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나와 어머니가 친 ‘뒷북’의 역사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2025. 7. 1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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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수술 다음 날에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졌다
깁스를 하든 암에 걸리든 아들부터 걱정한 어머니
“왜 나한테 말을 안 했는데!” 아들은 한탄만 한다
일러스트=박상훈

“왜 나한테 말을 안 했는데? 나한테 일찍 말만 해줬어도!”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내다가 말문이 막힌다. 저 사람은 산책을 하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다. 깁스를 하고 몇 주간 병원에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며칠이 지난 후에 알았다. 나는 그게 너무 속상해서 화를 낸다. 왜 나한테 일찍 말하지 않았냐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거기까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런 나도 며칠 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저 사람과 통화하면 분명 내 목소리를 듣고 아픈 것을 알아챌 것이다. ‘아픈데 왜 일찍 말하지 않았냐’며 고래고래 소리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바쁜 척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사람은 나보다 아팠다.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전화하지 않았다. 그게 너무 미안하고 화가 났다. 저 사람은 바로 우리 어머니다. 나는 이번에도 ‘뒷북’을 쳤다.

나와 어머니의 ‘뒷북 역사’는 오래되었다. 20년 전,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집이 아니라 학교로 갔다. 동아리 사람들이 여름 정기 공연으로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군대에 있는 내내 연극 생각이 간절했다. 제대하자마자 연습에 참여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여러 사정으로 아주 먼 곳에 홀로 떨어져 살고 있었다. 너무 멀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가기가 힘들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당시에 집 사정이 어려워서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힘들었다. 새 학기가 될 때마다 난처한 통화를 하기가 싫었다. 군대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돈을 벌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휴학했다. 어머니에게는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안 내도 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제 전역을 했으니 어머니와 통화하면 다시 학교를 다니라고 할 것이고, 또다시 등록금 문제로 서로가 난처해질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친구들과 극단 창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연극을 하겠다는 말을 아직은 꺼낼 수가 없었다. 망설임이 계속되다 보니 쉽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이상한 것은 제대했는데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내가 먼저 전화했다. 어머니는 계속 망설이다가 너무 놀라지 말라며 얘기했다. 내가 제대하기 전부터 속이 안 좋아서 검사를 받았는데 위암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곧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알면 걱정할까 봐 전화를 못 했다고 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울분이 터져 나왔다. “왜 나한테 말을 안 했는데? 나한테 일찍 말만 해줬어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갓 제대한 20대였고, 어머니의 수술비에 보탬이 될 수 없었다. 밤새도록 머리를 쥐어뜯다가 새벽 기차로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투병 중인 어머니는 그새 몸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눈에는 내가 마른 것만 보였고, 어머니 입에서는 오직 내 복학 얘기만 나왔다. 나는 애꿎은 천장만 올려다보며 답 없는 한숨만 내쉬었다.

이후 어머니는 수술을 받았다. 나는 고민 끝에 곧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빈손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며칠 동안 학생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서 몇 만원이라도 모았다. 꽃을 사 들고 병원에 갔는데 어머니가 자리에 없었다. 심장이 철렁했다. “어머니가 어디 갔느냐”고 소리 질렀다. 간호사가 놀라지 말라며 말했다. “어머니는 수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다음 날 아침부터 스스로 일어나서 산책을 나가셨다”고 했다. 빨리 회복해야 건강해지고, 빨리 건강해져야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병원을 거쳐간 환자 중에서 수술 다음 날 바로 산책을 나간 사람은 우리 어머니가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한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또 ‘뒷북’을 친 느낌이었다.

꽃을 침대에 내려놓고 어머니를 찾으러 나갔다. 어머니는 한 손에 링거를 꽂은 채로, ‘ㅁ’ 자로 된 병원 로비를 아주 느리지만, 절대로 멈추지 않으며 한 바퀴씩 돌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뱃속에서 올라오는 어떤 울컥한 감정을 한참 동안 억누르다가, 화가 난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가며 소리쳤다. “여긴 또 언제 나왔어? 한참 찾았잖아! 왜 나한테 말을 안 했는데? 나한테 일찍 말만 해줬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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