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소설이 빠뜨린 세계
인도 출신 소설가 반다나 싱은 “현대의 많은 사실주의 소설에서는 인간이 마치 동물도 바위도 나무도 없는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것처럼 물리적 우주와 단절돼 있다”고 지적한다. 인도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도 비슷한 발언을 한다. “나는 확실하게 믿는다. 이곳 땅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 있다는 것을, 그것이 오직, 혹은 심지어 우연히, 인간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인간이 기후위기를 가속한 시기에 문학의 내용이 급격하게 인간 중심적이 됐다고 말한다. 이 작가들은 인간이 독점해버린 세상과 그 세상을 닮은 소설 속에서 한 번도 주어의 자리를 차지해본 적 없는 자연물들에 자기 장소를 찾아주려고 애쓴다.
전자제품으로 둘러싸여 날씨조차 체감하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소설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 종류의 깨달음에 아무래도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10년 동안 출간한 10권의 소설책 중 한 권에도 자연물에 주인공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오로지 인간들만이 등장해, 인간을 사랑하거나 인간을 미워했다. 인간이 인간과만 대화하고 인간이 인간 때문에만 외로운,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만 인간적으로 써댔다.
한국에서 자연의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란 어렵다. 날씨조차 더 이상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자연을 놀라워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이제 전자제품에 대해서 그렇게 한다. 스마트폰과 승용차, 건조기에 대해 감탄하고 자랑하는 사이 비와 바람과 빛은 사라져버렸다. 출입구에 아이와 동물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 고급 취향의 카페처럼, 소설 속에서 바퀴벌레와 곰팡이, 축축함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현실의 살충제는 소설 속 벌레까지 죽인다.
반다나 싱의 <자신을 행성이라고 생각한 여자>를 읽으며 우리 집에는 없는 여름을 만난다.
그 책 속에는 여전히 인간 아닌 것들이 살고 있다. 생쥐, 바퀴벌레와 개구리, 딱정벌레며 ‘날리카키다’라고 부르는 하수구 벌레까지… “밤이 되면 부엌은 그 집에 사는 인간의 것이 아니며, 어떤 시간에는 다른 세상의 주민들이 차지하는” 거라고, “자신이 사는 세계는 독립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는 많은 세계의 교집합”이라고, 먼 나라 인도에서 온 소설이 비밀스럽게 속삭인다.
지난주에는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옴짝달싹 못한 채 길 한가운데서 발목을 잡혔다. 기세 좋게 퍼붓는 비와 뒤집히는 우산, 교통신호를 어기고 차선을 막 넘어서려는 버스, 옷이 홀딱 젖은 채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었다. 스포츠나 영화를 볼 때처럼, 폭우가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끼며 비슷하게 움직이도록 지휘하고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내리는 비에 묶여 있던 그 순간, 최신형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단절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걸 봤다.
‘무엇을 쓰는가’는 ‘무엇을 쓰지 않는가’의 문제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보기 위해 무언가를 보지 않는다. 장마철인데도 습도를 느낄 수 없는 방 안에 앉아, 여름이니까 여름처럼 축축해지고 싶어서, 벌레를 만나려고, 흙이 되려고, 에어컨을 튼 방에서 조용히 반다나 싱을 펼친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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