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 이후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백석.
윤동주가 가장 좋아했던 시인으로 유명한 백석.
여러가지 평이 있으나 문학도들의 가슴 속에 한번은 들어갔다 나온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처음 읽었을 때 큰 충격이었다.
백석의 시(여우난곬족, 국수 등)를 읽을 때는 평안도 방언 사전을 봐야 이해할 만큼 향토적이고, 토속적이었는데, 이 시는 전혀 달랐다. 매우 특이하게 이국적이고, 몽환적이었다.
나타샤의 등장은 완전히 판을 바꾸어 놓았다.
시를 읽고 나서 나타샤에 대해 꽤나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백석이 러시아 문학을 좋아해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나타샤 로스토바를 차용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자야와의 슬픈 인연도 창작의 모티브가 되었다.
가난한 화자, 사랑하는 여인 나타샤, 오기로 한 나타샤는 오지 않는다. 산골 마가리(오두막)에 가서 살자고 약속했는데.
오지 않는 나타샤는 내 마음 속에서 말하지만, 실은 이것은 화자의 내면의 목소리이다.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그로 인한 현실도피에 대한 자기 위안이다.
시적 배경을 지배하는 눈은 네 가지를 상징한다. 푹푹 나리는 눈은 아름다운 사랑을, 푹푹 날리는 눈은 사랑의 시련을, 푹푹 쌓이는 눈은 세상과 단절을, 계속해서 푹푹 나리는 눈은 깊어지는 그리움을 상징한다.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로 시작해서,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로 끝나는 것은, 주어와 목적어를 도치하여 주체와 객체에게 서로 동일한 의미를 부여하는 수미상관의 백미이다. 그러면서 나와 나타샤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등장하는 흰 당나귀는 환상적인 소재이다. 깨끗하고 순수한 존재이자 화자의 소망이 투영된 대상으로, 궁극적으로 화자와 동일시된다.
그래서 제목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나=나타샤=흰 당나귀)로 하지 않았을까.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