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23] 히틀러의 ‘초현실 소설’

나는 1925년 7월 17일 뮌헨의 한 맥주홀 뷔르거브로이켈러에 앉아 있다. 바로 이 자리에서 1923년 11월 8일 저녁, 아돌프 히틀러는 이른바 ‘뮌헨 폭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일인 18일,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이 출판사 프란츠 에어(Franz Eher)에서 발간된다.
뮌헨 폭동 실패 뒤 히틀러는 체포·구속돼 재판을 받고 란츠베르크 요새에 고작 9개월간 수감된다. 그 기간 ‘간수들의 배려’로 나치 측근 루돌프 헤스가 옆방에 배치됐다. 그로 하여금 예수님 말씀 제자가 받아 쓰듯 하게 해 나온 ‘검은 성경’이 바로 ’나의 투쟁’이다.
히틀러가 중형을 면할 수 있었던 건 바이마르 공화국의 판사들이 히틀러에게 동조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재판정을 연설 무대로 만들었고, 판사들은 이를 저지하기는커녕 손뼉 치는 방청객들과 함께 즐거워했다. 히틀러가 ‘나치즘의 검은 예수’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제3제국의 독일인 국민들이 아돌프 히틀러를 기다렸고, 기사회생시켰고, 선택했고, 숭배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순진한 독일인들을 타락시켰다는 주장은 실증적으로, 학문적으로 폐기된 지 오래다.
당시 독일과 유럽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한 뒤 읽어보면, ‘나의 투쟁’만큼 흥미로운 소설도 드물다. 유튜브에서 나치 시대 독일 군중과 히틀러 사이의 환호와 환희를 보면 저게 픽션 대작 영화가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초현실적’이다. 아직도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 대해 입도 뻥끗 안 하는 남한의 민주주의자들이 있다면 히틀러와 독일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비웃기만 하기도 어렵다.
이 책에 대해 유럽에서는 아직도 예민해 비판적 주석, 비판적 해설이 달리지 않으면 금서(禁書) 수준이다. 솔직히 얼굴이 화끈거리기로는, 또 거짓말의 강도로 친다면 한국 정치인들이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출간하곤 하는 자서전도 만만치 않다. 자신 안에 갇혀 있을 적에는 자신이 이상한 것을 모르는 게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많이 모일수록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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