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0장] 황룡촌 전투(189회)

윤태민 기자 2025. 7. 1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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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빠라 빰빠빠, 빰빠라 빰빠빠...

나팔 소리가 경쾌하게 월평 들판으로 퍼져나갔다. 뒤이어 둥둥둥 북이 울렸다. 승전을 알리고, 출진 대오를 갖추라는 신호다.

김석돌, 도감봉, 설진수가 연병장으로 사용하는 황룡강 모래톱으로 나가자 최경선과 김응문, 나주에서 올라온 오권선이 지휘대 앞에 서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동학농민군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지휘대 앞으로 집결했다.

영솔장 최경선이 단위에 올라섰다.

"군사들은 들으라. 승전의 기쁨을 고깃국과 쌀밥과 떡을 먹으며 만끽하였다. 그러나 이제 다시 시작이다. 갈재를 넘어 정읍을 거쳐 완산을 지나서 전주성에 입성할 것이다."

와-, 함성이 일었다. 마침 무안과 함평, 나주 기병들이 기세 좋게 깃발을 앞세우고 연병장으로 모여들었다.

"무안의 배상옥 대접주가 오늘의 전과를 말할 것이다. 이 훈화를 교훈 삼아 앞으로의 전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최경선이 내려가고 배상옥이 단위에 올랐다.

"오늘은 기쁜 날이요. 언제나 이런 날이 오기를 바라오. 보다시피 우리가 월평촌에 진을 친 이틀 후인 4월 23일 중앙군 대관 이학승이 정예군을 이끌고 우리 군사에게 공격해왔소. 선봉 이학승은 황룡강가 장터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우리 군사에게 선공함으로써 전투의 포문을 열어, 이때 부득이 우리 군사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소. 우리는 인근 삼봉으로 급히 올라 전투대형을 갖추고, 신무기로 개발한 장태로 방어와 공격 태세를 갖추어 밀어붙였소. 그리고 마침내 우리 군이 승세를 잡았던 것이오."

동학농민군은 황토현에서 전주 감영군과 전투를 해본 적이 있었으나 중앙군의 최정예 부대와 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앙군은 일본에서 수입해 온 쿠르프식 야포, 회전식 기관총, 모제르식 소총이라는 최신 장비로 무장하였으나 동학농민군의 신묘한 장태 공격을 돌파하지 못하였다.

황룡강 들판과 강, 산악의 지형지세를 꿰고 있는 동학농민군들은 삼봉의 정상으로 급히 올라 백학진 전술로 관군을 몰아붙였다. 최신 총을 쏘아대는 관군 앞으로 두엄더미보다 큰 둥그런 장태를 수없이 굴렸다. 장태안에 짚 덤불을 가득 채운 까닭에 경군의 총알은 장태의 섶에 박힐 뿐, 무용지물이 되었다. 농민군은 장태를 엄폐물 삼아 아래로 굴려가며 공격을 퍼부으니 경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일부 장태엔 불을 붙여 굴렸다. 장태는 화력 좋은 폭탄이 되어 경군이 수십 명 떼거리로 치여죽었다.

설진수가 옆의 농민 병사를 보고 자랑했다.

"대나무로 만든 장태로 밀어부링개 새끼들 좆도 아니더만. 우리 부대가 밤새 통을 만들었제. 둥그스럼한 닭집과 같은 통으로 무기를 만등개 경군들은 처음에는 뭔지 몰라보고 닭장태가 대수냐고 시피 보더라고. 하지만 농민군이 장태 뒤에 숨어 따라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경군을 고대로 죽창으로 찔러부렀제. 나가 피를 많이 보았구먼."

배상옥이 말을 이었다.

"농민군의 위세와 용기는 관군이 확보한 신식 무기에도 주저함이 없었소. 마침내 경군은 영광 쪽으로 퇴로를 잡아 후퇴하였으나 신촌리 뒷산 까치골 능선에서 다른 농민군이 발라부렀소."

그러자 다른 병사가 맞장구쳤다.

"그렇게 해부링개 골로 가불제. 이때 경군 대관 이학승이 전사했당개."

이와 함께 농민군은 이학승 이외 다수의 경군을 죽이고, 대포 1문, 쿠르프식 기관포와 회전식 기관포 1문, 그리고 양총(洋銃) 수십 종을 노획하였다.

노인 병사가 곁의 병사에게 물었다.

"황룡촌 전투는 농민군과 정예 군대인 경군과 처음으로 접전을 벌인 전쟁이여. 역사적 사건이고만. 이렇게 농민군이 대승하였는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부적 때문이요."

함평 이화진 부대의 부관 김삼석이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가 덧붙였다.

"경군과 접전이 있을 때마다 가슴에 부적을 지니고 다녔는디, 총탄이 부적을 뚫지를 못하더랑깨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