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학생의 3만원짜리 콩 한 봉지 [직언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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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사안이나 이슈에 대해서 정파적 진영 논리를 지양하며, 건전한 시민 사회가 공유하는 원칙과 상식, 합리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논평합니다.
영상 게시자는 "동네 골목에서 할머니가 좌판을 펴고 호박잎 같은 농작물을 판다. 지난 7일 한 학생이 다가가 얘기를 나누더니 어디 가서 돈을 바꿔오는 것 같았다. 원래는 돈만 드리고 가려던 것 같았는데 할머니가 뭐라고 하자 콩이 든 봉지를 들고 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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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핵심 사안이나 이슈에 대해서 정파적 진영 논리를 지양하며, 건전한 시민 사회가 공유하는 원칙과 상식, 합리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논평합니다.

최근 한 시민의 SNS 영상이 화젭니다. 경기도 동두천의 한 중학생이 폭염속에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에게 콩을 사는 모습이 담긴 영상입니다. 영상 게시자는 “동네 골목에서 할머니가 좌판을 펴고 호박잎 같은 농작물을 판다. 지난 7일 한 학생이 다가가 얘기를 나누더니 어디 가서 돈을 바꿔오는 것 같았다. 원래는 돈만 드리고 가려던 것 같았는데 할머니가 뭐라고 하자 콩이 든 봉지를 들고 갔다”고 했습니다.
이 영상은 현재 조회수 300여 만회를 기록중이라는군요. 117년만의 폭염으로 노동자 여러 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등 폭염고역이 이만저만 아니었지요.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7일 의정부 지역 최고기온은 33.5도 였습니다.
해당 영상의 주인공은 동두천중학교생 옥 모군(14)입니다. 당일 오후 3시께 귀가하던 중 할머니를 봤다지요. 잔돈이 없어 난감하던 옥 군은 어딘가로 가 돈을 바꿔와 3만원을 할머니께 건네며 뭔가 얘기를 나눈 뒤 콩 한 봉지를 들고 간 겁니다. 옥 군은 인터뷰에서 “날씨가 너무 더워 할머니께서 물건을 빨리 팔고 가서 쉬시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5만원권 지폐를 갖고 있었던 모양인데, 1만원짜리로 바꿔와 그 중 3만원을 드렸고, 할머니는 돈만 받을 수 없으니 콩이라도 들려보낸 것으로 여겨집니다. 옥 군 아버지는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다”며 “언론에 소개되자 장학금 얘기도 나오던데 아들의 행동을 퇴색시키는 것 같아 받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옥 군은 ‘빨리 팔고 들어가시라’는 뜻으로 청소년에게는 적지 않을 금액인 3만원을 드렸겠지요. 타인의 힘듦을 허투로 봐넘기지 않는 그 갸륵함에 뭉클해집니다. 살인 더위에도 재배한 푸성귀 들고나와 좌판을 펴야 하는 할머니, 수중에 가진 돈의 반 이상을 선뜻 건넨 청소년. 먹먹하고 뻐근합니다. 10만 명 중에 단 한 명, 저 청소년만 그런다고 해도 자랑스럽고 가슴이 고동칩니다. 연장자로서, 기성 세대 일원으로서 부끄럽습니다.
14세 청소년 얘기를 통해 이런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개개인의 선행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노인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게으르거나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닌데도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하고 아껴써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경제구조가 누군가에겐 너무나 완강할 수 있습니다.
약육강식, 자본주의의 비정한 먹이사슬에 취약계층은 물론 많은 시민이 노출돼있습니다. 평당 2억원 짜리 아파트와 최저임금 노동 사이에서 좌절과 허탈, 분노는 당연합니다. 적어도, ‘절대빈곤’은 나라가 구제해야 합니다.
경제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새 정부가 이 거대하고 오래된 난제를 개혁시키는 첫 단추를 꼭 꿰기 바랍니다. 그래야 ‘진짜 대한민국’, ‘진짜 국민주권정부’라 할 수 있지요. 다산 정약용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가난은 나라가 구제하는 게 맞습니다. 기득권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개혁해나갈 때 주권자는 전폭적 지지로 화답할 겁니다.
이 땅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덜 고단한 삶과 건강, 전국에 있을 여러 ‘옥 군’들의 의젓한 성장을 기원합니다. 기원만 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앞장서고 사회가 적극 거드는 게 진정한 기원이자 진짜 공동체겠지요. 그게 국민주권정부 아니겠습니까.

이강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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