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쓰기, 기록이라는 취미

하루가 끝나면 조용히 다이어리를 꺼내곤 했다. 손에 익은 펜,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 그리고 책상 가득 펼쳐진 스티커들이 그날의 마무리를 함께했다.
누군가는 '다꾸'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그저 예쁘게 꾸미는 취미쯤으로 여겼지만, 나에게 다이어리 꾸미기는 하루를 붙잡고 마음을 덧칠하는 가장 사적인 루틴이다.
예전에는 그날의 기분이나 지나가는 생각들, 친구가 던진 농담 한마디까지도 빠짐없이 기록하려 했지만, 지금은 퇴근 후엔 눕는 게 먼저이고, 피곤함에 손이 잘 따라주지 않아 핸드폰 메모장에 짧게 남겨두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저장해둔 조각들을 주말이 되면 다시 꺼내 다이어리로 옮긴다. 손글씨로 한 줄씩 정리하고, 적절한 스티커를 붙이고 배경을 꾸며주다 보면 흩어졌던 마음도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주말에는 친구와 함께 '카꾸'를 하기도 한다. 카페에서 각자의 다이어리를 꺼내 일기를 쓰고, 스티커를 나누며 새로 산 마스킹테이프를 자랑한다. 수다에 빠져 정작 다꾸는 진도가 거의 나가지 않을 때도 많지만, 웃고 떠드는 그 시간 자체가 또 하나의 기록처럼 마음속에 남는다.
여행을 갈 때도 다꾸는 빠지지 않는다. 승차권, 엽서 한 장, 맛집의 명함, 소소한 입장권 하나까지도 소중히 챙겨오고, 엄선한 사진을 포토프린터로 출력해 붙이다 보면 다이어리는 금세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다이어리를 보며 그 안에 담긴 순간들로 뿌듯해진다.
사실, 모든 날이 아름답게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화가 난 채 펜을 들었고, 쓰면 쓸수록 오히려 분노가 더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되새김질하듯 감정이 다시 차올라 결국 다이어리가 데스노트처럼 변하기도 했다. 평상시보다 극적인 감정 변화를 느꼈을 때 술술 글이 써지는데 이렇게 날것의 감정을 한가득 쏟아버리고 나면 문득, '혹시라도 다이어리를 잃어버리게 되면 민망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만큼 확실하게 감정을 털어버릴만한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 없는 그 한 페이지 덕분에 조금 덜 상처받으며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일기를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며 행복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글로 쓰다 보면 감정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예쁘게 꾸미지 않아도 괜찮고, 매일 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잠깐이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오직 나만을 위한 기록.
그래서 나는 다이어리 한 장을 채우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나의 하루가 괜찮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오늘 하루가 조금 복잡했거나,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짧은 문장 한 줄이라도 써봤으면 좋겠다. 그 짧은 한 줄이 '기록'이라는 당신만의 새로운 취미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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