자연이 준 멋진 선물’로 봤다. 그러나 현대로 올수록 보건의학의 발달로 죽음이 인간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면서, 죽음을 부정하거나 금기시하는 ‘죽음의 소외’ 현상이 펼쳐진다. 자살, 살인, 사형, 암살, 대량 학살, 낙태, 영유아 살해, 안락사, 존엄사 등 다양한 종류의 죽음에 대한 당대의 반응도 살핀다. 저자는 특히 독특한 죽음 유형인 ‘자살’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견해들에 주목한다.
제3부 ‘죽음 이후’는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과 사후의 세계, 그리고 죽음의 의식을 다루고 있다. 육체와 영혼, 사후세계와 사후 생, 불멸과 영생, 구원과 부활, 죽음 이후 의식인 장례와 애도에 관한 담론들을 탐구한다. 이로써 죽음에 관련된 가능한 모든 사항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왜 죽음의 서구 지성사를 전면에 내세울까? 왜 그토록 강조할까? 죽음을 공포와 회피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처럼 적극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서구 지성사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죽음을 연습하는 것으로 가르쳤는데, “이는 이후 서양의 죽음 철학사의 큰 방향을 결정짓는다”고 저자는 봤다. 에피쿠로스는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산 사람에게는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저자가 책의 첫 문장으로 인용한 프랑스 문학평론가 자크 마돌의 “나는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믿지는 않는다”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저자는 해답도 없는 죽음 그 자체를 묻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더 심각하다고 여긴다. 어차피 ‘죽음’이라는 주제 자체가 매우 추상적인 만큼, 죽음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보다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서장원(독문학자, 전 고려대 교수)
독일 구텐베르크-마인츠대학에서 독어독문학·철학·독일민속학을 전공했다. 주요 저서로 ‘망명과 귀환이주’(2015), ‘토텐탄츠와 바도모리’(202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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