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런 걸 사요] 나는 무엇에 치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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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촬영용 원단을 찾으러 동대문에 다니며 배웠다. 소규모 원단은 전문 매장에선 안 판다. 곳곳에 자투리 원단만 파는 매장이 있다. 주말에만 여는 땡처리 원단 매장에선 더 싸다. 거기서는 모든 원단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야드에 천원. 원단계의 '매드 맥스'같은 이야기 아닌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이 매장은 주소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위치 설명은 남평화상가 1번 게이트 근처 정도다. 남평화상가는 새벽시장 위주라 주말 오전엔 문을 닫는다. 평소엔 빈 골목이어야 할 그 곳에 온갖 원단이 롤 단위로 깔려 있다. 지퍼나 레이스 등 부자재는 종이 박스 안에 들어 있다. 가격은 뭐든 1야드에 천원. 진짜였다.
요즘 안목이나 취향같은 말이 많이 도는데 진짜 안목은 여기서 가려질 것 같다. 원단엔 어떤 설명도 없다. 스트라이프 원단에 면과 나일론 혼용률은 어느 정도인지, 이 데님 원단이 생지인지 워싱을 돌렸는지. 허리춤의 힙색에 천원짜리를 가득 넣어둔 사장님께 원단에 대해 물어도 답은 늘 똑같다. 난 몰라. 그냥 파는 거야. 원단의 무덤 속에서 보물을 찾아낼 도구는 말 그대로 자신의 눈과 손뿐이다.
내가 아는 서울의 가게 중 가장 기묘한 곳일 이곳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일단 실질적 쓸모가 있다. 특정 원단이 아니라 '튼튼한 식탁보 원단' '여름용 얇은 커튼' '찬장 한 켠 가려둘 천' 정도를 원한다면 여기만한 곳이 없다. 오히려 원단이 다양해서 좋고, 여름의 리넨과 겨울의 울 등 나름 계절에 맞춘 큐레이션도 있다. 나도 최근 또 갔다. 손님용 간이 테이블에 씌울 원단을 사러. 리넨이니 면이니 맘껏 사고 2만원 드리고 왔다.

무엇보다 나는 이곳에 갈 때마다 압도되곤 한다. 삶의 와일드함 자체에. 천원짜리 원단을 파는 곳인데도 이곳은 늘 활기차고 시끄럽다. 이거 있냐, 더 달라, 깎아달라, 1야드도 안 되는데 이거 그냥 주면 안 되냐, 안 된다… 그 목소리 사이에서 생각하곤 한다. 나는 최근 무엇에 치열했나. 왜 치열했나.
원단을 사고 서울에서 가장 아방가르드한 건축물인 DDP를 지나쳐 지하철역으로 돌아간다. DDP에는 고급 브랜드 전시가 끝없이 열린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원단 땡처리 가게가 있는 걸 알까. 대도시의 여러 겹겹 사이 내 근처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설명하긴 어려워도 핑계 대지 말고 정신 차리고 살자는 생각이 든다.
박찬용 작가 프리랜스 에디터. 다양한 매체를 거쳐 남성지 <아레나옴므플러스>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단행본 <요즘 브랜드> <잡지의 사생활> <모던 키친>등을 냈고 202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박찬용의 집'을 출품했다. 현재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김지은 기자 a05190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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