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경주여행] 5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역사문화도시 경주는 신라천년의 고도이다. 하지만 경주에도 엄연히 고려와 조선 1천 년의 역사 흔적도 두텁다. 경주 북부의 안강과 강동지역에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있다.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이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으로 전 세계 방문객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시대 한옥 형식을 그대로 띤 150여 채의 주택이 초가와 기와로 구성된 양동마을은 2010년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양동마을 양반길
경주 양동마을 양반길을 걷는 일은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양동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경주 손씨의 종가 관가정과 여강 이씨의 종택 향단이 양대산맥처럼 두 줄기의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더위와 추위를 피해갈 수 있는 매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연밭을 지나 처음 만나는 곳이 정충각이다. 임진왜란에 맨손으로 적진으로 뛰어들었던 양반과 모시던 주인을 버리고 달아나지 못해 함께 화살받이가 된 충복의 넋을 기리는 비가 나란히 세워진 곳이다. 이어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담 너머 떡이며 옥수수 등의 정을 주고받았던 조선시대를 상상할 수 있다.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600년 된 은행나무, 그 옆에 벼락을 맞아 고사목으로 남은 은행나무도 나란히 서 있다. 악동들의 예절체험학습이 진행되는 관가정은 99칸의 거대한 규모였다. 여전히 높은 곳에서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며, 땅과 하늘 그리고 인간세상의 우주진리를 담은 건축구조는 해설사의 입을 통해 생생히 살아난다.
관가정 후문으로 나서면 집 뒤쪽에 붉은색으로 도배를 한 사당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상을 섬기는 정신은 양동마을 고택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쪽문을 나서 동북방향 건너편에 여강 이씨의 종택 향단이 우람한 규모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문인화 등의 체험행사가 진행되는 영귀정은 이언적 선생이 공부하던 곳으로 전한다. 설천정사를 지나는 돌담길에는 줄장미가 너울지고, 비비추가 꽃대를 길게 내밀고 있다. 봉선화, 초롱꽃이 불을 밝히는 골목길을 지나면 이언적 선생이 별채로 지은 무첨당이 나타난다. 왼편의 지붕은 날렵하게 끝이 하늘로 치솟은 맞배지붕이고, 오른편은 향사를 담당하는 엄숙한 사당의 형식으로 두 가지 형식이 혼재한 건축이다. 오래된 건축인만큼 처마에는 여러 현판이 걸렸다. 안쪽에 흥선 대원군이 대나무 뿌리로 쓴 '좌해금서'라는 현판이 눈길을 끈다.
무첨당을 돌아 다시 오르막의 언덕에 자리한 서백당은 양동마을의 입향조 손소가 지은 경주 손씨의 종가집이다. 우리나라 종가집 중에서도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으로 손꼽힌다. 하루에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뜻을 가진 현판이 눈길을 끈다. 양동마을을 있게 한 고택이다. 서백당의 집터를 잡아준 풍수가 "설창산은 집의 혈맥이 응집된 이 터에서 세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 예언했다. 서백당에서 손중돈, 이언적이 태어났다. 아직 위대한 한 사람이 더 태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동마을 녹색길
양동마을의 안길은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토담으로 연결된 조화를 이루면서 누구나 고향마을의 정취를 느끼는 편안함을 준다. 녹색길 동쪽도 서쪽의 양반길과 같이 나무로 지은 목재건물과 단층으로 된 구조가 부담스럽지 않은 고택이 즐비하다. 집들은 서당과 정자, 고택으로 꾸며졌지만 지금도 마을사람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 집이어서 더욱 정겨움을 준다. 오래된 집들은 모두 서당과 서원 같은 교육기능을 담당하거나 삶을 영위했던 흔적이 묻어 있는 고택들로 남아 있다.
-안락정은 양동마을 입구 동쪽 언덕에 위치해 있다. 마루에서 안강들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안락정은 경주 손씨 문중의 서당으로 여강 이씨 문중의 서당 강학당과 함께 양동마을에서 쌍벽을 이루는 서당이다.

-심수정은 마음을 고요한 물과 같이 가지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양동마을에서 남은 정자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이다. 낮은 위치에 있지만 앞마당을 나와 서남쪽으로 보이는 마을 전경이 좋다. 마당에 오래된 향나무가 용트림하듯 하늘로 치솟는 형상을 하고 있어 건축물의 기품을 높여준다.
-영당과 재실은 동쪽 언덕의 두곡고택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영당은 수졸당 이의잠의 영정을 모신 건축물이다. 경상도 하양현에 1636년 세웠던 것을 1883년에 지금 위치로 옮겨지었다. 이의잠이 하양현감으로 재직할 때 선정을 베푼 데 대한 보답으로 현민들이 사당을 지었다. 영당과 두곡고택으로 오르는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우물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동호정은 이언적의 넷째 손자인 이의잠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16년에 지은 집이다. 동호는 이의잠의 별호다. 두곡고택과 영당의 재실 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오르막길을 오르면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옥산서원과 독락당
옥산서원은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도 건재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사적 제154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도산서원, 덕천서원과 함께 영남 3대 서원으로 손꼽힌다. 옥산서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옥산서원과 독락당에는 이언적이 쓰던 벼루와 연수병, 중금, 옥관자, 서각품대, 각품대, 유서통 등의 유품들이 있다. 보물 중종유지, 인종유지, 경상도관찰사유서, 이륜행실도, 황화집, 구인록, 봉선잡의, 중용구경연의, 속대학혹문, 삼국사기 등이 전하고 있다.

이언적은 중종 27년(1532년) 김안로의 서용을 반대하다가 그들 일당의 탄핵을 받고 경주로 내려와 안강 자옥산 계곡 독락당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학문에 침잠했다. 공은 독락당 주변의 자연풍취에 대해 사산오대(四山五臺)를 명명했다. 자옥산과 도덕산, 화개산, 무학산, 그리고 탁영대, 징심대, 관어대, 영귀대, 세심대 등이다. 세심대(洗心臺)는 옥산서원과 독락당 사이로 흐르는 자계천 개울에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너럭바위에 이름이 지금까지 새겨져 있다. '세심대'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씨는 이언적의 성리학을 이어받은 퇴계 이황이 쓴 것이다. 독락당 정면에 걸린 편액 '옥산정사'의 글도 퇴계 이황이 썼다. 이황의 흔적은 옥산서원과 독락당에 많이 남아 있다.
독락당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물이 계정이다. 작은 규모의 정자로 지어졌지만 누각에 앉으면 활짝 열린 계곡의 그림 같은 전경이 시야로 와락 안긴다. 자연과 절묘한 공간을 연출해 계곡의 물이 흐르는 바위에 앉은 느낌이 들게 하는 공간으로 이언적이 학문을 하다 잠시 쉬는 곳으로 활용했던 대표적인 정자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역사문화도시 경주를 소개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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