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의 땅 오르도스 사막서 삶의 본능을 마주하다
문명·생존·고요·격동·본능·개입 맞물리는 곳
사막과 숲이 공존하는 이중 구조의 생태 지형
‘기후 정책 실험실’ 국가 조림사업 성공 사례






6월 중순, 한반도에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무렵, 필자는 4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내몽골 오르도스로 여행을 떠났다. 일행은 1981년 경북 영덕중고 동문 15명이 결성한 청류회(淸流會) 회원으로, '맑고 푸른 물처럼 살자'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영덕을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드는 청정 하천 오십천(五十川)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부부 동반으로 6월 15일부터 4박 5일간 이어진 이번 여정은, 현지 조선족 3세 김청호 가이드의 정성 어린 안내 덕분에 더욱 특별했다. 김 가이드는 자신의 조부가 경북 포항 출신임을 밝히며,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듯한 따뜻한 인연을 나눴다. 그의 안내 아래 광활한 내몽골 오르도스 대지를 깊이 체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초원의 이면, 문명의 외피
'유목의 DNA'와 '문명 전환기'가 공존하는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중심도시 오르도스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초원과 텐트의 풍경을 비껴간다. 오히려 거대한 신도시의 스카이라인, 잘 정비된 도로망, 인공강과 고급 주거단지가 맞이한다. 월소득 350만 원 이상의 부유층이 많고, 7억 원을 웃도는 고급 아파트, 그리고 조경보다 조형미에 가까운 인공 자연. 필자가 본 오르도스는 '사막 위의 두바이'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땅이 품은 본래의 시간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도시를 벗어난 차창 밖 풍경은 급격히 바뀌었다. 바람을 품은 대지, 자작나무 군락과 은백양이 엮어내는 능선, 오르도스 초원은 해발 1400m, 사막과 숲이 공존하는 이중 구조의 생태 지형이다.
이곳은 과거 사막이었으나 국가 주도의 조림사업으로 초원화에 성공한 사례다. '기후 정책의 실험실'로도 불리는 이유다. 초원에 도착하자 전통 혼례식 재현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신부를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오열 연기는 지나치게 연극적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유목 가족의 이별'이라는 보편 감정은 충분히 전달됐다. 식사는 양고기 스튜인 '수바루'. 야생의 풍미가 거칠지만 솔직했다.
밤에는 캠프파이어와 몽골 민속 공연이 이어졌다. 민속춤과 EDM이 한 무대에서 섞였다. 과거와 현재가 병렬식으로 나열된 무대였지만, 오히려 그 어설픔이 진짜 문화 혼종의 한 단면처럼 느껴졌다. '관광상품화된 전통'이라는 프레임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사막, 문명과 생존의 경계
다음 날 아침, 새벽 햇살이 사막의 수평선을 물들일 즈음 우리는 고요한 긴장 속으로 들어섰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 이미 사막은 깨어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모래는 어제보다도 더 부드러웠다. 발끝이 닿는 순간마다 고운 모래 알갱이들이 무너지고 흩어졌다.
낙타 체험이 시작됐다. 쌍봉낙타가 무릎을 굽히며 천천히 몸을 낮췄고, 그 위에 올라타는 순간 균형을 잃을 듯한 아찔함이 찾아왔다. 낙타는 머뭇거림 없이 일어섰고,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천천히 모래 언덕을 걸어갔다.
"낙타는 절대 서두르지 않아요. 사막에서는 느린 게 살아남는 법이죠."
앞에서 낙타를 이끌던 가이드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 말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이곳에서 나고 자란 자만이 할 수 있는 생존의 철학이었다. 낙타가 걷는 동안에는 말이 필요 없었다. 바람소리, 낙타의 콧김, 멀리서 들려오는 방울 소리만이 귀를 울렸다. 우리는 낙타 등에 실린 짐처럼 조용히 매달려 그 리듬에 동화되었다. 사막은 침묵 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느린 이동이 곧 생존이라는 것을. 이윽고 오프로드 체험이 시작되자 사막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붉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진하는 차량의 굉음, 날리는 모래 입자, 속도에 밀려 날카로워지는 바람. 모래언덕의 능선을 가로지르는 순간, 사막은 더 이상 고요한 공간이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은 오르도스 청년이 급커브를 돌며 우리를 모래 구름 속으로 밀어넣었다.
문명의 엔진은 대지 위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그것은 생명과 충돌하는 인간의 개입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모래썰매 체험이 이어졌다. 급경사의 모래언덕에 올라 바닥이 반질하게 닳은 썰매에 몸을 싣는 순간, 중력은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바람은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고, 미세한 모래가 눈가를 파고들었다. 비명과 웃음이 뒤섞인 그 몇 초 동안, 방향을 읽고 균형을 잡는 것이 생존이었다. 단순한 놀이라기보다는, 사막이 요구하는 직관과 즉흥성이었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사막은 정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낙타의 발끝과 자동차의 바퀴, 인간의 발자국과 썰매의 선들이 오가며 수천 번 그려지고 지워지는 '살아 있는 지형'이었다. 문명과 생존, 고요와 격동, 본능과 개입이 맞물리는 경계. 그곳이 바로 오르도스의 사막이었다.
