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87. 나무의 목숨-신승근 시인
1974년 춘천 찻집서 첫 만남
50년 후 박기동 시인 작고 재회
떠나보낸 친구 이외수 추억 상기
학교 퇴직 후 정선 본가로 돌아와
아내에게 들리는 할머니 목소리
백년의 집서 자연으로 가는 길 배워

#관계
1974년 여름, 그날 비가 내렸다. 나는 인제군 신남에서 농구화를 신고 춘천의 어느 찻집을 들렀다. 그곳에서 신승근과 박기동을 만났다.
당시 사범대학생이었던 이들은 2인 시화전을 열고 있었다. 나는 ‘비 오는 날 담뱃불을 붙인다’라고 방명록에 썼다.
50년이 지난 후, 올해 5월 26일 박기동 시인의 작고로 하여 나는 신승근 시인을 만났다. 신승근 시인은 정선에서 왔고, 나는 춘천에 있었다.
내가 말했다. 조만간 당신의 집을 들러야겠어요.
나와 이외수는 친구 사이이고, 박기동 시인과 신승근 시인은 학교 동문 사이이다. 내 친구 이외수 작가는 2년 전에 작고했고, 신승근 시인의 절친 박기동 시인은 올해 5월 25일에 작고했다.
생존한 나는 생존한 신승근 시인을 만나러, 죽은 자는 버려두고, 6월 26일 정선으로 떠났다. 참으로 아득했다. 나는 문득 백석의 시를 떠올렸다. 28세에 만주 신경으로 떠난 백석은 그곳에서 아득히 ‘북방에서’란 시를 써서 친구 정현웅에게 보냈다.
아득한 녯날에 나는 떠났다.
이 한 줄이 오래오래 나를 붙잡았다.

#신승근과 이외수
신승근이 사범대 학생이었을 적 이외수는 밤마다 나타나 신승근을 협박했다. 이 끈질긴 협박 때문일까. 신승근은 한 편 두 편 시를 쓰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외수를 견딜 수가 없었던 신승근은 마침내 방 벽에다 ‘독립선언서’를 써 붙이고야 말았다. 저녁에 나타난 이외수는 선언문을 소리 없이 읽고 나더니, 방문을 열고 겨울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신승근은 태백산 준령 넘어 강릉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고, 이외수는 떠돌이 화가에서 소설가가 되었다.
그런데 비 오는 어느 날, 이외수가 안개처럼 나타났다. 신승근은 신들린 듯이 ‘이외수’란 제목으로 시를 써나갔다.
“그가 왔다.//비를 맞으며//신문지처럼 접혀서//현관문에 붙어 있었다.”(하략)
얼마나 그립고 간절했는지, 그게 또 얼마나 쓸쓸한 시였는지, 나는 지금도 그저 아득할 뿐이다.

#신승근이란 이름의 시인
지금까지 신승근이 낸 시집은 다섯 권이다. 시선집 한 권을 더하면 여섯 권. 많지 않지만, 그 50년의 시력에서 오래오래 참고 나온 산고(産苦)의 결과물들이다.
박기동 시인처럼 그 흔한 문학상 하나 없어도 신승근 시인은 늘 은은히 빛나는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일러, 보이지 않는 바람 같은 시인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바람처럼 신승근의 시를 사랑하고 외웠다.
사람들은 신승근의 은유를, 신승근이 흘려보내는 것들의 언어를 조용히 붙잡고 음미했다. 젊은 시인들은 신승근의 이미지를 가슴에 품었다. 그 시인들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간결하고 맑고 깊어요. 나직한데도 먼 메아리 같아요.

