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같은 소들이 물에 둥둥”…몸만 빠져나온 충남 농민들 한숨
도로 끊기자 옥상으로…보트로 대피


“새벽 6시쯤에 집에 물 찼다고 부모님한테 전화 와서 허겁지겁 달려왔네요.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허신디, 119나 장애인 콜센터에 연락해도 다 출동 중이고 차도 못 들어와서 아버지를 이불로 싸서 겨우 나왔어요.”
17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 조림초등학교에 마련된 집중호우 대피소에서 만난 김상범 씨(51)는 이날 새벽 천안에서 달려와 아버지를 대피시키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중부지방에 2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이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충남 지역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마을이 물에 잠겨 거대한 하천으로 변했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들은 침수를 피해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렸다. 농장과 축사가 잠기자 농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 물에 잠긴 마을, 보트 타고 고립 주민 구조

밤새 물폭탄이 쏟아진 충남 서산, 예산, 당진 일대에서는 새벽부터 전기, 수도, 도로가 모두 끊겨 마을이 고립됐다. 예산군 신암면에서 약 10분 거리인 당진 삽교읍 하포리, 용동리, 성리 마을은 삽교천 일부 제방이 유실되면서 물이 성인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다. 도로는 완전히 잠겨 어디가 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집과 비닐하우스는 흙탕물에 잠겨 지붕만 겨우 드러나 있었다. 드러난 도로에도 곳곳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상태였다.
경찰차, 구급차, 소방차 등이 진입할 수 없게 되자 마을 주민들은 건물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하포리에서 40여 명, 성리 10여 명, 용동리 5명 등 총 50여 명이 옥상에 고립됐다. 소방대는 오전 11시쯤 보트를 투입해 지붕을 오가며 주민 구조에 나섰다. 신암면 대피소에 있던 주민들은 “살면서 이런 비는 처음 봤다”며 입을 모았다. 이순자 씨(71)는 “빗소리가 천둥 같았고, 대피할 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 대피소에는 충남 지역 중 가장 많은 46세대, 124명이 몸을 피했다. 인근 주민들은 오전 6시부터 대피를 시작했고,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은 청년들이 부축해 함께 이동했다. 이들 청년은 여러 집을 오가며 돕느라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였다.
긴급구호 물품이 뒤늦게 도착한 대피소엔 침울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주민들은 “살았다는 게 다행”이라며 안도하면서도, 침수된 집과 농지를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축사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새벽에 축사를 살피러 나갔는데 이미 물에 잠겨 있었다”며 “소 10마리가 물에 둥둥 떠 있었지만 아내만 간신히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 소들은 어쩌냐”며 울먹였다.
● 단시간 극한호우 피해 커져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전 11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서산 518.9㎜, 홍성 411.4㎜, 당진 신평 376.5㎜, 아산 349.5㎜, 태안 348.5㎜ 등을 기록했다. 특히 서산에서는 이날 하루 11시간 동안 438.5㎜가 쏟아져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고 일강수량을 기록했다. 기상청은 “서산 등 충남권에 내린 비의 양은 200년에 한 번 있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극한호우’가 잦아지면서 호우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날도 많은 지역에서 시간당 50㎜가 넘는 폭우가 관측됐다. 박상훈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2010년 이후 전통적인 장마 구조는 무너졌다고 보면 된다”며 “비가 일정 주기 없이 국지적으로 쏟아져 예측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물에 잠긴 도로나 배수로는 접근하지 말고, 갑자기 몰려드는 물살에 휩쓸릴 수 있으니 비탈이나 급경사 지역도 피해야 한다. 차량에 있을 땐 타이어 3분의 2 이상이 잠기기 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차량 침수로 문이 열리지 않으면 좌석 목받침으로 유리창을 깨고 탈출해야 한다. 특히 지하는 물이 급속히 차오르기 때문에 물이 종아리 높이(약 40cm)에 이르기 전에 신속히 대피해야 한다.
예산=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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