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 BIKY'가 던지는 영화제의 새로운 의미

올해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은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usan International Kids & Youth Film Festival·BIKY)는 위기 속에서도 축제를 멈추지 않았다. 국비 지원 탈락이라는 혹독한 현실 앞에서도 영화제는 새로운 도전을 나섰다.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15일 문을 연 'WEST BIKY'다. 이름처럼 부산 서부권으로 영화제의 지평을 확장한 이 시도는 단순한 지역 분산형 행사를 넘어, 영화제가 품어야 할 철학적 가치와 시대적 소명을 함께 담아냈다.
BIKY는 지난 20년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청소년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화진흥위원회의 국비 지원에서 배제되며 존립의 위기를 맞았다. 이는 단순한 예산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이청소년영화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현정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위기는 곧 기회"였다. 사하구·강서구 등 서부산의 WEST BIKY는 그런 절체절명의 각오에서 비롯됐다. 8일 BIKY 본영화제의 개막으로부터 시작된 열기를 고스란히 이어간 사하구의 개막식은 물론, 오는 19일 롯데시네마 부산 명지에서 열리는 강서구의 폐막 행사까지, 모든 프로그램은 지역과 영화, 그리고 세대 간의 진정한 연결을 꿈꾼다. WEST BIKY는 오치훈 BIKY이사장의 제안으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국보 부산시의원의 5분 자유발언이 WEST BIKY 개막일에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부산의 미래"라고 선언하며, 아이들의 놀 권리와 소리의 가치를 다시 조명했다. 이 발언은 단순히 교육 공간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을 요구하는 제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인지에 대한 문화적 선택의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BIKY는 영화로 답하고 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보호만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창작하고, 표현할 수 있는 문화의 동력이다. 지난 13일 열린 BIKY 시상식에 앞서 12일 'AI 시네마 상영전' 에선 고등학생 감독들이 만든 AI 단편 영화들이 선보였고, '가면의 사회', '피에리-빌런 아카데미' 같은 작품은 창의성의 수준을 넘어 '기술과 감성의 미래'까지 묻는 깊이를 담았다.
BIKY는 10회 때부터 슬로건으로 '달라도 좋아'를 내세워왔다. 올해 새로 제작한 로고는 바로 이 정신을 시각화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것들이 어울려 하나가 되는 순간. 그 순간을 가능케 하는 힘은 바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며, 이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가장 강력한 감화력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곳이 바로 WEST BIKY다. 영화제는 이번 WEST BIKY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이 만든 작품 7편을 상영하는 한편, 국내외 7편의 어린이·청소년 영화들을 지역 주민에게 무료로 공개한다. 손주를 데리고 극장을 찾겠다는 택시 기사 할아버지의 말처럼, 이 영화제는 가족 단위 관객을 품으며 세대를 아우르는 공존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어린이청소년영화제'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한 문화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의 소리와 존재는 너무도 쉽게 소외된다. 놀이터는 금지의 공간이 되고, 아이들의 소리는 소음으로 전락한다. BIKY는 바로 그 침묵의 시간을 영화로 되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놀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영화는 아이들의 놀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제가 바로 BIKY이고, 올해의 실험장이자 승부수는 WEST BIKY다. 사하구와 강서구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번 행사는 영화제를 단순한 상영회가 아닌 '놀이의 축제'로 승화시키려는 시도다. 19일 오후 1시 30분부터 시작되는 5편의 상영작과 맑은바람상 12, 15, 18 수상작을 상영하는 오후 5시 30분 폐막식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잊지 못할 영화적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비키는 더 이상 부산만의 영화제가 아니다. 그것은 영화산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실험실이고, 기술과 감수성의 접점을 모색하는 교육장이며, 가족과 세대가 함께하는 유일한 문화의 장이다. 국비 지원 부재는 영화진흥 정책이 과연 미래를 향하고 있는지를 반문하게 만든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어린이청소년영화제를 후순위로 미룰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이번 영화제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며, 다음 20년을 위한 새로운 시작에 마음을 보탠다. BIKY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은, 이 도시에 여전히 가장 진실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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