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약물 운전’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왜냐면]

한겨레 2025. 7. 1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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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경규씨(가운데)가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약물 운전 혐의와 관련된 조사를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창현 | 신천연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최근 방송인 이경규씨가 약물을 복용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차량을 자신의 차로 오인하여 운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약물 간이 시약 검사와 국립과학수사원 정밀 검사에서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는 도로교통법 위반(약물 운전)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되었다. 이씨는 10년 동안 공황장애를 앓아왔고 사고 전날에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교통법 제45조에서는 과로, 질병 또는 약물의 영향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약물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공황장애 치료제에서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면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되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항불안제일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다.

1950년대 처음 개발된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은 불안 및 공황발작 때 신속한 효과가 나타나 임상현장에서 자주 사용된다. 많은 환자들이 “이 약을 먹으면 바로 편해진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내성’의 위험이 있어 같은 용량으로는 이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장기 복용 때는 졸림, 인지 및 운동능력 저하, 우울, 무기력, 충동성, 수면 장애 등을 겪을 수 있다. 운전 중 사고 위험도 있을 수 있다. 의존성이 있어 갑자기 복용을 중단하면 금단 증상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 불안을 통제해야 할 증상으로만 바라본다면 약물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의료용 마약류 항불안제(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는 2020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분석 결과 전체 국민의 약 660만 명(12.7%)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7.85명 중 1명꼴이다. 사용 기간까지는 분석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인구가 이미 이 약에 노출된 셈이다. 정신건강의학과 뿐만 아니라 내과, 가정의학과, 요양병원 등 다양한 임상 영역에서 처방된다.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에는 디아제팜, 알프라졸람, 로라제팜, 클로나제팜 등이 속한다(이 약의 위험성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자낙스의 경고’에서도 살필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식약처(FDA)는 지난 2020년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에 대해 오용, 중독, 신체적 의존, 금단 증상 등의 위험을 강조하며, 포장재에 위험을 표기하는 ‘박스형 경고’ 조치를 시행했다. 임상 진료지침에서는 벤조디아제핀 처방을 위기 상황으로 제한하고, 복용 기간도 가급적 4주를 넘기지 않도록 권고한다. 캐나다·영국 등에서도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에 대해선 장기 처방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어서 4주 이상 처방하면 의사에게 경고 메시지가 뜬다. 벤조디아제핀은 의사가 환자에게 약의 장단점을 소상히 설명하고 복약 여부를 환자와 논의하는 ‘함께하는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 SDM)을 권장하는 약물이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약물에 대해 숙의하는 과정을 거치면 장기간 복용했더라도 서서히 줄여갈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초년 의사였던 지난 20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정신의학회 연례 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학회장에서 오간 최신 의학정보만큼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회의장 밖에서 모여 시위하던 수백명의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정신질환의 과잉 진단과 과잉 처방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시에는 ‘역시 다양성의 나라인 미국에선 여러 의견이 나오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진료하면서 약의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을 경험하는 다양한 환자를 만났다.

진료 현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짧은 진료 시간 속에서 약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생략될 경우가 많고, 환자의 불편과 고민은 진지하게 다뤄지지 못한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다른 과에 견줘 약 처방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은 편인데다, 뇌에 작용하는 정신과 약에 대한 환자의 반응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부작용 사이 균형을 잡지 못하면 환자가 더 고통받을 수 있다. 지난 2023년 의료인과 환자들이 모여 ‘함께하는 약 선택을 통한 회복 실천운동’(함약회)라는 모임을 만든 이유다.

미국 배우 메튜 페리는 우울증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중독성 약물 ‘케타민’의 과다 투여로 2023년에 사망했다. 20여년에 걸친 약물 중독의 시작은 제트스키 부상 이후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였다. 그가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았을 때 중독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중하게 약 사용을 결정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약물과 관련된 유명인들의 소식은 그저 해프닝으로 지나칠 연예 뉴스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 시대의 약물 사용에 대한 중요한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방송인의 약물 운전에 대한 뉴스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약의 효과와 부작용 모두를 살피는 신중한 약물 사용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의사와 환자가 이에 대한 소통을 진지하게 해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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