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뒤, 132억 광년 건너편의 '아기 블랙홀' [천문학자와 함께하는 우주 여행 ]
편집자주
오늘날 우주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즐길 수 있는 감상의 대상이다. 우주는 인간이 창조한 예술작품과 자연이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보다 더욱 아름답고 신기한 천체들로 가득하다. 여러분을 다양한 우주로 안내할 예정이다.
은하수 중심, 쪽배 대신 블랙홀
X선 관측으로 찾은 아기 블랙홀
블랙홀 성장 경로도 확인 가능

유명한 동요 반달의 가사는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 은하수 중심부에는 하얀 쪽배 대신에 신비의 천체 블랙홀이 살고 있다. 사진 1은 은하수 중심부를 적외선 망원경과 엑스선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오른쪽 위의 작은 네모는 은하수 중심부의 작은 영역을 확대한 전파 사진이다. 이 전파 사진에서 노란 고리 모양의 가운데 검게 보이는 곳에 블랙홀이 있다.
은하수 블랙홀은 태양보다 400만 배나 무거운 초중량(supermassive) 블랙홀이며, 나이가 130억 년이 넘는 매우 늙은 블랙홀이다. 이 블랙홀은 인류가 비교적 가까운 거리 (2만7,000광년)에서 가장 자세히 연구할 수 있는 블랙홀이다. 이런 무거운 블랙홀은 언제 태어났을까. 태어날 때부터 무거웠을까, 아니면 가볍게 태어난 후 자라면서 많이 무거워졌을까. 또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것은 일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단서가 최근에 발견되었다.

사진 2는 우주 연구의 마법을 보여준다. 지구에서 35억 광년 떨어진 판도라 은하단의 모습을 제임스웹망원경으로 찍은 적외선 사진이다. 긴 스파이크 여러 개가 뻗어나오는 밝은 천체는 우리 은하에 있는 별이고, 나머지 천체의 대부분은 은하들이다. 은하들은 매우 멀리 있지만 은하 안에 별이 많이 몰려있고, 이 별에서 빛이 나오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볼 수 있다.
이 사진 위에 찬드라 엑스선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라색으로 합성했다. 보라색이 잘 보이는 곳은 엑스선이 많이 나오는 곳을 나타낸다. 보라색 사진을 보면 가운데 커다란 덩어리가 있고, 오른쪽에 작은 덩어리가 보인다. 엑스선은 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도가 100만 도가 넘는 매우 뜨거운 기체에서 나온다. 은하단은 많은 수의 은하뿐만 아니라 대량의 뜨거운 기체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가운데 있는 작은 네모를 확대한 사진이 왼쪽 위에 두 개 있다. 이 중 오른쪽은 적외선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의 작은 원 가운데 보일까말까할 정도로 작고 어두운 천체가 있다. 이 천체는 은하이며 붉은빛을 띠고 있다. 왼쪽 엑스선 사진의 작은 원 가운데에는 같은 위치에 보라색으로 훨씬 밝게 보이는 천체가 있다.
두 사진으로부터 이 어두운 천체에는 뜨거운 기체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질이 블랙홀로 빠른 속도로 떨어지며 돌 때 엑스선을 많이 방출한다. 그러므로 이 엑스선 사진은 이 은하가 어둡고 작게 보이지만, 그 중심부에 무거운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블랙홀의 이름은 UHZ1이며 태양보다 4,000만 배나 무겁다. 가까운 은하에서는 블랙홀의 질량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할 정도로 작다. 그런데 이 은하에서는 블랙홀의 질량이 별의 총 질량과 비슷할 정도이다.
이 블랙홀은 판도라 은하단의 가족이 아니라 판도라 상자 뒤에 훨씬 멀리 떨어져 있다. 판도라 은하단은 35억 광년의 거리에 있는데, 이 블랙홀은 무려 132억 광년의 거리에 있어 네 배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렇게 멀리 있는 블랙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판도라 은하단이 중력렌즈라는 현상을 통해 돋보기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블랙홀은 현재까지 엑스선망원경으로 발견한 블랙홀 중에 가장 멀리 있는 블랙홀이다.
이 블랙홀 사진은 우주 탄생 이후 5억 년가량 지난 뒤의 모습이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므로 이 블랙홀은 사람으로 치면 아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아기 블랙홀은 은하수에 있는 늙은 블랙홀보다 10배나 무겁다. 무거운 블랙홀이 우주 초기에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부터 무거운 아기로 태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태어난 후 매우 빠른 속도로 자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에 천문학자들이 알고 있던 이론과 매우 다르며, 이로써 근원적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무거운 블랙홀이 어떻게 빠른 속도로 자랄 수 있는지 밝히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다.
판도라 상자 뒤에 숨어 있는 아기 블랙홀을 엑스선망원경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은 병원에서 우리 신체 내부의 문제를 찾아낼 때 엑스선 촬영을 한다. 엑스선 사진을 보면 바깥에서 볼 수 없었던 문제점을 잘 볼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천문학자들은 보통의 망원경으로 볼 수 없었던 아기 블랙홀을 엑스선 촬영을 통해 찾아낸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다양한 망원경으로 보여주는 천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있다.
이명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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