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고독한 내면 담은 영혼의 화가, 고흐의 ‘별밤’

강현철 2025. 7. 1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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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논설실장


“나는 내 심장과 영혼을 그림에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미쳐버렸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를 묘사한 구절이다. 고흐는 격렬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그린 ‘영혼의 화가’로 폴 세잔, 폴 고갱 등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된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고난속에서도 9년의 짧은 시간에 900여점의 채색화와 1100여점의 소묘화를 남겼다. 그림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영혼의 안식처였던 그는 사흘에 한 점씩 ‘절박한’ 마음으로 그렸다. 하지만 살아 생전 팔린 작품은 세상을 뜨기 6개월전 팔린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한 점뿐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캔버스에 유채. 너비 92.1x높이 73.7cm. 1889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은 밤하늘에 별이 떠 있는 모습을 그린 고흐의 대표작이다. 하늘과 지상,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강렬한 별빛, 고요한 마을과 사이프러스 나무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고독, 영원의 추구를 담았다. 불꽃 같은 검은 사이프러스 위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파란 별빛들, 노랗게 번지는 별 무리. 오른쪽 산 아래 작은 마을에는 집들과 교회가 보인다. 별은 영혼의 안식처이자 영적 세계와 연결하는 고리다.

밤의 풍경을 묘사했을 때 자주 사용했던 코발트 블루가 이 작품에서도 주된 색조를 차지한다. 물감은 희석하지 않은 채 걸죽하게 칠해졌다. 두텁게 쓴 물감으로 인해 붓자국은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짧은 선 모양으로 색을 나란히 칠하는 기법을 개발한 고흐는 생의 후반기 이런 선을 율동적으로 물결 모양, 원 모양, 나선형 모양으로 배열하기 시작했다. 하늘과 별빛의 빛나는 느낌을 강렬한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극대화했다. 빛과 어둠이 혼재된 하늘을 통해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창조됐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한 에너지는 작가 자신의 정신적 혼란과 불안의 상징으로도 해석된다. 별은 천국의 빛, 사이프러스 나무는 불굴의 용기를 의미한다.

‘별이 빛나는 밤’은 친구이자 동거인인 고갱과 예술관의 차이 등으로 다툰 후 자신의 귀를 자해하는 사건을 벌인 후 요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정신병에 시달리던 고흐는 1889년 따뜻한 햇살로 유명한 프랑스 남동부 론강 하류에 자리잡은 아를 근처에 있는 생 래미의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했다. 병원에서 보던 측백나무, 삼나무과의 사이프러스는 그에게 한줄기 위안이었다. 고흐는 아를 체류 시기 별을 자주 그렸다.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도 유명한 작품이다.

고흐는 풍경에 내면의 감정을 쏟아부은 화가다. 노랑과 파랑은 그의 대표색이다. 고흐는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란색을 “숭고하고 밝은 사랑의 색”이라고 썼으며, “무한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나는 파랑은 노랑이나 주황이 없으면 안된다”고 했다. ‘밤의 카페 테라스’, ‘노란 집’, ‘나의 방’, ‘낮잠’, ‘슬픈 노인’, ‘해바라기’ 등은 노랑과 파랑을 적절하게 활용한 작품들로 꼽힌다. 해바라기는 기쁨과 몰입의 상징이다.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주 쥔더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개혁교회의 목사였다. 어려서부터 진지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고 한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어린 나이에 시작됐다. 1869년 큰아버지는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 빈센트를 위한 자리를 구해준다. 빈센트는 화랑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뒤, 1873년에는 런던으로 이주한다.

고흐의 활동 기간은 초기 네덜란드 시기, 중기 파리 시기, 후기 아를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880년 고흐는 화상(畵商)이자 후원자인 동생 테오의 제안에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초기 작품은 주로 정물화와 노동자의 묘사였다.

1886년 파리로 옮긴 고흐는 동생의 소개로 피사로와 모네, 드가, 고갱 등의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며 많은 ‘자화상’을 남긴다.

화가 자신이 느낀대로 표현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으로 인해 어두웠던 그의 채색과 그림은 점차 밝고 선명해진다. 이후 1888년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 머무는 동안 화풍은 점점 더 밝아져 고흐만의 스타일로 완성된다.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캔버스에 유채. 114× 82cm . 1885년.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소장.


