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면 가닥가닥 깃든 ‘풍류’ 만나다

김여진 2025. 7. 1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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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출신 박승흡 ‘메밀 순례기’ 출간
소바 음식점 등 탄생 비화·역사 소개
“여행기 가장한, 인간 대한 따뜻한 오마주”

철원 출신 박승흡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식사 약속 대부분을 메밀 음식점으로 잡는다. 그가 섭렵한 메밀 음식은 막국수와 평양냉면, 소바와 크레이프까지 다양하다.

최근 나온 ‘박승흡의 메밀 순례기’는 저자가 늘 품고 있던 소박한 꿈, 환갑이 지나면 메밀 관련 책을 내고 싶다는 목표를 이룬 책이다. 메밀이 좋아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나섰던 이야기를 국수 뽑듯 눌러내어, 가닥가닥 모았다.

평북 위원군 출신 선친과 메밀을 주식으로 삼는 강원 영서지역 문화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메밀 음식을 두루 접했다.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영역이 더욱 넓어졌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듣고 보다가 생을 마감할지에 대해 늘 궁금했다는 저자는 메밀의 맛에서 ‘풍류’를 본다. 맛의 세계로 서로를 이끌어주는 연대의 손길 안에 풍류가 있다는 것이다.

▲ 신간 ‘박승흡의 메밀 순례기’ 출판기념회가 최근 서울 서관면옥 홍대에서 열렸다.

“음식 여행기를 가장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오마주”라는 책 설명처럼 메밀 조리법과 음식 문화는 물론 그 속에 깃든 사연들이 틀에서 나오는 메밀면처럼 뽑혀 나온다. 메밀로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사람으로 끝난다.

메밀은 슴슴하고, 소박하고, 허름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스스로 영글어 자라나 음식이 되면 모자람이 없는 곡물이다. 이 메밀향 한가운데 평생 함께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와 닮아있다.

인제 남북면옥과 평창 옛날공이메밀국수, 횡성 장가네막국수 등 강원지역 식당부터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 낙원동 을지면옥 등 평양냉면계 전통의 강호들, 성수동 소바마에와 같은 소바집 등의 탄생 비화와 역사가 펼쳐진다.

신영복 선생과 ‘하방연대’의 정신을 나눈 오류동 평양면옥, 김훈 작가와 함께 한 은평동 만포면옥, 실향민 2세가 만들어 강원 탄광 노동자들의 애환과 함께해 온 동해 냉면권가 등도 등장한다. 상실감으로 위안이 필요할 때는 이효석과 함께 오대산 선재길을 걷고 ‘봉평 오봉순’의 메밀음식(평창 미가연)을 찾으라고, 익숙함이 얽어매는 틀과 결별하고 싶을 때는 강릉 권오복분틀막국수로 떠나라고 권한다. ‘메밀을 위해’ 목적의식을 갖고 가도 좋은 장소들이다.

동치미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라는 점에서 뿌리가 같은 평양냉면과 막국수 이야기, 두 음식간 경계가 옅어지는 최근의 경향까지 알 수 있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이라면 이 책 한 권 들고 도장깨기에 나서도 좋겠다.

출판을 기념해 지난 14일 마련한 북콘서트 개최 장소도 책 속에 소개한 집 중 하나인 ‘서관면옥 홍대점’이었다. 이날 참석한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이이재 다산콜센터 이사장 등도 ‘한반도메밀순례단’의 일원이었다. 그와 함께 한 이 순례단에는 전직 국회의원과 차관 등 고위공직자, 인제와 철원지역 농민회원, 도내 지방의원, 언론인, 배우, 의사, 법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름을 올렸다.

김훈 소설가가 언급했듯 “같은 냉면을 딴 상(床)에서 먹고 있는” 서울과 평양 사람들이 떠오른다. 김훈 소설가는 서평에 “맛에 빈자리를 남겨 두어서 먹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백에서 ‘메밀의 평화’를 느낀다”며 “사람들의 마음이 메밀의 평화를 공유하지 못하면 힘만으로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쓴 뒤 트럼프 대통령, 네타냐후 총리에게 올 여름 냉면을 많이 드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김 소설가는 또 노동자들에게 세습된 차별에 저항해 온 직업활동가라고 박 이사장을 소개하며 “노동자들 앞에서 ‘메밀’을 제목으로 내걸고 평화와 사랑을 강연하는 대목은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라고 썼다.

박철호 한국메밀연구소장(강원대 명예교수)도 메밀에 대한 전문적 설명을 책에 보탰다. 박승흡 이사장은 “메밀을 알아보고 나누는 분은 이미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삶의 안내자”라며 “손 잡고 메밀의 세계로 넓고 멀리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그 길 끝에는 우리 모두를 반기며 안아줄 평화의 세계가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고 전했다.

양양 용천리 곰밭마을 서재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메밀꽃을 바라보곤 하는 박 이사장은 철원에서 태어나 인제를 거쳐 춘천에서 초·중·고를 다녔으며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설립했고, 2003년 고 노회찬 의원에게 이어 받은 세계 최초의 노동일간지 ‘매일노동뉴스’를 발행중이다. 민주주의시민연대포럼 상임대표, L-ESG평가연구원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중이다. 지난 해 전태일재단 이사장에 선임됐다. 김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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