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 짓는 예술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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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는 매직패스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별 짓는다.
5만~7만원짜리 패스 구매자를 먼저 태운다.
구매금액별로 고객을 등급 매겨 구별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한다.
객석 중앙 맨 앞줄에 호기롭게 앉으려는 찰나, 관계자가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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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롯데월드는 매직패스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별 짓는다. 엄연히 이용권을 샀는데, 놀이기구 앞에서 매직패스 전용 입구를 알게 됐을 때의 배신감이란. 1시간은 줄 서야 하는 인기 시설 앞에서 매직패스는 대기시간을 단 5분 정도로 줄여준다. 마법이 작동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5만~7만원짜리 패스 구매자를 먼저 태운다. 시간을 가격으로 환산해 선점권을 판매하는 구조다. 롯데월드는 다수의 시간과 권리를 소수의 우선권을 위한 자원으로 돌려 제 주머니를 불린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책 ‘구별 짓기’에서 사회적 취향과 습관을 ‘아비투스’(habitus)라 불렀다. 삶의 방식으로 체화된 이 감각을 통해 일상 말투나 태도에서도 계층이 드러난다. 아비투스는 마케팅에서 노골적으로 활용되는데, 대표 사례가 백화점의 고객 등급제다. 구매금액별로 고객을 등급 매겨 구별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한다. 무료 커피 한잔 마시는 북적거리는 라운지라도 브이아이피(VIP)로 불리며 배타적 서비스를 받는다는 우월감의 환상은 수천만원대 소비를 정당화한다.
자본을 통해 고객의 권리를 차등화하는 선점과 배제의 구조는 예술의 이름으로까지 작동한다. 최근 조각가 안토니 곰리 개인전으로 화제를 모은 원주 뮤지엄 산에서였다. 자신의 몸을 재료로 실존을 형상화하는 그의 국내 전시는 몸을 주제로 연구하는 내게 반가웠고, 아티스트 토크 소식까지 들렸다. 선착순 40명 예매 조건에 알람까지 맞춰 떨리는 손으로 표를 구했다. 작가의 작업을 살피고 논문을 찾아 질문거리를 정리하며 내내 설렜다.
행사 당일 이른 아침 서울에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미술관은 입구부터 북적여 긴 대기 줄에 동동 발 굴렀는데, 행사장은 의외로 한산했다. 객석 중앙 맨 앞줄에 호기롭게 앉으려는 찰나, 관계자가 제지했다. 스티커가 붙지 않은 좌석으로 이동하라는 안내를 받고 보니 중앙열 좌석엔 모두 스티커가 있었다. 양쪽 열도 앞줄은 앉을 수 없었다. 텅 빈 좌석을 두고 구석에 앉는데, “일찍 와도 뒤에 앉네” 다른 관객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예약 때 좌석은 분명 자유석으로 안내됐다. 절차에 맞춰 제 돈 내고 입장한 행사에서 어떤 선점권이 작동된 걸까. 이미 미술관은 매우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전시 오픈 행사를 전날 열었다. 매체 기자들도, 명사들도 다녀갔을 텐데, 의아했다. 동동거리며 미리 입장하고도 구석에 앉은 관객들이 무색하게 행사 직전 40여명의 브이아이피가 중앙 객석을 가득 채웠고, 곧 작가가 등장했다.

1시간여 작업세계를 설명하던 작가는 “질문을 받을까요?” 물었다. 브이아이피들은 질의응답보다 설명을 듣는 편을 택했다. 강연 아닌 명색이 대화에서 단 두개 질문만 허락됐다. 작가의 몸이기도 한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에게 “작품을 만지면 어떡하느냐” 묻는 한 브이아이피의 질문을 끝으로 대화는 마무리됐다.

선점의 특권을 누린 이들은 아트페어 멤버십 회원들이었다. 미술은 제도이자 시장이다. 시장은 고객에게 차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뮤지엄 산은 제도 공간이다. 아트페어 고객용 특혜가 열린 문화 공간인 미술관에서 교차했다. 내 시간과 권리가 누군가의 배타적 서비스에 전용됐지만 다행이었다. 한때 신문기자였던 나는 배제의 경험을 알지 못했다. 여전히 펜을 잡고 있어 배제되고도 말할 수 없는 이들과 배제된 경험을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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