초기작으로 유명한 그림은 1885년경 그려진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이다. 소박한 식사를 하는 농부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흐는 농부의 가혹한 삶을 묘사하고자 상당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빈곤한 삶속에서도 희망과 경건함을 잃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민 가족의 모습을 우울한 단색조로 화폭에 담았다. 비평가들은 칙칙하고 어두운 색조의 이 그림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흐 자신은 이 작품을 상당히 좋아했으며 평생 대표작 중 하나로 생각했다. 고흐는 편지에 “감자를 먹는 농부를 그린 그림이 내 그림을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일본 판화와의 만남은 그의 작품 세계를 한단계 고양시켰다. 유럽으로 수입된 일본 판화로부터 가는 선으로 테두리가 둘러쳐진 ‘얕게’ 채색된 화면, 원근법의 무시, 풍경 속에서 아주 작게 묘사된 인물들을 배웠다. 고흐는 남부 프랑스의 눈부신 색채에 대한 희망을 품고서 아를로 이주한다. 아를에서 그는 자신만의 전형적인 새로운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까마귀 나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 캔버스에 유채. 103 x 50.5 cm. 1890년.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까마귀 나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 1890)은 말년에 파리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서 그린 그림이다. 노란 밭과 시커먼 하늘 사이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이 들리며, 그의 죽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짙푸른 먹구름 아래 밀밭은 격렬하게 흔들리고, 어둡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까마귀 떼는 낮게 난다. 밀밭에는 갈림길과 끝어진 길이 암울하고 고립된 느낌을 더한다. 고립되고 외로운 가운데서 마지막 삶의 한방울을 짜내듯 붓터치는 굵고 거침이 없다. 황금빛의 밀밭도 역동적이다. 고흐는 이 그림 속에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엮어냈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그림속 밀밭에서 고흐가 자신을 향해 총을 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폭풍의 하늘에 휘감긴 밀밭의 전경을 그린 이 그림으로 나는 나의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고흐는 밀밭 주제로 여러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꽃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s). 캔버스에 유채. 92 x 74cm . 1890년. 반 고흐 미술관 소장.


‘꽃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s, 1890)는 고흐가 자신의 이름을 이어받은 동생 테오의 아들이자 조카를 위해 37년 인생 마지막 봄에 그린 마지막 꽃그림이다. 바람과 고난을 견뎌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몬드 꽃은 추운 겨울이 끝나고 생명으로 가득찬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정령’으로, 차갑고 매서운 겨울을 이겨낸 ‘희망’과 ‘건강’을 상징한다. 정신병원에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던 고흐에게 조카의 탄생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오베르의 교회’(The Church at Auvers). 캔버스에 유채. 74 x 94 cm. 1890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사망하기 얼마전 그린 ‘오베르의 교회’에서 교회로 향하는 길로 갈망을, 구불구불한 선으로는 고통과 번뇌의 감정을 드러냈다. 무한하고 영원한 것을 갈망했던 고흐는 소용돌이치듯 구불구불한 선과 거친 붓 터치의 색으로 마음의 고통과 번뇌을 화폭에 담으려 했다. 1890년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은 고흐는 파리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오베르 쉬즈 우아즈로 이사한다. 여기서 하루 한 점씩 미친듯 그림을 그리다가 70일 후 권총 방아쇠를 당기며 37년의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죽기 전 그는 동생 테오의 품에 안겨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와의 불화, 격정적인 성격, 순탄치 못한 대인관계, 폴 고갱과의 비극, 환각과 발작. 평생 외로움에서 산 그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의 예술적 스타일은 야수파와 독일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리빙 빈센트’ 고흐의 걸작들로 만든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그가 인정 받은 것은 죽음 이후였다. 1987년 3월 ‘아이리스’(붓꽃)가 뉴욕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5390만달러에 팔렸다. 1990년 5월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가셰 박사의 초상’이 8250만달러(약 900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고흐를 사랑한 일본의 다이쇼와제지 사이토 료에이 명예회장이 사들였다. 사이토 화장은 자신이 죽으면 그림도 함께 화장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고흐의 팬이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은 고흐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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