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한 장으로 빵·피자 산다”…불황에 뜨는 지하철 쇼핑 [르포]

변덕호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ddoku120@mk.co.kr), 박성렬 매경 디지털뉴스룸 인턴기자(salee6909@naver.com) 2025. 7. 1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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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 속 뜨는 ‘지하철 쇼핑’
빵·피자부터 빈티지 의류까지
“출퇴근길, 작고 빠른 소비가 바꾼 풍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 내 1달러 피자 가게. [박성렬 인턴기자]
“피자 한 판 시키면 2만원 훌쩍 넘잖아요. 퇴근할 때 역사 안에서 조각 피자 두 개랑 맥주 한 캔 사서 하루 마무리해요.”

17일 오후 서울 2호선 사당역 내 ‘1달러 피자’ 매장 앞. 고소한 치즈 냄새가 역 안 가득 퍼지며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더욱이 눈길을 끄는 건 피자 한 조각이 단돈 1500원이라는 점이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퇴근길에 이 정도면 딱이다. 배달 피자 한 판 시키면 2만원 훌쩍 넘는데, 여기선 단돈 3000원에 피자 두 조각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기 불황 속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면서, 지하철 역사 내 실속형 매장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임대료 부담이 적은 역사 공간에 입점한 점포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조각피자·천원 빵에 줄 선 직장인들
사당역 내 빵집. [박성렬 인턴기자]
이날 방문한 사당역 안에선 1달러 피자를 비롯해 ‘천원 빵집’ 등 10곳 내외의 실속형 매장이 있었다.

갓 구운 빵을 천 원에 판매하는 천원빵집에는 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소보로빵, 마들렌, 스콘 등 디저트빵부터 소금빵, 소세지롤 등 식사대용 메뉴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격은 1000~5000원대로 일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대비 30~40%가량 저렴한 수준이다. 빵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선 20대 대학생 이모씨는 “요즘 지하철에 저렴한 빵집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며 “아침을 거를 때가 많은데 이동하다가 허기질 때 하나씩 사먹곤 한다”고 말했다.

강남역 내 과일가게 ‘푸룻해’. [박성렬 인턴기자]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에는 20여개의 실속형 매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강남역 신분당선 방향 지하상가에 위치한 과일 가게 ‘푸룻해’에선 계절 과일부터 열대 과일까지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이날 판매 중인 과일은 △‘딱딱이 복숭아’(5개입) 한바구니 8000원 △‘말랑 복숭아’(5개입) 6000원 △골드키위(4개) 5000원 △대추방울토마토(400g) 4000원으로 시중가격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했다.

저렴한 가격뿐만 아니라 컵 단위로 손질된 과일을 판매해 1인 가구를 겨냥하기도 했다.

매장을 이용한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가격도 합리적인 편이고 컵 과일도 판매하고 있어 종종 구매한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도심 직장인들에겐 이런 매장이 꽤 유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역 내 빈티지숍. [박성렬 인턴기자]
인근에 위치한 빈티지 의류 매장도 눈에 띄었다. 매장 안에는 셔츠, 재킷, 데님 팬츠 등 다양한 중고 의류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매장 내부에는 저렴한 의류를 구매하려는 손님들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여름 의류는 5000~7000원, 가을·겨울 옷은 2만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40대 최모씨는 “출퇴근 시간에 둘러보시는 분들도 있고, 점심시간 이후에도 많이 온다”며 “최근에는 옷을 입고 버리는 게 흔해지다 보니 저렴한 지하상가에서 구매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빈티지라 일부 의류는 오염이 있기도 하지만, 저렴하니까 납득하고 구매하신다”고 말했다.

고물가·1인가구 증가에 따른 선호
지난 3일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 무와 배추가 진열되어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 같은 실속 소비 트렌드는 가파른 외식 물가 상승과도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2% 상승했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두 달 만에 다시 2%대로 올라선 것이다. 이는 한국은행이 제시한 물가 안정 목표치(2%)를 소폭 웃도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생활물가지수는 2.5% 상승해 소비자물가보다 0.3%포인트 높았다.

또한 1인 가구가 늘면서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소용량·소포장 제품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혼자 살며 식비나 생활비를 아끼려는 이들이 늘다 보니, 지하철역 내 실속형 매장은 ‘짧고 빠른 소비’를 원하는 1인 가구에 더욱 적합한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컵 과일이나 소포장 빵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하철 상권은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유동 인구도 많아 상품과 품질과 가격만 잘 맞추면 충분히 매출을 낼 수 있는 입지”라며 “지하철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대체로 빠르게 이동하는 경향이 있어, 천천히 아이쇼핑을 하는 업종보다는 간단하고 소규모로 포장된 상품이 주목받기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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