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사에 입힌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웅장한 선율[이 남자의 클래식]

2025. 7. 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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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메네오’
사육제 시즌 위해 제작된 곡
모든 음악적 역량 담은 걸작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괴로움
고난도의 기교와 표현력 구현

베토벤이 ‘어떻게 하면 더 위대해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던 작곡가였다면 모차르트는 ‘아, 어떻게 사람들을 더 재밌게 해 주지?’ 하고 고민했던 작곡가였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재치와 유머로 넘쳐난다. 불현듯 등장하는 뜻밖의 화성과 익살스러운 리듬은 듣는 이로 하여금 광대를 들어 올리게 하고 간질거리는 선율들은 부지불식간 기다란 미소를 머금게 한다.

대표적으로 흔히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라 꼽히는 작품들이 그렇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 ‘돈 조반니’ 세 편 모두 내용 면이나 음악적인 면에 있어 가볍고 경쾌한, 희극적 성격을 띠는 오페라 부파(buffa) 작품들이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에도 매우 진지한 성격의 오페라 세리아(seria) 작품도 있다. 바로 모차르트가 24세이던 해에 작곡한 오페라 ‘이도메네오’(Idomeneo, re di Creta K. 366)다.

1779년 1월 17일, 23세의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의 직책이 요구받는 업무란 것이 하나같이 모두 지루하고 따분한 것들뿐이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매일같이 콜로레도 대주교가 의뢰하는 작품들을 마치 하인 신분의 가내 수공업자처럼 기계적으로 써 내려 가야만 했다.

모차르트와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콜로레도의 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히에로니무스 콜로레도는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이자 영주 역할까지 맡은 통치자로, 한마디로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는 뿌리 깊은 계몽주의자로 허례허식을 배척하고 효율을 중시했던 인물이었는데 그의 귀엔 모차르트의 음악도 요란스럽기만 한 허식이었다. 모차르트가 장대하고 화려한 미사곡이라도 작곡할라치면 콜로레도 대주교는 손사래를 치며 대신 소박하고 담백한 작품들로 변경할 것을 명했다. 잘츠부르크에 있던 오페라 극장은 비효율성과 경비 절감을 이유로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였다.

그저 궁정 예배와 연회만을 위해 소박한 작품들만 작곡해야 한다는 사실은 음악사뿐만 아니라 인류사를 통틀어 최고의 천재라 평가받는 모차르트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그러던 1780년, 모차르트에게 뮌헨 궁정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하나 날아든다. 바로 사육제(carnival) 시즌을 위한 진지한 내용의 오페라 ‘이도메네오’ 작곡 의뢰였다. 모차르트는 이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예감했다. 웅장하고 규모가 큰 걸작 오페라를 완성해 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독한 음악애호가인 뮌헨의 선제후 카를 테오도어의 눈에 들어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잘츠부르크를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차르트는 곧장 ‘이도메네오’의 대본을 극작가 바티스타 바레스코에게 맡겨 각색 작업을 마친 뒤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모든 음악적 역량을 이 작품에 쏟아붓기로 결심한다. 말하듯 노래하는 서창(레치타티보) 부분에 관현악 반주를 더해 극적 긴장감을 더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 파트의 비중도 높여 웅장함을 더했다. 이는 그간 관행처럼 이어져 왔던 성악가의 독창에 의존하는 오페라들과는 달리 그간 등한시됐던 부분들에까지 생명력을 더함으로써 이전과는 비교되는 극적 효과와 사운드를 구현해 낸 것이다.

1781년 1월 29일 뮌헨에서 초연된 ‘이도메네오’는 대성공을 거둔다. 그로부터 다섯 달 뒤인 1781년 6월, 모차르트는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꿈을 품고 콜로레도 대주교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잘츠부르크를 떠나 완전히 빈으로 이주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저자

■ 추천곡 들여다보기

오페라 ‘이도메네오’ 중 아리아 ‘바다 밖으로’는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가 전쟁에서 이긴 후 적국 트로이 공주 일리아를 대동하고 귀환하는 중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는 이야기다. 이도메네오는 신께 기도하며 무사히 귀환하면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첫 대면자는 바로 자신의 아들 이다만테.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만 하는 괴로움을 노래하는 테너의 아리아로 고난도의 기교와 표현력이 요구되는 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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