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살 수 없는 곳, 인간도 살 수 없다 [.txt]
미생물부터 혹등고래까지 ‘야생동물 생활 탐구’
새로운 지식부터 ‘현장’의 위기와 감동 꾹꾹

까치는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듯했다. 걸핏하면 자기 둥지에서 알을 세고 새끼 수를 헤아리는 젊은 연구자가 못마땅했는지 주변을 그냥 걷기만 해도 뒤통수를 치고 날아갔다. 남극에서 연구할 때도 그랬다. 턱끈펭귄은 다른 수컷과 싸우다가 얻어터지고 씩씩거리다가 이를 지켜보던 연구자에게 다가와 날개로 때리며 분풀이했다.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는 야외생물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이원영의 경험담이다. 연구를 하면서 개체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줄 때가 있다. 사랑하면 그의 안위를 걱정하게 된다.
이원영은 이런 마음을 담아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2017) 이후 ‘물속을 나는 새’(2018) ‘펭귄의 여름’(2019) ‘펭귄은 펭귄의 길을 간다’(2020) 등을 꾸준히 선보여온 ‘중견 저자’다. 신작 ‘와일드’(글항아리)는 동물행동학자의 꿈을 꾼 중학생 때부터 지금껏 쌓아 올린 동물에 관한 지식과 야생의 현장 경험을 모두 쏟아부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든다. 미생물에서 유인원, 혹등고래까지 온갖 동물의 생존 투쟁과 공생기가 비 온 뒤 거미줄처럼 촘촘하고도 아름답게 얽히고설킨다.

책은 야생의 동물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인 생존과 짝짓기뿐만 아니라 이주, 공생, 먹이 활동, 휴식, 의식과 감정, 인지 능력과 의사소통까지 두루 살핀다. 찰스 다윈부터 가장 최신의 논문까지 각축 끝에 살아남은 생물학 이론과 현장 이야기가 교차하는데, 이 세계엔 고릿적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살벌한 적자생존의 법칙만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야생의 동물들이 얼마나 섬세한 방식으로 소통하는지, 어떻게 진화적 관계를 맺으면서 공생하는지, 어떤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지 설명하며 새로운 지식과 감동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보자. 수컷의 경쟁도 치열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암컷의 선택이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섬에 사는 정자새 수컷은 짝짓기 철이 되면 화려한 장식으로 터널 구조물을 만든다. 둥지 같았지만, 알고 보니 자신의 멋진 유전자를 돋보이게 만드는 ‘쇼룸’이었다.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수컷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매력도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가 공존한다. 바닷새인 나그네알바트로스는 한번 짝을 정하기 위해 2~3년에 걸쳐 서로 관찰하고, 부부가 되면 50년 가까이 평생 해로한다. 세종과학기지 인근에서 번식하는 턱끈펭귄의 이혼율은 소집단에 따라 17%에서 80%까지 나타났는데 짝을 바꿨다가 다시 같은 짝과 재결합하기도 했다.
모든 동물은 관계의 존재들이다. 흰동가리와 말미잘은 서로 보호하고 지켜준다. 30조개의 세포로 이뤄진 인간의 몸 안엔 38조개의 박테리아가 산다. 코끼리는 다른 개체나 종의 소리를 모방한다. 일본 연구자가 관찰한 박새는 얼마나 똑똑한지 까마귀가 나타날 때와 뱀이 나타날 때 서로 다른 경계음을 내면서 포식자의 종류를 알렸다.
최근 철학, 신경학, 동물행동학 등 전문가들은 동물도 의식이 있다는 강력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선언했다.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 및 조류도 의식을 갖는다는 보고가 꾸준히 쏟아진다. 회색앵무는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의식을 갖고 있으며 돌고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살이 의심되는 극단적 일을 벌이기도 한다. 서커스 공연이나 전시에 동원된 동물들은 빙빙 도는 반복 행동이나 자위, 심지어 자해를 하기도 했다. 제러미 벤담 이후 ‘윤리적 주체’에 대한 논의는 인간뿐만 아니라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로 확장됐다. 하지만 동물은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극지의 현장에서 동고동락한 펭귄에 대해 저자는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인간이 귀여워하는 펭귄은 1913년 영국 에든버러동물원에서 전시되기 시작했다. 펭귄 풀장은 인간의 눈에는 아름다웠지만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다 잡혀 온 동물에겐 감옥이었다. 최근엔 기후위기 때문에 펭귄 부모들이 제 터전에서도 새끼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2020년 남극 세종기지의 온도계는 영상 10도였다. 펭귄은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채 열을 식혔다.
“2014년 과학 연구를 위해 장보고 기지가 문을 연 이래 이렇게 바다가 따뜻했던 적은 처음이다.” 10년 넘게 극지 연구를 해온 저자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변화를 똑똑히 목격했다. 펭귄, 북극곰, 고래, 인간도 대대로 이어온 삶의 방식이 소멸하고 있었다. 생태 슬픔, 기후 슬픔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겪는 것이었다. “한 종의 사라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태계 안에서 생물종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인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가입한 파리협정 재탈퇴를 선언하고 환경 규제 완화와 기후변화 관련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축소했다. 저자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저감 방법으로 채식 기반의 식생활을 추천한다. 그리고 말 못 하는 동물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한다.
자연과 이 지구에 대한 사랑, 동물과 ‘나’의 연결고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잔잔하면서도 거센 파도처럼 넘실댄다. 무엇보다 이 세계에서 그들과 내가 하나로 엮여 있음을 실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을 건넨다. “동물이 살 수 없는 곳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 의미도, 재미도 있다. 넷플릭스 왜 보나. 이원영 책 보면 되는데.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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