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는 궤변, 총수는 무풍지대"…시민사회, 태광 이호진 또 고발
3조 유동성 두고 EB 강행…"목적은 따로 있다"
과거 광복절 사면 후 구조조정…"공수표 반복 우려"

"검찰을 믿을 수 없다. 경찰은 수사하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울려 퍼진 구호에는 시민사회가 다시 거리로 나선 이유가 담겨 있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금융정의연대 등 노동시민사회 10개 단체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경찰에 재차 고발했다. 혐의는 수천억원대 횡령·배임과 최근 불거진 교환사채 발행 시도에 따른 업무상 배임 미수다.
이번 고발에는 새로운 물증도 포함됐다. 이들 단체는 "이 전 회장이 교환사채 결정을 비롯한 주요 경영 사안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담긴 내부 녹취록 2100건을 확보했다"며 "검찰이 수년째 수사조차 하지 않아 더는 신뢰할 수 없고 경찰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배력 강화 목적 EB, 교묘한 수법"
이형철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대표는 "2022년 티브로드 지분 매각, 2023년 골프장 회원권 강매 등 두 차례에 걸쳐 이 전 회장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여태껏 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며 "계열사와 협력업체가 떠안은 손실이 천문학적인만큼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이 전 회장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교환사채 발행이 애경산업 인수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태광산업은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아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고, 인수 주체로 나선 티투프라이빗에쿼티는 총수 일가가 36.4% 지분을 보유한 신생 사모펀드"라며 "자사주 매각을 통해 총수 우호지분을 확보하려는 전형적인 편법 구조"라고 주장했다.

태광그룹이 교환사채 발행 명분으로 내세운 '유동성 확보' 논리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태광산업이 보유한 유동자산만 3조원에 달하는데도 32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각하겠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시장에선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 이는 경영 효율화가 아닌 지배력 공고화를 위한 조치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태광그룹은 2022년 말 특별사면을 앞두고 10년간 12조원 투자와 7000명 채용을 약속했으나 3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대규모 구조조정만 있었을 뿐"이라며 "최근 발표한 1조5000억원 투자 계획 역시 공수표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실제 금융당국도 이번 교환사채 공시에 정정 명령을 내렸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교환사채를 거치면 부활한다"며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늘리는 교묘한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호진 전 회장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교환사채 형태로 활용하려는 것은 상법 개정 취지를 정면으로 회피하려는 시도"라고 짚었다. 개정된 상법은 자사주를 일정 조건 아래 소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대주주의 우호 지분 확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단체 측은 "자사주를 소각하면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지만 교환 방식으로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나 대주주에게만 유리한 구조가 된다"며 "현 단계에서는 미수에 그치지만 실제 실행되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도 사회적 지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황제보석·공수표 투자…재벌 특권 종착역"
아울러 단체는 검찰의 반복되는 불기소 처분과 수사 회피를 강하게 문제 삼았다. 대법원이 이 전 회장의 개입을 인정한 '김치·와인 강매 사건'조차 검찰은 재차 불기소했다는 점에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 전 회장은 황제보석·특별사면·비자금 조성·정관계 로비·상법 회피 시도까지 반복해온 전형적인 법꾸라지"라고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 대표는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노동·경제 분야 전문 변호사로, 흥국생명 정리해고 사건을 비롯해 태광산업 관련 사안에도 정통한 인물이다.
그는 "2022년 7월 첫 고발 이후 검찰은 단 한 차례 조사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2023년 광복절 사면으로 이 전 회장은 자유의 몸이 됐다"며 "구속되면 늘 휠체어에 실려 나오는 모습, 모두 기억하실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사면을 받기 위해 내건 12조원 투자와 7000명 채용 약속은 공수표였고 정작 이행된 건 대규모 해고였다"며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아래 반복되는 특별사면은 이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이호진 방지법'의 조속한 입법도 촉구했다. 해당 법안은 100억원 이상 배임에도 사면 후 복귀가 가능한 현행 제도를 막기 위해 △5년 이내 재사면 금지 △취업제한 유지 등을 골자로 한다.
"경영상 판단일 뿐"…지배력 강화 논란 정면 반박
반면 태광산업은 이번 사안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교환사채 발행은 지배력 강화나 경영 세습을 위한 편법이 아니라 운용 자금 확보와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한 경영상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대주주 지분율은 오히려 72.1%까지 올라간다"며 "자사주 매각이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조치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애경산업 인수와 관련해선 "방식은 아직 검토 단계일 뿐 티투프라이빗에쿼티를 통한 인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지적된 '유동자산 3조원' 규모에 대해선 "올해 3월 말 기준 태광산업의 연결 재무제표상 유동자산은 약 2조원, 별도 기준으로는 1조7000억원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자산 항목 내 ‘현금화 가능성’에 따라 해석 차이가 있으나 실제 수치상으로는 주장보다 낮다는 설명이다.
김치·와인 강매 사건과 관련한 검찰 불기소에 대해선 "김기유 전 경영협의회 의장이 '이 전 회장이 모르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했고, 새로운 증거도 제출되지 않아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자 약속 불이행과 인력 구조조정 논란에 대해서도 "계약 만료로 퇴직한 임원을 제외하고 일반 임직원에 대한 해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교환사채 구조가 기존 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장 일각에선 이번 구조가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시장 규율 측면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태광 측은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후속 절차를 중단할 것"이라며 "소액주주, 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향후 의사 결정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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