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人터뷰] 외면해온 지구의 모습을 카메라로 드러내다 | 전원생활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7월호 기사입니다.

1999년 KBS에서 첫 방영한 <환경스페셜>은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자연다큐멘터리다(현재는 휴식기 중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은 매우 크다.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가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치 않게 외면해온 지구 곳곳의 환경문제를 간접적으로나마 목격한다. 그 뒤엔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전 세계 현장을 누비는 환경 PD의 노고가 있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김가람 PD의 연출작이다. 최근 그가 <환경스페셜> 취재기를 엮어 기후 위기 르포 <우리가 말하지 않는 지구>를 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메라 가방을 든 채 나타난 김 PD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났다.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쓰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는데, 그러면 플라스틱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왜 지구의 입장만 고려하나 싶었어요.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까 하는 회의도 있었죠. 물건을 살 때 세금 내는 걸로 이미 제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건강 정보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 촬영 중 방문하게 된 충북 청주의 한 ‘암마을’에서 생각이 바뀐다.
“암마을은 소각장 등 주변 환경문제로 인해 주민 다수가 암에 걸린 곳이에요. 그곳 주민이 휴대폰으로 영상 하나를 보여줬어요. 소각장에선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각종 유해 물질로 인해 그 색깔이 핑크색 인 거예요.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어요.”
내가 버렸을지도 모를 쓰레기가 외진 시골에 와 소각되고,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그러면서 김 PD는 남의 일로 치부했던 환경문제를 비로소 나의 일로 느꼈다. 마침 회사에서 8년 만에 <환경스페셜>이 부활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해서 해당 프로그램을 맡았다.
“우연히 해외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사진 한 장을 봤어요. 헌 옷이 켜켜이 쌓인 언덕 위에서 소들이 풀 대신 합성섬유를 먹고 있었어요. 사진을 찍은 환경단체에 곧바로 이메일을 보냈어요. 한국에서 온 헌 옷도 있는지 궁금하다고요.”
얼마 뒤 “‘Made in Korea’가 적힌 포대를 매주 본다”는 답변이 왔다. 김씨는 헌옷 수거함에 옷을 넣으면, 옷이 어딘가에서 소각되거나, 누군가 고맙게 입을 줄 알았다. 모든 옷이 그런 게 아니었다. 익숙한 의류 폐기물 문제이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어 제작에 착수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PD 한 명이 한 회차를 만든다. 상의할 사람 하나 없이 혼자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할 때라 직접 해외로 나가 촬영하는 게 어려웠어요. 화상으로 현지인들과 미팅하며 촬영 내용을 기획했고, 해외 촬영은 현지에서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분께 맡겼어요.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나라이다 보니, 2000개가 넘는 동영상을 전달받는 것도 일이더라고요. 마감하는 날까지 동영상이 도착했어요.”
프로그램에서는 한강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 7종 가운데 반 이상이 옷의 원료인 합성섬유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또한 정부 기관에 공문을 보내고, 거절당하는 시간을 버티며 건져낸 내용이다. 고된 제작 과정을 버틴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시청자들이 과거의 저처럼 환경문제를 남의 일로느끼지 않기를 바랐어요. 우리가 악의 없이 한 행동이 누군가의 삶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려면 색다른 그림과 탄탄한 설득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심이 깃든 노력은 티가 나는 법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실시간으로 시청자 반응이 올라왔다. 한 패스트패션 기업에서 이 영상을 직원 교육자료로 쓰고 싶다는 연락도 왔다.
“‘패스트패션 등 관련 업계 종사자와 소비자들이 봤을 때 프로그램이 허술하지 않고, 문제의식이 생길 만큼 설득력이 있었구나’라는 생각만으로도 보람찼어요.”
“콩고민주공화국에선 어린 아이들이 보호 장비도 없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 배터리 원료인 코발트를 채굴해요. 그 모습을 보며 ‘분량이 나오겠는데’ 하며 방송을 먼저 생각하는 저를 발견할 때도 있어요. 누군가의 고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에게 괴로움을 느낀 적도 많아요.”

그의 프로그램과 책을 접하고 나면, 누구든 지구를 위해 나서고 싶어질 것이다.
“세계에서 만난 환경운동가들에게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뭘지 물어보면, 각자 좋아하는 물건을 만드는 곳에 메일부터 보내라고 해요. 예로 들어 애플 사에 코발트를 채굴하며 자행되는 ‘아동 노동 착취 문제를 알고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죠. 메일이 1통일 땐 힘이 없지만, 100통, 1000통이 되면 기업들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카페에서 만난 김 PD는 익숙한 듯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냈다. 회사 내에서 패셔니스타로 불리며 열심히 일하고 소비하는 낙으로 살던 그가 이제 쉽게 물건을 사지 않는 사람이 됐다.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최근 차도 없앴다. 개인적인 이유로 현재는 현장에 안 나가지만, 다시 현장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단다.
“유튜브, 1인 미디어 등이 생겨 다매체 다채널의 시대가 됐어요. 그럼에도 핑크색 연기가 20년간 나던 청주의 소각장처럼 뉴스가 되지 않는 곳들이 있어요. 이처럼 주목받지 못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환경 이야기를 계속 전달하고 싶어요.”
글 윤혜준 기자 | 사진 고승범(사진가), 김가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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