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前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이 펴낸 ‘나의 소비자 분쟁 조정기’
변웅재/안타레스/17000원
법조인으로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을 지낸 저자가 소비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를 조정과 타협으로 조정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비치는 소비자와 사업자, 정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법적 분쟁이라고 하면 재판을 떠올리지만, 소비자분쟁조정위는 훨씬 더 유연한 접근 방식이다. 강제력이 없고, 법원과는 달리 신속하며, 당사자 간 자율적인 합의를 유도하는 구조다. 저자는 소비자와 사업자 그리고 정부 모두를 위한 권익 실현과 지속 가능한 소비자 정책 방안을 담았다.
책에 따르면 로또 당첨번호를 예측한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명목으로 소비자가 몇백만원을 지급한 사건에서 계약서나 별도 약정 조항에 근거해, 예를 들어 미당첨 시 환불해주겠다는 전화 내용을 녹음한 경우라면 이를 근거로 환불 처리하거나 일종의 ‘계속거래’로 보고 관련 법률을 들어 일정 액수라도 환불이 이뤄지도록 했다. 다만 이 경우 조정 결정이 마치 이런 서비스의 적법성을 인정한다고 오해받는 것을 막고자 결정문에 “이 조정 결정은 당사자들의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목적의 결정일 뿐이며, 사업방식의 적법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식의 문구를 기재했다. 다소 궁색해 보일지 모르나 위원회로서는 소비자의 소중한 재산을 조금이라도 지켜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입장은 불법적인 유사투자자문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에 대한 분쟁조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조정절차를 통하여 소비자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면서도 사업자의 사업방식의 적법성을 인정하지는 않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외에도 해외 직구로 구매한 고가 명품 가방이 가짜로 판명된 사건, 자동차 수리를 맡겼다가 더 큰 손해를 본 소비자의 이야기, 보험사와 고객 사이의 애매한 약관 해석을 둘러싼 공방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가 소개된다. 저자는 다양한 분쟁조정 사례를 통해 단순한 법률 해설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소비자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저자는 분쟁조종을 이해관계를 정리하는 ‘계산’이 아닌, 감정을 다독이고 신뢰를 복원하는 ‘사회적 기술’이라고 말한다. 집단분쟁조정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분쟁조정 역사상 큰 사건 3개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사건을 통해 저자의 희망과 좌절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머지포인트 사건에서 저자가 각 회사들에 보낸 간절한 서신에도 불구하고 각 회사가 이를 매정하게 물리치고, 결국 2년 후 이것은 티메프 사건이라는 중소기업과 소비자의 대규모 피해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소비자 집단 피해를 구제하는 제도의 개선이 시급함을 느끼게 된다.
분쟁의 본질은 ‘정보의 비대칭’에서 기인한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계약서나 약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동의한다. 반면 사업자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계약을 유리하게 설계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이 불균형 구조에서 소비자는 항상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간에게는 ‘멘털 어카운트’(mental account·심리적 계좌)라는 별도의 감정 창구가 있다고 소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누군가 이 계좌를 채워주면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진다. 이를테면 배우에게 출연료를 더 많이 주는 것보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할 때 일등석 항공권을 마련해주고 현지 5성급 호텔 숙소를 잡아주거나, 국제 영화제 같은 행사에서 좋은 자리에 앉도록 배려해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서비스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별개로 서비스를 제공한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적 갈등’ 너머 ‘공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소비자 분쟁의 본질을 조명하고, ‘공정한 소비자 권리’와 ‘사회적 신뢰 회복’ 의미를 되짚는 유용한 책이라 할만하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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