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봬도 내가 솜씨가 좋아”[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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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어깨너머로 들었다.
솜씨 좋은 가게를 가려거든 애먼 데 헤매지 말고 오래된 간판에서 사람 이름부터 찾으라고.
"기계로 죄 박아버렸네. 나는 다 손으로 해. 핸드메이드야." 이어서 원피스 기장을 줄여 달라니까 "무작정 댕강 자르면 안 돼. 맵시가 나야 하거든. 맡겨 봐. 이래 봬도 내가 솜씨가 좋아"라며 쿡쿡 웃었다.
아무렴, 딸 이름을 건 가게 주인들 솜씨일랑 매양 든든하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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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수선집에 찾아갔다. 먼저 있던 손님이 ‘경아 엄마’ 부르자, 바늘꽂이를 손목에 찬 주인 아주머니가 나왔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경아는 딸아이의 이름일 터. ‘경아패션’이란 간판을 보고 들어온 참이었다. 켜켜이 쌓인 옷가지와 알록달록한 실패들 사이에 걸려 있는 아기 사진을 보니, 경아는 벌써 아기 엄마가 되었나 보다.
밑단이 뜯어진 바지를 보며 아주머니는 혀부터 찼다. “기계로 죄 박아버렸네. 나는 다 손으로 해. 핸드메이드야.” 이어서 원피스 기장을 줄여 달라니까 “무작정 댕강 자르면 안 돼. 맵시가 나야 하거든. 맡겨 봐. 이래 봬도 내가 솜씨가 좋아”라며 쿡쿡 웃었다. 산뜻한 자부심이 느껴지던 말처럼 나중에 수선된 옷들은 솜씨 좋은 핸드메이드, 만듦새가 노련하고도 깔끔했다. 그렇게 단골집이 생겼다.
얼마 전에도 한 아름 옷을 들고 경아패션에 갔다. “아주 옷장을 털어왔네.” 아주머니가 피식 웃었다. 이상하지. 나는 여기만 오면 이모네 놀러 온 애처럼 아양을 부리게 된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가 휘리릭 돌아보고 워킹까지, 아주머니 앞에서 무슨 패션쇼를 했다.
“여기 마감 좀 봐. 엉망이네.” “그래도 메이커 옷이라고요.” “메이커가 양심이 없네. 이래 가지곤 뽐이 나겠어? 솜씨가 없어. 솜씨가.” 혀를 차면서도 시침핀을 찌르고 초크 칠을 하며 곳곳을 살피는 아주머니 손길이 프로페셔널했다. 옷 몇 벌 입어봤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내게 손부채질을 해주던 아주머니가 뭔가를 꺼내 왔다. “누구 더운 사람 있을까 봐서 깡깡 얼려놨어.” 아, 좋다. 깡깡 언 생수를 손에 쥐고 우린 시시콜콜한 얘길 나눴다.
울 손주가 벌써 여섯 살이야. 그때가 종알종알 제일 귀엽잖아요. 쪼끄만 게 한 고집이라 내가 만날 사과한다니까. 예뻐 죽겠는데 어째요, 할머니가 져줘야지. 하여간 지기는 내가 맨날 져. 자기 이름이 뭐였더라. 수리수리 고수리요. 맞아, 세련된 이름이었어. 예쁘게 해 둘게. 아무 때나 느긋이 와.
경아 엄마가 낡은 장부에 내 이름을 적었다. 이래서 구태여 오래된 수선집을 찾는다. 맵시와 뽐을 따지고, 평생 해온 기술을 ‘솜씨’라 말하는 주인의 철학이 미더워서. 아무렴, 딸 이름을 건 가게 주인들 솜씨일랑 매양 든든하고말고. 손바닥 온기에 그새 녹은 생수를 홀짝거렸다. 옷을 만져주고 손부채질 해 주고 냉수를 건네주고 이름을 적어주던 손길이 너무나 살가워서, 수선집에 빼곡한 실패들처럼 내 마음도 알록달록하게 물들었다. 솜씨 좋은 주인들은 어쩜 마음씨도 좋을까. 내가 수선집에 맡겨둔 건 옷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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