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핫플] 원불교 뿌리, 전남 영광 영산근원성지를 가다

윤태민 기자 2025. 7. 1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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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 탄생지서 대각터까지
원불교 110년 서사…근대 종교문화유산
공동체 실천·자립 이끈 초기 교단 현장
종교·교육·복합문화공간으로 재조명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구수산 자락 아래 자리한 영산근원성지의 소태산 대종사 노루목 대각터.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고요한 구수산 자락 아래 자리한 영산근원성지는 원불교의 시작점이자 교조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탄생하고 구도, 대각을 이루고 구인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성사 등 교단의 초석을 다진 곳이다. 1916년 4월 28일,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정신 아래 새로운 길을 연 이래 이곳은 원불교 교단의 뿌리로 현재까지 제1근원성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창시돼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대표적인 근대 종교인 원불교는 국내에 그 성지를 두고 있는 몇 안 되는 종교다.

영산성지 일대에는 지금도 교조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다양한 신앙과 교육의 공간들이 남아 있다. 그중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노루목 대각지에는 '萬古日月(만고일월)'이라 새겨진 대각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초기 원불교 교단의 중심 건물이었던 '구간도실'은 1923년 현재 위치로 옮겨져 '영산원'이라 불리며 교단 활동의 거점이 됐다.

또 학원실은 청소년 교육과 교단 인재 양성의 거점으로 사용되며 훗날 영산선학대학교의 모태가 됐다.

특히 1936년 건립된 대각전은 법신불 일원상을 봉안한 법당으로, 2011년에는 등록문화재 제481호로 지정되며 성지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영산성지 일대에는 대각의 순간부터 교단 형성 초기까지, 원불교의 시작 흔적이 다양한 형태로 남아 오늘날까지도 순례자와 신도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 노루목 대각터.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원년(1916) 4월 28일 이른 새벽에 문득 정신이 맑아지고 전에 없던 이상한 영기가 와 닿음을 느끼고 마침내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으로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해 한 두렷한 기틀을 이루었음을 깨달았다. 원불교에서는 이 날을 원불교의 기원으로 삼고 이 터를 원불교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정신문명을 일으킨 구도와 대각의 땅 영산성지

소태산 대종사는 20세기 초 급속히 발전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성의 상실을 우려하며, 생활 속 실천을 중시하는 '생활불교'를 표방한 원불교를 열었다. 그는 1916년 노루목 대각터에서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대중불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루목 대각터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진리를 깨달은 곳으로, 원불교 창교의 출발점이자 정신개벽 사상의 발원지다.

이는 소태산 대종사의 지혜 광명이 영원한 세월을 통해 길이 빛나는 해와 달 같다는 뜻을 비유한 의미다.

해방 이후 원불교는 전재동포구호사업, 보육원 설립, 원광대학교 창립, WBS원음방송 개국, 군종장교 배출 등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 왔으며, 국내외 23개국으로 전파되며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영광의 '영산근원성지'가 있다.

영산성지는 소태산 대종사의 생가인 탄생가를 비롯해 대각을 이룬 노루목 대각지, 최초 법어가 선포된 돛드래미 이씨재각, 9인의 제자들과 함께 기도한 구인 기도봉 등 교단 초기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일대에는 영산원불교대학교, 대안학교인 영산성지고, 송학중학교, 영산원로수도원 등이 자리해 거대한 종교 교육·수행 단지를 이루고 있다. 백수읍은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해안 산간 지역으로, 과거엔 바닷물이 성지 인근까지 들어왔을 정도로 갯벌이 넓게 펼쳐졌던 곳이다. 지금도 성지 앞에는 와탄천과 선진포 등 당시의 물줄기와 지형이 남아 있어, 소태산이 걸었던 구도의 길을 실감케 한다.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 위치한 영산 정관평.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 위치한 영산 정관평.소태산 대종사가 제자들과 함께 원기 3년(1918) 5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1년 동안 길룡리 앞바다 버려진 갯벌을 막아 간척한 농지다. /남도일보 DB

◇개벽의 현장, 정관평 간척지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이후 9인의 제자들과 함께 길룡리 앞 바다의 갯벌을 농지로 바꾸는 간척사업을 펼쳐 '정관평'이라는 농지를 1918~1919년 2년에 걸쳐 조성했다.

이곳의 규모는 8만4천981㎡로 원불교 창립정신의 상징적인 장소이자 초기 교단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곳이다.

특히 단순한 경제적 시도가 아니라, '영육쌍전'(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의 교리 실천이자 자립적 교단 기반 마련을 위한 첫 번째 사업이었다. '정관평'이란 이름은 중국 당나라 태종의 연호에서 따온 것으로, 평화롭고 안락한 이상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담겼다.
영산성지 영산원.소태산 대종사가 대각을 이룬 후 첫 사업으로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그 자산으로 창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간척사업을 하면서 관리사무소와 법회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원기 3년(1918) 제자들과 함께 옥녀봉 아래에 지은 원불교 최초 건물이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2차 간척사업은 정산 종사가 이끌었으며, 현재도 이곳 200마지기 중 일부는 교무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경작 중이다.

현재는 연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계절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며 방문객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영산성지 영산원 내부.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최초의 교당 구간도실…생활불교의 터전

간척사업이 마무리되자 소태산은 그 일대를 정비해 영산원이라는 교단의 첫 건물을 세웠다. 지금은 재건축돼 단정한 전통 한옥 형태로 남아 있지만, 처음엔 흙벽 초가집이었다.

대종사는 이곳에서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구원하겠다는 기도를 올려 법계의 인증을 얻는 법인성사를 이뤘다.

옥녀봉 아래에 있을 당시에는 '구간도실(九間道室)'로 불렸으나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3천 년 전 석가모니불의 영산회상을 재현한다는 의미로 '영산원(靈山院)'이라고 했다.

구간도실은 가로·세로 세 칸, 아홉 칸으로 지어진 공간으로 제자들이 함께 수행하며 생활하던 곳이다. 이곳에는 제자들이 흰 종이에 손가락 도장을 찍자 핏자국이 남았다는 '백지혈인(白紙血印)'의 전설이 전해진다. 대종사가 공도(公道)를 위해 목숨조차 아깝지 않다는 제자들의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정신을 시험했다는 이야기로, 오늘날까지 교역자들이 신성한 교단 정신으로 되새기는 상징적 일화다.

1924년 원불교 중앙총부가 전북 익산에 건설되자 인근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영산학원 활용됐고, 오늘날 영산선학대학교로 발전했다.
원불교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이 모신 영산성지의 중심 건물. /연합뉴스

◇근대의 종교건축, 대각전

전남 영광군 백수읍 영산근원성지 중심에 자리한 '대각전(大覺殿)'은 원불교 순례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법당이다.

깨달음의 상징이자 신앙 수행의 본산으로, 소태산이 1936년 직접 감역해 완공한 건물이다.

강당형 구조에 기둥 없이 탁 트인 내부, 절제된 일본식 목조양식과 위로 함석지붕을 얹어낸 형태는 단순하지만 고요하고 단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면 중앙에는 원불교의 신앙 대상인 법신불 일원상이 봉안돼 있고, 그 왼편에는 소태산 대종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법회와 강연, 종교 집회는 물론 지금도 순례객들의 참배와 수행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1987년과 1999년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2011년 10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81호로 지정된 대각전은 단순한 법을 전하는 공간을 넘어, 원불교 창교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중심이고 신앙의대상인 법신불 일원상을 봉안하는 상징 공간이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