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은 모든 서구 언어로 번역됐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txt]
번역 불만으로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
위대한 체코 문화 향한 향수와 애도

체코 출신 프랑스 소설가 밀란 쿤데라(1929~2023)의 2주기(7월11일)에 맞춰 나온 이 책에는 그가 1980년대에 쓴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다. 1985년 11월 잡지 ‘데바’에 실린 ‘89개의 말’과 1980년 6월 같은 잡지에 발표한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가 그것이다. ‘89개의 말’은 작가의 개고를 거쳐 단행본 ‘소설의 기술’에 포함되었는데, 이번 책에는 원래의 원고를 살리고 작가가 나중에 덧붙인 12개의 말을 더해 모두 101개의 말에 관한 글들이 담겼다.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는 다른 책에는 실린 적 없는 국내 초역이다.
‘89개의 말’은 쿤데라의 친구이자 ‘데바’의 창간 멤버였던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의 제안으로 쓴 글이다. 쿤데라가 “자신의 책들이 원래 쓰인 언어와는 다른 언어로 출간되는 것만 보았고, 그래서 늘 모든 말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만 했”던 만큼, 말에 관한 그만의 고민과 생각이 있으리라는 것이 노라의 제안 이유였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인 쿤데라는 1975년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프랑스에서도 한동안 체코어로 작품을 썼지만, 그의 작품은 조국 체코에서는 발표되지 못하고 프랑스어를 비롯한 번역어들로만 출간되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쿤데라는 번역과 언어 문제에 남달리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
‘89개의 말’의 서문에서부터 쿤데라는 번역에 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풍자적 비판을 담은 그의 첫 장편 ‘농담’(1967)은 곧바로 “서구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쿤데라 자신은 그것이 매우 슬픈 일이었다고 쓴다. 왜였을까. “프랑스에서는 번역가가 나의 문체를 완전히 바꿔 소설을 거의 다시 쓰다시피 했다. 영국에서는 편집자가 내적 성찰이 이어지는 모든 단락을 짧게 자르고, 음악학적인 장들을 없애 버리고, 부(部)들의 순서를 바꾸어 소설을 재구성했다.” 설상가상으로 체코어를 모르는 번역자들은 프랑스어판을 저본으로 삼아 중역을 했다. 다행히 ‘농담’ 이후 작품들의 프랑스어 번역은 믿을 만한 역자를 만나서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다른 언어권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해서 “이후에 나온 소설들의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번역본을 수정하느라 나는 엄청난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나만큼 번역 문제로 몸살을 앓는 작가도 없다”고 자부(?)하는 쿤데라는 “번역은 충실할 때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고집한다. 이른바 출발어와 도착어를 둘러싼 번역 논쟁에서 출발어의 손을 확실하게 들어주는 것이다. 그가 충실하고 훌륭하다며 칭찬한 프랑스어 번역가 프랑수아 케렐의 말을 빌려 그는 거듭 강조한다. “좋은 번역이라면, 그게 번역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번역에 관한 이런 불만과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쿤데라는 “아무래도 나는 소설을 프랑스어로 쓰지는 못할 것 같다”고 토로하는데, 그것은 그가 프랑스어로 소설 쓰기를 고민하거나 시도해 보았으리라는 추측을 낳는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1995년 ‘느림’을 처음 프랑스어로 발표한 것을 비롯해 이후의 모든 작품을 프랑스어로 쓰고, 자신의 이전 작품들의 프랑스어 번역도 직접 손을 보아 체코어본에 못지않은 원본으로 구실 하도록 했다.
번역을 둘러싼 이런 고민과 함께, 소설과 예술에 관한 쿤데라의 생각 역시 이 글에서 만날 수 있다. 예술을 정치 수단으로 삼는 “참여 예술”, 또는 예술을 정신분석학이나 기호학 같은 방법론의 연습장으로 활용하는 “교수들”에게서 그는 지적인 뮤즈 혐오증을 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주제가 그 제목으로 된 소설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른 여러 작품에도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어쩌면 모든 소설가는 단지 여러 변주가 있는 주제 하나(첫 소설)를 쓰는” 것일 수 있다는 깨달음, 질문자가 답변자의 답변 중에서 제 마음에 드는 것만 그것도 자신의 방식으로 써먹는다는 점에서 인터뷰를 저주하고 거부한다는 고백, 전기 작가들의 작업은 “소설의 가치도 의미도 밝혀 주지 못한다”는 비판 등도 흥미롭다.
“프라하, 서구 운명의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중심인 프라하가 자신이 한 번도 속한 적이 없는 동유럽의 안개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詩)’는 체코의 유구한 문화 전통을 향한 찬가이자 그 쇠락에 바치는 만가(挽歌)이기도 하다. “프라하 문화는 서구 자체만큼이나 오래되었다”거나 “프라하는 현대적 감수성과 사상의 가장 역동적인 중심 중 하나였다”는 대목에서 보듯 쿤데라는 프라하와 체코 문화가 서유럽 문화의 일부임을 넘어 하나의 중심이기도 했다고 본다. 한때 서구 문화계와 지식인 사회를 휩쓸었던 “구조주의의 대물결은 프라하에서 비롯되었”고, “세기 초부터 체코의 프라하는 현대 예술의 모험에 열정적으로 동참한다.”
그는 특히 체코 출신의 세 예술가에 주목한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와 야로슬라프 하셰크,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가 그들이다. 쿤데라는 카프카의 ‘소송’(1917)과 하셰크의 ‘용감한 병사 슈베이크’(1921~1923), 야나체크의 오페라 ‘죽음의 집’(1928)을 “나의 조국이 금세기에 건립한 가장 기념비적인 세 예술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카프카가 그린 관료주의적 미궁, 하셰크가 그린 어리석은 군대, 야나체크가 그린 절망적인 강제 수용소”가 모두 “미래의 지옥을 그린 그림들”이어서 그 작품들 속에 이미 앞으로 다가올 세계사의 비극들이 다 담겨 있고, “‘역사’가 할 일은 허구가 이미 상상했던 것을 모방하는 것뿐이었다”는 것.
체코슬로바키아를 공산주의 국가로 전환시킨 1948년의 프라하 쿠데타, 그리고 1968년 ‘프라하의 봄’의 좌절로 이런 고귀한 문화적 전통에 제동이 걸렸고, “천년의 서구 역사를 가진 체코슬로바키아가 돌연 동구 국가가 되었다.” 서유럽과 그 일원이었던 체코 문화를 향한 ‘자뻑’이 다소 과하다 싶으면서도, 망명자 쿤데라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애 끓이는 마음은 그것대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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