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곳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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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밤 경북 영덕의 작은 바다마을인 경정 3리.
영덕의 따개비마을 이장 이미상(65)은 그날 밤 뒷산 능선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집집마다 문을 부술 듯 두드렸다.
할매한테는 그간 할 만큼 했다고 위안을 삼았지만 그날 생각만 하면 심장이 저려오고 눈물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날 그곳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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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트라우마 속 극복 노력
이웃 챙기고 구한 이들 기억해야

3월 25일 밤 경북 영덕의 작은 바다마을인 경정 3리. 영해중학교 2학년 임지호(15)는 눈을 비비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밖을 내다봤다. 뒷산에서 연기가 몰려오고 있었고, 그 뒤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능선이 보였다. 지호는 횟집을 운영하던 엄마 아빠랑 동생 둘과 함께 서둘러 집을 떠났다. 불바람은 사람들 몸이 휘청일 정도로 강했고, 정전으로 동네 곳곳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호는 대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문득 주민 대부분이 여든을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열다섯 소년은 뭔가 결심한 듯 컴컴한 골목으로 뛰어들어갔다. 마을 맨 꼭대기 집에 사는 류재환(88)은 장애가 있어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아내 윤랑자(85)가 겨우 집 밖으로 끌어냈지만, 연기로 뒤덮인 가파른 경사로라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재환이 아내라도 살리겠다며 랑자를 뿌리치자, 어둠 속에서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조명이 켜진 휴대폰을 든 지호가 나타나 노인들을 부축하고 부둣가까지 내려왔다. 지호가 이날 골목을 오르내리며 데리고 나온 노인만 넷이었다.
3월 말 전례 없는 큰 불길이 경북 지역을 덮쳤다. 3,000명 가까운 이재민이 생겼고 사망자도 27명이나 됐다. 의성 안동 청송 영덕 영양군의 산불 피해 면적은 10만ha에 달했다. 집도 3,562채가 전소했다. 하지만 산불이 잡히자 썰물 빠지듯 세상의 관심도 빠르게 식어갔다. 사진과 영상은 잿더미로 변한 집과 땅만 담았다. 그곳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 중에는 중학생 임지호처럼 우리가 몰랐던 작은 영웅들도 적지 않다. 안동 모티마을에 6년 전 자리 잡은 귀농인 강석구(68)도 그곳에 있었다. 불태풍이 불어닥친 그날 서둘러 마을을 떠나려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 귀농해 막막한 심정일 때 ‘밭에 대다 쓰라’며 물을 내어준 할머니들 얼굴이 어른거렸다. 석구는 자고 있던 황순금(86)을 깨웠고, 돌로 화장실 유리를 깬 뒤 알몸의 방씨 할머니까지 구해냈다.
영덕의 따개비마을 이장 이미상(65)은 그날 밤 뒷산 능선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집집마다 문을 부술 듯 두드렸다. 미상은 혼비백산한 노인들을 대피시켰고, 트럭 조수석에 노인 서너 명을 구겨 태웠다. 살아남은 주민 63명은 이재민 숙소에서 미상과 마주칠 때마다 손을 부여잡고 쓰다듬기 바빴다.
최선을 다했지만 자책한 이들도 있었다. 요양보호사 김미경(66)은 그날 실버타운에 머물던 노인 넷을 차에 태워 불길 속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차가 도랑에 빠지고 폭발하면서 노인 셋은 차량에서 소사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남을 돌보려 했지만 한 분밖에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101세 최고령 사망자 이분순의 이웃 이두심(66)은 5년 가까이 할머니 밥을 챙겨드렸다. 할매한테는 그간 할 만큼 했다고 위안을 삼았지만 그날 생각만 하면 심장이 저려오고 눈물이 쏟아진다. "혼자만 살아서, 마지막 못 지켜드려서 미안해요."
한국일보 기자들이 산불 현장에 한 달간 머물며 주민들을 만나 보니 불이 꺼진 이후를 더 힘겨워했다. 공포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상실감에 무력해하면서도 다시 살아보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곳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그들을 응원하며 기억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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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지옥불에 빠지다 : 김미경 스토리
- • "눈 마주쳤는데 못 구해"… 가슴 속 불길은 꺼질 줄 몰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20004261)
- • "눈 마주쳤는데 못 구해"… 가슴 속 불길은 꺼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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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내 삶을 빼앗겼다 : 서복래 할머니, 중학생 임지호
- • 전쟁도 견뎌냈는데… 화마가 앗아간 72년 삶터, 마음까지 타버렸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30002837) - • 마을 덮친 어둠 뚫고 노인 넷 구한 15세 소년… 웃음은 더디게 돌아왔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40001823)
- • 전쟁도 견뎌냈는데… 화마가 앗아간 72년 삶터, 마음까지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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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마을도 사라진다 : 사망자 이분순, 김연대 시인
- • 흙벽 아래 잠든 '101세 수호신'… "못 지켜 미안해요" 이웃도 울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50004981) - • 돌아온 이들 반기던 깊은 산골… 화마로 고향의 꿈이 흩어졌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40005944)
- • 흙벽 아래 잠든 '101세 수호신'… "못 지켜 미안해요" 이웃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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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그래도 살아간다 : 김현일 이장, 귀농인 강석구
- • 잿더미 속 다시 일어서는 '신흥리 사람들'… 마스코트 똘이도 돌아왔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60003829) - • 산불이 '귀농 6년' 삼켰지만… 그의 꽃길엔 새 꿈이 자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60001280)
- • 잿더미 속 다시 일어서는 '신흥리 사람들'… 마스코트 똘이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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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이웃 챙기고 구한 작은 영웅들
- • 그날 그곳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뉴스룸에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1716000001194) - • "진정한 영웅"… 화마 뚫고 노인 넷 구한 중학생에 전달된 온정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0601180005349)
- • 그날 그곳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뉴스룸에서]
강철원 사회부장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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