△문화의 유적, 제국의 잔재
오르도스 문화원은 압도적인 규모였다.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북경에 세운 대도를 재현한 청록 지붕의 궁전, 황금빛 장식, 11마리의 상형 동물 조각은 몽골 제국의 상징체계 그 자체였다. 내부는 '황제의 대관식 체험존'까지 갖춘 전시형 공간이지만, 그 너머에는 진지한 기획 의도도 엿보였다. 유목제국의 자긍심, 그리고 정주문명의 이해 시도가 동시에 깔려 있다. 인근 박물관은 북방 민족의 유물을 총망라한다. 흉노, 선비, 여진, 몽골. 전시 동선은 '정복자들의 기술'이란 주제로 구성되어 있었고, 청동기에서 철기, 의복에서 장신구까지 강인함과 실용미의 교차점이 인상 깊었다.
불교문화원은 또 다른 세계였다. 티베트 라마교와 몽골 불교가 혼합된 금색 사원, 회전 기도통, 청동 불상. 종교는 정주 이전에 뿌리내렸고, 그 뿌리는 지금도 울창하다. 사원 안쪽 법당의 기운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징기스칸릉에서 마주한 기원의 땅
징기스칸릉에 도착하자, 높이 6.6m의 거대한 기마상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위풍당당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을 탄 징기스칸의 조각상은 단지 기념물이 아니라, 몽골 민족이 품고 있는 정체성과 기상을 형상화한 정신적 상징이었다. 기념광장을 중심으로 이어진 99개의 돌계단은 징기스칸이 거느렸던 99명의 장군을 상징한다고 했다. 계단을 오르며, 방문객들은 '오보'라 불리는 돌탑 주위를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비는 전통 의식을 행했다. 이 의식은 단순한 관광 코스가 아닌, 몽골 유목 전통에서 비롯된 순례 의식이다. 고개 숙여 돌탑을 돌며 바람에 펄럭이는 하닥(몽골식 축원 천)을 보는 순간, 전설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현재형 믿음이 되어 다가왔다.
사당 내부는 사뭇 경건했다. 벽에는 징기스칸의 일대기가 벽화로 묘사되어 있었고, 유물과 함께 전시된 장명등(長明燈)은 그의 혼이 꺼지지 않는다는 상징으로 오늘도 타오르고 있었다. 향내가 짙은 공간은 마치 시간의 경계를 흐리게 했고, 제국의 전성기를 회상케 했다.
징기스칸은 1206년 몽골 제국을 창건하고, 동서 1만㎞에 이르는 유라시아를 통합한 역사상 유례없는 정복자였다. 그러나 그는 단지 군사적 영웅이 아니었다. 야사(Yassa)라 불리는 법체계를 만들어 유목민 사이의 질서를 확립하고, 실크로드의 교역을 보호하며,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영향은 현대 몽골에서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 내몽골 지역에서도 그에 대한 경외심은 문화와 정치의 뿌리에 닿아 있다.
징기스칸은 박제된 위인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역사였고, 여전히 정체성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원형이었다. '역사란 반복이 아니라, 기억의 조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조율이 잘된 민족은 현재에 방향이 있었고, 미래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도시의 불빛아래, 초원의 여운
여정의 마지막 밤, 우리는 오르도스의 심장이라 불리는 인공강 주변으로 향했다. 황하강에서 물을 끌어와 만든 이 강은 단순한 치수 시설이 아니었다. 중국이 오르도스를 '사막 위 신도시'로 키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대규모 도시재생의 상징이자, 유목에서 정주로 전환된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강을 따라 이어진 캉바스 광장에는 어린이 놀이터, 야시장, 예술 조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주민과 관광객이 뒤섞인 그 풍경은 이 도시의 역동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밤 9시 정각, 음악 분수쇼가 시작됐다. 클래식과 몽골 전통 선율, 그리고 현대 EDM이 교차하는 가운데, 물줄기가 100m 상공까지 치솟았고, 분수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듯 리듬을 탔다. 오색 조명이 대지를 물들일 때,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고 관광객들의 셔터 소리는 쉴 새 없이 터졌다. 강 위로 반사된 불빛과 뒤편 고층 건물들의 형형색색 조명은 이 도시가 단순한 사막 개척지가 아닌, 중국 내몽골의 신흥 중심지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 순간, 문득 이렇게 화려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낮에 밟았던 사막의 미세한 모래결과 초원의 바람소리가 귀가에 맴도는 것을 느꼈다. 오르도스는 급속한 개발과 자원 산업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유목민의 흔적과 정신이 배어 있었다. 끊임없이 이동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삶, 그것이 이 땅의 철학이었고, 현대 문명에 익숙해진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의 본능이었다.
마지막 밤, 강변 벤치에 앉아 일행들과 나눈 대화는 오랜 우정의 밀도만큼 따뜻했다.
"야, 우리가 이렇게 나이 들어서도 같이 낙타를 타게 될 줄은 상상이나 했겠나."
한 친구의 농담 섞인 말에 다들 한바탕 웃음이 터졌고, 누군가는 눈가를 훔쳤다. 40년을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 낯선 대륙의 밤하늘 아래에서 바라본 음악 분수는, 마치 청춘의 한 페이지가 다시 펼쳐지는 듯한 착각을 안겼다. 그날 밤, 내몽골의 바람은 부드러웠다. 고요히 흐르는 인공강 너머로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과 함께, 사막과 초원, 그리고 우정의 시간이 천천히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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