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웰다잉’ 마지막을 존엄하게(7)“수의 입고 관에 누워보니”… 삶이 보였다
백석웰다잉힐링센터 ‘임종체험’ 참관기
영정사진 찍고 유언장도 작성
한국 고령화 속도 세계 1위…죽음 준비해야
유치원생부터 어르신까지 ‘삶의 소중함’ 배워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갑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용서하세요. 죽음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당신, 고마웠습니다. 나의 딸, 미안하고 사랑한다. 엄마가 없어도 너의 삶을 잘 챙기며 감사히 살아가길 바란다.”
영정 사진 앞에 앉은 김모씨(65·경기 평택)는 조용히 흐느끼며 유언장을 읽어 내려갔다. 6월18일 충남 천안 백석웰다잉힐링센터에서 열린 ‘임종 체험’ 현장. 이날 김씨를 비롯해 30여명의 참가자들은 평소 쉽게 꺼내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죽음을 간접적으로 마주하는 이 체험은 웰다잉 교육의 한 장면이다.

임종 체험행사는 무료로 진행된다. 20명 이상 모이면 적게는 일주일에 2번 8회, 많게는 한달에 15회까지 열린다. 인근 학교, 노인복지관, 공공기관뿐 아니라 죽음을 배우고자 하는 개인도 참여할 수 있다. 참가자 연령층도 다양하다.
이날은 경기 평택과 충남 천안 노인복지관에서 온 단체와 일반인 6명 등 30여명이 함께했다. 멀리 부산에서 온 부부도 있었다. 개인 참가자인 장은영씨(61·천안)는 “항암 치료 중인 동생의 권유로 친구와 함께 왔다”며 “죽음은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노인의 대부분은 사망 전 약 22개월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보낸다. 정 소장은 “장례식은 인간 삶의 마지막 의식”이라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을 교육을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명의료가 생명 연장에 집중된 행위임을 지적하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권장했다.
센터 프로그램은 연령별로 구성된다. 청소년에겐 ▲학교폭력 방지 ▲인생 가치관 정립 ▲가족의 소중함을, 성인(가족)에겐 ▲부부 갈등 해소 ▲가족 간 소통 ▲화해와 용서를, 노인에겐 ▲행복한 노년 보내기 ▲죽음 받아들이기를 중심으로 한다. 특히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에서는 웰다잉 교육이 노년기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자 역시 영정사진을 찍었다. 박 팀장의 “웃어주세요”라는 말에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미소를 지었다. 죽음도, 어쩌면 이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후 참가자들은 유언장을 작성하기 위해 임종 체험실로 들어섰다. 문을 여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오동나무 관 45개가 일렬로 놓여 있었고, 국화로 장식된 재단이 차가운 형광등 아래 펼쳐졌다.
관 옆에 앉아 유언장을 쓰는 동안, 여기저기서 울음 참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이 정말 가까이 있는 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유언장을 처음 써보는 터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쓰기 시작했다. 적고 나서 보니 지금도 용기만 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그 순간 정 소장이 했던 “우물쭈물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평소 쑥스러워서 가족에게 쉽게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유언장에 남겼다. ‘사랑한다’라는 말끝에 점을 찍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언장을 다 쓰고 나서 한명씩 자기가 쓴 글을 읽었다. 한 80대 남성은 아내에게 “항상 부족했습니다. 내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평소 유언장도 써놔야 했는데 이제서야 마음을 전하게 돼 미안합니다”라고 적었다. 친구와 함께 온 60대 여성은 “어둡고 힘든 지난날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주어진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을 제대로 살걸”이라며 후회했다. 세 남매 어머니인 70대 여성은 “늘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을 앞두니 그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알았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며 지금처럼 살아주면 좋겠다. 너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잘 가라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담았다.

5분 후 관이 열리고 환영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정 소장은 “이제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남은 삶을 소중히 살아가길 바란다”고 새출발을 축하했다.
관에서 나오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숨 쉴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는 것,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절감했다. 체험을 마친 임선형씨(60·천안)는 “임종 체험이라는 말에 겁이 났지만, 막상 해보니 인생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며 “다음엔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고 말했다.
센터를 나서며 정 소장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것, 그것이 웰다잉의 시작입니다.” 이 체험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남은 시간을 잘 살아가고자 하는 단단한 다짐으로 바뀌었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임종 체험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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