#백 년의 집
학교를 퇴직한 신승근은 자신이 태어난 집으로 돌아왔다. 정선군 북평면 장열리. 그러나 오래된 집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자신을 시인으로 키운 할머니도 아버지도 이젠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할머니의 자장가가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집이었다. 신승근 시인은 버려진 집을 허물지 않았다. 기둥이나 서까래, 도리 등은 아직도 튼튼해 보였다. 찬찬히 집 구조를 살펴 조심스레 개보수를 시작했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한 말씀씩 했다. “아유 고마운기. 이리 고마울 수가.” “고마우이. 자네들이 참 고마우이.”
3대가 살던 이 집은 이 동네에선 제일 오래된 집이었다. 동네 어른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서린 집, 백 년의 집.
그 집에 시인이 생각하는 방이 새로이 생겨났다. 그 다락방에선 전설을 품은 옥갑산이 보이고, 들녘을 가로지르는 관광열차가 환히 내다보였다. 시인은 진종일 논에서 피를 뽑다가 해질녘이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논두렁길에서 문득 할머니의 음성이 이따금 들렸다. 시인은 마음속으로 복기하듯이 그 소리를 뇌었다. 문득 어느 날부턴가 그 할머니의 음성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인은, 시가 자신에게 나무처럼 자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와 내가 백 년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난 뒤였다. 마당은 고요했다. 개 한 마리 짖지 않는 적요가 감돌았다. 기척을 듣고, 마루 문을 여는 시인 부부가 환하게 웃었다.
#나무의 목숨
시인은 시인이 만든 특별한 방에서 멀리 바라보기를 즐겨한다고 했다. 그의 성찰과 응시는 멀리에서 가까이, 가까이에서 멀리 바라봄이다. 그러다가 그 ‘바라봄의 대상’이 문득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방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방에 내게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자각. 이 ‘빈방’의 의미는 이렇게 전개된다. “이젠 나가야지 하는 순간/방도 소리 없이 내 안에서 빠져나갔다”는 깨달음. 사유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뿐이다.
그게 “자연으로 가는 길”의 명징한 언어이다. 신승근 시인은 할머니의 음성을 빌어 자연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한다.
“얘야 어둠도 발이 시리단다. 방문을 아주 닫진 말아라.”
신승근 시인의 자연관은 할머니의 이 한마디로 모든 게 함축되어 있다. 나이 들어 시인은 아내에게서 그 할머니의 목소리를 다시금 듣는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라 했다.
신승근 시인은 낚시를 좋아한다. 바로 집 앞에 흐르는 굴지천으로 가서 매일 매일 낚시를 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들어선 시인에게 아내가 나직이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아내의 말에서 시인은 할머니가 느껴졌다. 그날로 시인은 그토록 좋아하던 낚시를 접었다.
#여름에도 겨울밤이 더 따뜻한 시인
시인은 ‘오래된 겨울’이란 시에서 이렇게 깊은 겨울밤을 떠올렸다.
‘문설주를 두드리던 차가운 바람’을 느끼자마자, 시인은 할머니의 겨울밤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화로에 마저 담던/불씨를 덜어서/어둠의 발치로 밀어넣습니다//어둠이 발을 뻗고/깊은 잠이 들었습니다/할머니도 나도/천천히 어둠에 담겼습니다/아주 오래된 겨울밤이었습니다”
시인은 ‘자연으로 가는 길’을 자신이 태어난 백 년의 집에서 배웠다. 그리고 할머니와 아내에게서 ‘어떻게 스스로, 그렇게 되어가는지를’ 마음으로 깊이 깨달았다.
이 ‘백 년의 집’ 담벼락엔 ‘할머니와 낙타’란 제목으로 시인의 시가 부착되어 있다.
어린 날 할머니의 굽은 등을 만질 때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꿈을 꾸던 때. 그때의 철없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 한 편.
그것이 장열리 동네 사람들의 눈과 귀와 마음에 익어갈 때, 시인은 고개를 조용히 숙이고, 나무처럼 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바로 지금이 최선이다.
백 년의 집을 방문한 그날은, ‘산다는 것’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치던 날이었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승근 #할머니 #이외수 #최돈선 #탐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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