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문단의 ‘잘못된 선민의식’ 사라져야
문학상→공모전으로 바꿔 무기명심사

선민의식(選民意識)의 사전적 의미는 ‘한 사회에서 남달리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잘사는 소수의 사람이 가지는 우월감’이다. 이러한 선민의식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고대의 선민의식은 타 부족을 침략할 때의 이론적 토대로 작용했다. 현대의 선민의식은 더욱 다양해지고 공고해졌다.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도 선민의식이다. 또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선민의식 때문이다. 선민의식은 국제적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폭력과 갈등의 불씨가 돼 문제를 일으킨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문단도 선민의식이 심하게 나타나 문제가 되고 있다.
선민의식은 문학상 심사를 불공정하게 만든다. 국내 유명 문학상 중 하나가 구상문학상이다. 구상문학상은 상금이 5천만원으로 국내 시 부문 최고다. 필자는 주최 측의 요구로 구상문학상을 특집으로 다뤘던 모 문예지에 2년 동안 수상작 작품론을 집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제14회 구상문학상 수상자로 문정희 시인이 결정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숭원 문학평론가가 문 시인의 운영위원 이력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 시인이 심사를 맡았을 때 수상자였던 김종해 시인이 심사위원장을 맡아서다. 결국 ‘셀프 수상’ 논란에 수상은 취소됐다. 우리 문단의 선민의식이 낳은 카르텔의 폐해다.
선민의식은 수많은 등단 장사꾼을 낳았다. 등단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위지로 등단했다. 이들 장사꾼은 등단 과정에서 다양한 명목의 비용을 받는다. 심지어 시인증도 발급한다. 장사꾼들은 자신이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우월감에 빠져 있다. 그리고 등단시킨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는다. 자기 말만 들으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상대를 끊임없이 세뇌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낡고 진부하다. 현대성이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작품만 쓴다. 기시감 가득한 전원시를 잘된 시라고 말한다.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등단하려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막는다. 현재 포엠피플 편집주간인 김네잎 시인도 장사꾼에게 속아 잘못 등단했다가 재등단했다. 김네잎 시인이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을 필명으로 쓴 이유이기도 하다. 장사꾼의 마수에 걸렸지만 김네잎 시인처럼 좋은 시를 쓰는 시인도 많다. 오늘도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등단 장사꾼들은 저인망 그물을 들고 시인 지망생을 찾느라 바쁘다.
선민의식은 출신지로 계급을 나누게 한다. 메이저 문예지나 중앙일간지로 등단한 일부 작가들의 우월감은 목불인견이다. 특히 불공정하게 등단한 경우는 더 심하다. 필자가 아는 K시인은 메이저 문예지 출신이다. 문예창작과 재학 시절 K시인을 가르쳤던 강사가 자기 파워를 자랑하기 위해 등단시켰다. 메이저 문예지가 신인문학상제도를 만들기 전까지 이렇게 등단한 작가들이 많았다. 이들은 평생 등단지의 프리미엄을 가지고 활동한다. 그리고 메이저 출판사에서 저서를 출간한다. K시인은 몇 년 전 모 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자로 자기 제자를 선정해 물의를 일으켰다. 필자가 문단에서 알게 된 일부 메이저 출신 문인들의 선민의식은 대단했다. 그들은 메이저 출신이 아니면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문단의 잘못된 선민의식은 사라져야 한다. 선민의식은 K-문학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력으로 평가받는 문단이 돼야 한다. 구상문학상을 공모전으로 바꿔 무기명 심사를 하면 수많은 시인 지망생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그리고 등단 장사를 하는 문예지들이 사라지면 90년대 이전 활발했던 동인지가 살아날 수 있다. 당시 동인지를 통해 실력 있는 작가들이 탄생했다. 아르코나 문화재단의 지원금 심사도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해야 한다. 심사가 공정했을 때 한국 문단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어디로 등단했든 실력으로 평가받는 문단이 돼야 한다. 문단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유리천장은 선민의식이 낳은 카르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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