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역사를 쓰려거든

임승주 방송작가 2025. 7. 1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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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모든 것을 품고 기억하며 별빛이 일렁이는 내일을 소망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모여 별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4.3사건 당시 피신처로 활용됐던 동굴을 모티브로 해 일부러 전시실을 어둡게 만든 것이나, 희생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어있었는지 실물 크기로 부조를 만들어 둔 것, 갓난아기부터 어르신까지 벽면 가득 희생자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 등이 찌르듯 아프면서도 역사가 체화되는 듯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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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없이 은유로 꾸민 민주주의전당
역사 전하는 언어, 정확하고 용감하기를

'바다는 모든 것을 품고 기억하며 별빛이 일렁이는 내일을 소망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모여 별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구조적으로 크게 흠잡을 데 없는 문장이다. 일견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문장이 있는 장소를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민주주의전당)이 임시 개관한 직후 곧바로 '부실 전시' 지적이 나왔다. 궁금해진 나와 동료는 직접 가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쪼개 간 거라 '다 못 보면 어떡하지' 싶었다. 민주주의전당이니까, 적어도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는 다 나와 있을 테니까, 한두 시간 안에 다 볼 수 있을까 싶었던 거였다. 막상 가보니 기우였다. 3층 상설전시실에 3.15의거, 부마민주항쟁, 6.10민주항쟁 역사가 기록돼 있었지만 '이게 다야?' 싶을 만큼 각 사건에 대한 기록이 짧고 얕았다.

무엇보다 실제 관련 기록물이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 의아했다. 기사, 사진, 부상자와 사망자 명단…. 전당이 고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바로 옆에 문을 열었음에도, 열사가 어떻게 희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참혹한 사진 한 장 전시실에 없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함께 둘러보던 이들 중 여럿이 '제주 4.3평화기념관에 비해 아쉽다'는 말을 꺼냈다. 4.3사건 당시 피신처로 활용됐던 동굴을 모티브로 해 일부러 전시실을 어둡게 만든 것이나, 희생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어있었는지 실물 크기로 부조를 만들어 둔 것, 갓난아기부터 어르신까지 벽면 가득 희생자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 등이 찌르듯 아프면서도 역사가 체화되는 듯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났다.

그에 비해 민주주의전당은 꾸밈이 많았다.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가 일부러 분칠할 정도로 결코 속이 비지 않았는데, 사실을 덜어내고 잘라내다 보니 괜한 수사만 많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답답했던 지점은, 있는 그대로 전해져야 할 역사가 은유의 언어로 덮여 힘을 잃고 있다는 점이었다.

3.15의거를 '간절하게 길을 찾는 별', 부마민주항쟁은 '다시 드리운 어둠을 밝힌 별', 6.10민주항쟁은 '일렁이는 밤하늘의 은하수'…. 시적 표현이 나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피로 쓴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를 설명하는 언어라면 질문이 달라진다. 경찰의 최루탄에 희생된 열일곱 살 소년의 고통스러운 생애에 '간절하게 길을 찾는 별'이라는 수사가 과연 적합한가.

한강 작가는 13살에 아버지가 건넨 사진첩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보았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썼다. 어떤 역사를 최종적으로 아름답고 대단하다고 느끼게 하는 데는 알맹이 없는 은유나 수사가 아닌, 역사를 바로 보는 태도, 그리고 정확한 사실 적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전당은 여전히 방문객을 받고 있다. 경상남도와 창원시 공식 블로그에서는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을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당 내 도서관 등 열린 공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 있다 지적받은 지역특화전시실을 '지역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전시가 인상 깊었어요'라고 홍보하는 건 너무 가볍지 싶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찾게 될 장소이니만큼, 민주주의전당의 언어가 보다 정확하고 용감하기를 빈다.

/임승주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