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방화수류정’ 현판

수원화성의 보석, 방화수류정(보물 제1709호)의 현판 원본이 발견됐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에 반가운 소식이다.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 문중의 유물 전시를 찾은 수원화성박물관 김세영 학예연구사의 안목 덕분이다. 1794년 완공된 화성 누각에 정조의 명으로 당대의 명필 조윤형이 쓴 ‘방화수류정’ 현판의 원형 탁본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김 학예사가 이를 확인해 주자, 소장자는 뜻밖의 낭보를 조선일보에 알려 15일 세상에 드러났다.
김 학예사의 고증은 확실해 보인다. 1920년대 사진 속 방화수류정의 원형 현판과 발견된 탁본의 서체가 문외한이 보기에도 일치한다. 현재의 ‘방화수류정’ 현판은 1956년 서예가 김기승이 쓴 서체인데, 조윤형의 원본 서체가 훨씬 남성적이다. 본래 군사지휘소인 방화수류정 본연의 기능이 서체로도 확연하다.
화성 성곽의 11개 건축물 중 팔달문, 화성남문루상량문, 화홍문만 원본 현판을 간직하고 있다. 정조가 친필을 남긴 ‘화성장대’와 ‘어제화성장대시문’ 현판도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했던 원본 서체를 복각해 복원한 원형이다. 문장을 사랑한 정조는 채제공 등 총신들에게 화성 건축물의 현판을 맡겨 치세의 역작을 빛냈지만, 대부분 유실됐다. 조윤형 서체의 원본 현판이 유실된 ‘장안문’은 1975년 조병규 경기도지사의 글씨를 서예가 양근웅이 덧대서 제작한 현판을 매달고 있다. ‘장안문’의 의미와 격이 달라졌을 테다.
수원화성은 원형을 증명하는 의궤 때문에 복원을 빙자한 창작과 왜곡이 불가능하다. 1994년 시작한 화성행궁 복원사업이 지난해 종료될 때까지 30년이나 걸린 이유다. 그래도 ‘원형’ 논란이 남는다. 복원한 행궁의 ‘유여택’ 앞마당에 해시계 앙부일구를 설치했지만, 2016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정리의궤엔 측우기가 선명하다.(2016년 7월7일자 1면 보도)
방화수류정 현판 원본 발견은 망실된 화성 문화유산 복원사에 큰 획을 그을 사건이다. 김 학예사의 고증은 박물관 소장 가치 검증에 한정된다. 현판 복원은 화성 관리와 복원의 주체인 수원시의 몫이다. 원형 복원에 이르려면 수원시 고증이 필요하다. 다행히 조윤형의 원본 현판인 ‘팔달문’이 남아있다. 김 학예사의 발견을 수원시가 권위 있는 고증으로 확정한다면 현판 복원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방화수류정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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